길을 보여주는 표적들

제 1과, 4기, 9월 28일 - 10월 4일,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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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오후, 9월 28일

기억절:

“And many other signs truly did Jesus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which are not written in this book: But these are written, that ye might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e might have life through his name. KJV — John 20:30, 31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적들도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참으로 행하셨으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KJV - 요한복음 20:30, 31


“In closing his gospel, St. John speaks words of deep importance: ‘And many signs did Jesus in the presence of them all, which are not written in this book; but these are written that ye might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e might have life through his name.’ [John 20:30, 31.] This statement shows the great importance of understanding the question, “What is faith in the Son of God?” 16LtMs, Lt 148, 1901, par. 6

“성 요한은 그의 복음을 마무리하면서 매우 중요한 말을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30, 31]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6LtM, 대위 148, 1901, par. 6

“What is the nature of the belief in Christ of which the gospel makes so much account, which is declared to be essential for the salvation of the soul? The whole science of salvation is contained in accepting Christ as a personal, sin-pardoning Saviour. He died for sinful, erring human beings… 16LtMs, Lt 148, 1901, par. 7

“복음이 그토록 많이 설명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영혼의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선언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의 모든 과학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이고 죄를 용서하는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죄 많고 잘못한 인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16LtMs, Lt 148, 1901, par. 7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which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John 1:12-14.] This is the only true mind cure, the only thing that can save the perishing soul. Human beings, with all their defects, all their wilful stubbornness, may come to Christ in humility, contrition, and sincere repentance, and receive pardon. Christ will take away their sins and impute to them His righteousness. The Holy Spirit takes the things of Christ and presents them to the earnest suppliant, and the salvation of the soul is ensured.” 16LtMs, Lt 148, 1901, par. 8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2~14] 이것이야말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참된 마음의 치료법입니다. 모든 결점과 고의적인 고집을 가진 인간은 겸손과 통회, 진실한 회개로 그리스도께 나아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죄를 없애시고 그분의 의를 그들에게 전가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것을 취하여 간절한 공급자에게 선물하며 영혼의 구원이 보장됩니다.” 16LtM, 중위 148, 1901, par. 8

9월 29일 일요일

The Wedding At Cana
가나의 혼인잔치


Read John 2:1–11. What sign did Jesus do at Cana, and how did this help His disciples  in coming to believe in Him?

요한복음 2:1-1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가나에서 어떤 표적을 행하셨는가?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Jesus did not begin His ministry by some great work before the Sanhedrin at Jerusalem. At a household gathering in a little Galilean village His power was put forth to add to the joy of a wedding feast. Thus He showed His sympathy with men, and His desire to minister to their happiness. In the wilderness of temptation He Himself had drunk the cup of woe. He came forth to give to men the cup of blessing, by His benediction to hallow the relations of human life.” DA 144.1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서 어떤 위대한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 작은 마을의 한 가정 모임에서 그분의 능력은 혼인 잔치의 기쁨을 더하기 위해 발휘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인간에 대한 동정심과 그들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그분의 열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유혹의 광야에서 그분 자신이 비애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분은 인간 삶의 관계를 거룩하게 하는 축복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의 잔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DA 144.1

“It was the custom of the times for marriage festivities to continue several days. On this occasion, before the feast ended it was found that the supply of wine had failed. This discovery caused much perplexity and regret. It was unusual to dispense with wine on festive occasions, and its absence would seem to indicate a want of hospitality. As a relative of the parties, Mary had assisted in the arrangements for the feast, and she now spoke to Jesus, saying, ‘They have no wine.’” DA 145.4

“결혼 축제를 며칠 동안 계속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이 경우 잔치가 끝나기 전에 포도주 공급이 중단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은 많은 당혹감과 후회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축제에 포도주가 없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환대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파티의 친척인 마리아는 잔치 준비를 도왔고, 이제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DA 145.4

“Beside the doorway stood six large stone water jars, and Jesus bade the servants fill these with water. It was done. Then as the wine was wanted for immediate use, He said, “Draw out now, and bear unto the governor of the feast.” Instead of the water with which the vessels had been filled, there flowed forth wine. Neither the ruler of the feast nor the guests generally were aware that the supply of wine had failed. Upon tasting that which the servants brought, the ruler found it superior to any he had ever before drunk, and very different from that served at the beginning of the feast. Turning to the bridegroom, he said, ‘Every man at the beginning doth set forth good wine; and when men have well drunk, then that which is worse: but thou hast kept the good wine until now.’” DA 148.2

“출입구 옆에는 커다란 돌 물 항아리 여섯 개가 서 있었고,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사용할 포도주가 필요하자, 예수님은 “지금 꺼내어 잔치의 총독에게 가져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에 채워진 물 대신 포도주가 흘러나왔습니다. 잔치의 통치자나 손님들 모두 포도주 공급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인들이 가져온 포도주를 맛본 통치자는 이전에 마셔본 어떤 포도주보다 뛰어나고 잔치를 시작할 때 마셨던 포도주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신랑을 향하여 말하기를, '처음에 모든 사람이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사람들이 잘 마시면 그다음에는 더 나쁜 포도주를 내놓지만, 너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간직하고 있구나' 하였다.” DA 148.2

“As the guests at the feast remarked upon the quality of the wine, inquiries were made that drew from the servants an account of the miracle. The company were for a time too much amazed to think of Him who had performed the wonderful work. When at length they looked for Him, it was found that He had withdrawn so quietly as to be unnoticed even by His disciples. DA 149.5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포도주의 품질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인들로부터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한동안 그 놀라운 일을 행하신 그분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놀랐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그분을 찾았을 때, 그분은 제자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물러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DA 149.5

“The attention of the company was now turned to the disciples. For the first time they had the opportunity of acknowledging their faith in Jesus. They told what they had seen and heard at the Jordan, and there was kindled in many hearts the hope that God had raised up a deliverer for His people. The news of the miracle spread through all that region, and was carried to Jerusalem. With new interest the priests and elders searched the prophecies pointing to Christ's coming. There was eager desire to learn the mission of this new teacher, who appeared among the people in so unassuming a manner.” DA 150.1

“이제 회사의 관심은 제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인정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구원자를 일으키셨다는 희망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기적의 소식은 그 지역 전체에 퍼져 예루살렘으로 전해졌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가리키는 예언을 찾아보았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소탈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 새로운 선생의 사명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간절했습니다.” DA 150.1

9월 30일 월요일

The Second Sign in Galilee
갈릴리에서의 두 번째 표적


Read John 4:46–54. Why does the evangelist make a connection back to the miracle at the wedding feast?

요한복음 4:46-54을 읽어 보라. 여기서 왜 혼인 잔치의 기적을 다시 언급하고  있는가?

“The news of Christ's return to Cana soon spread throughout Galilee, bringing hope to the suffering and distressed. In Capernaum the tidings attracted the attention of a Jewish nobleman who was an officer in the king's service. A son of the officer was suffering from what seemed to be an incurable disease. Physicians had given him up to die; but when the father heard of Jesus, he determined to seek help from Him. The child was very low, and, it was feared, might not live till his return; yet the nobleman felt that he must present the case in person. He hoped that a father's prayers might awaken the sympathy of the Great Physician. DA 196.3

“그리스도께서 가나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은 곧 갈릴리 전역에 퍼져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이 소식은 왕을 모시는 장교였던 한 유대인 귀족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장교의 아들이 불치병으로 보이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아들에게 죽으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의 상태가 매우 나빠서 돌아올 때까지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귀족은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기도가 위대한 의사의 동정심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랐다. DA 196.3

“On reaching Cana he found a throng surrounding Jesus. With an anxious heart he pressed through to the Saviour's presence. His faith faltered when he saw only a plainly dressed man, dusty and worn with travel. He doubted that this Person could do what he had come to ask of Him; yet he secured an interview with Jesus, told his errand, and besought the Saviour to accompany him to his home. But already his sorrow was known to Jesus. Before the officer had left his home, the Saviour had beheld his affliction. DA 197.1

“가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군중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구세주의 임재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먼지가 쌓이고 여행으로 닳은 수수한 옷차림의 한 사람만 보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이 사람이 자신이 구하러 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심부름을 말하고 구세주께 자신의 집까지 동행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의 슬픔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장교가 집을 떠나기도 전에 구주께서는 그의 고통을 보셨다. DA 197.1

“But He knew also that the father had, in his own mind, made conditions concerning his belief in Jesus. Unless his petition should be granted, he would not receive Him as the Messiah. While the officer waited in an agony of suspense, Jesus said, ‘Except ye see signs and wonders, ye will not believe.’” DA 198.1

“그러나 그분은 그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예수에 대한 믿음에 관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의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분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교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동안 예수님은 '너희가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아니하면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198.1

“Like a flash of light, the Saviour's words to the nobleman laid bare his heart. He saw that his motives in seeking Jesus were selfish. His vacillating faith appeared to him in its true character. In deep distress he realized that his doubt might cost the life of his son. He knew that he was in the presence of One who could read the thoughts, and to whom all things were possible. In an agony of supplication he cried, “Sir, come down ere my child die.” His faith took hold upon Christ as did Jacob, when, wrestling with the Angel, he cried, “I will not let Thee go, except Thou bless me.” Genesis 32:26. DA 198.4

“구세주께서 그 귀족에게 하신 말씀이 섬광처럼 그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는 자신의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흔들리는 믿음은 그에게 진정한 성격으로 보였습니다. 깊은 고통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의심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의 면전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고통스럽게 간구하며 “선생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며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주를 보내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창세기 32:26. DA 198.4

“Like Jacob he prevailed. The Saviour cannot withdraw from the soul that clings to Him, pleading its great need. “Go thy way,” He said; “thy son liveth.” The nobleman left the Saviour's presence with a peace and joy he had never known before. Not only did he believe that his son would be restored, but with strong confidence he trusted in Christ as the Redeemer.” DA 198.5

“야곱처럼 그분은 승리하셨다. 구주께서는 그분께 매달려 큰 필요를 호소하는 영혼에게서 물러날 수 없다. “네 길을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 귀족은 전에는 알지 못했던 평화와 기쁨을 안고 구세주의 임재를 떠났습니다. 그는 아들이 회복될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강한 확신으로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믿었습니다.” DA 198.5

10월 1일 화요일

The Miracle at the pool of Bethesda
베데스다 연못의 표적


Read John 5:1–9. Because anyone by the pool obviously wanted to get well, why did Jesus ask the paralytic if he wanted to be healed (John 5:6)?

요한복음 5:1-9을 읽어 보라. 그곳 사람들은 분명히 낫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가에  모여 있었는데, 예수님은 왜 마비된 사람에게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셨는가?(요 5:6)

“Jesus was again at Jerusalem. Walking alone, in apparent meditation and prayer, He came to the pool. He saw the wretched sufferers watching for that which they supposed to be their only chance of cure. He longed to exercise His healing power, and make every sufferer whole. But it was the Sabbath day. Multitudes were going to the temple for worship, and He knew that such an act of healing would so excite the prejudice of the Jews as to cut short His work." DA 201.3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묵상과 기도에 잠긴 듯 홀로 걸으시던 예수님은 수영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유일한 치료의 기회라고 여겨지는 것을 기다리는 비참한 환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치유 능력을 발휘하여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온전하게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배를 드리러 성전에 가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러한 치유 행위가 유대인들의 편견을 자극하여 그분의 사역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DA 201.3

“But the Saviour saw one case of supreme wretchedness. It was that of a man who had been a helpless cripple for thirty-eight years. His disease was in a great degree the result of his own sin, and was looked upon as a judgment from God. Alone and friendless, feeling that he was shut out from God's mercy, the sufferer had passed long years of misery. At the time when it was expected that the waters would be troubled, those who pitied his helplessness would bear him to the porches. But at the favored moment he had no one to help him in. He had seen the rippling of the water, but had never been able to get farther than the edge of the pool. Others stronger than he would plunge in before him. He could not contend successfully with the selfish, scrambling crowd. His persistent efforts toward the one object, and his anxiety and continual disappointment, were fast wearing away the remnant of his strength." DA 202.1

“그러나 구주께서는 지극히 비참한 한 사례를 보셨습니다. 그것은 38년 동안 무력한 절름발이로 살아온 한 남자의 병이었습니다. 그의 병은 상당 부분 자신의 죄의 결과였으며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겨졌습니다. 혼자서 친구도 없이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느낀 그는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풍랑이 예상될 때, 그의 무력함을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그를 현관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호의적인 순간에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물결치는 물살을 보았지만 수영장 가장자리보다 더 멀리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 먼저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에 가득 찬 군중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한 그의 끈질긴 노력과 불안과 계속되는 실망은 그의 남은 힘을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었습니다.” DA 202.1

“The sick man was lying on his mat, and occasionally lifting his head to gaze at the pool, when a tender, compassionate face bent over him, and the words, “Wilt thou be made whole?” arrested his attention. Hope came to his heart. He felt that in some way he was to have help. But the glow of encouragement soon faded. He remembered how often he had tried to reach the pool, and now he had little prospect of living till it should again be troubled. He turned away wearily, saying, “Sir, I have no man, when the water is troubled, to put me into the pool: but while I am coming, another steppeth down before me.” DA 202.2

“병든 남자는 매트 위에 누워 가끔 고개를 들어 수영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부드럽고 자비로운 얼굴이 그를 굽히며 “네가 낫겠느냐?”라는 말이 그의 주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마음에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격려의 빛은 곧 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자주 수영장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는지 기억했고, 이제 다시 문제가 생길 때까지 살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지쳐서 돌아서며 “선생님, 물이 험할 때 저를 못에 넣을 사람이 없사오니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제 앞에서 내려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DA 202.2

“Jesus does not ask this sufferer to exercise faith in Him. He simply says, “Rise, take up thy bed, and walk.” But the man's faith takes hold upon that word. Every nerve and muscle thrills with new life, and healthful action comes to his crippled limbs. Without question he sets his will to obey the command of Christ, and all his muscles respond to his will. Springing to his feet, he finds himself an active man. DA 202.3

“예수님은 이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그분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믿음은 그 말씀에 붙잡힙니다. 모든 신경과 근육이 새로운 생명으로 전율하고, 불구가 된 사지에 건강한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의지를 세우고 모든 근육이 그의 의지에 반응합니다. 두 발로 힘차게 일어나면서 그는 활동적인 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합니다. DA 202.3

“Jesus had given him no assurance of divine help. The man might have stopped to doubt, and lost his one chance of healing. But he believed Christ's word, and in acting upon it he received strength.” DA 203.1

“예수님은 그에게 하느님의 도움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으셨다. 그 사람은 의심을 멈추고 치유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힘을 얻었습니다.” DA 203.1

10월 2일 수요일

Heard Hearts
굳은 마음


Read John 5:10–16. What lessons can we take away from the amazing hardness of the religious leaders’ hearts in regard to Jesus and the miracle He had just performed?

요한복음 5:10-16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눈앞에서 행하신 기적과 그분에 대한 종 교 지도자들의 놀랍도록 굳은 마음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The restored paralytic stooped to take up his bed, which was only a rug and a blanket, and as he straightened himself again with a sense of delight, he looked around for his Deliverer; but Jesus was lost in the crowd. The man feared that he would not know Him if he should see Him again. As he hurried on his way with firm, free step, praising God and rejoicing in his new-found strength, he met several of the Pharisees, and immediately told them of his cure. He was surprised at the coldness with which they listened to his story.” DA 203.3

“회복된 중풍병자는 구부정한 자세로 깔개와 담요가 전부인 침상에 누웠고, 기쁨으로 다시 몸을 곧게 펴고 구세주를 찾았지만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 길을 잃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새로 얻은 힘에 기뻐하며 굳건하고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서둘러 길을 가다가 바리새인 몇 명을 만났고, 즉시 자신의 치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냉담하게 들어주는 것에 놀랐습니다.” DA 203.3

“The Jews had so perverted the law that they made it a yoke of bondage. Their meaningless requirements had become a byword among other nations. Especially was the Sabbath hedged in by all manner of senseless restrictions. It was not to them a delight, the holy of the Lord, and honorable. The scribes and Pharisees had made its observance an intolerable burden. A Jew was not allowed to kindle a fire nor even to light a candle on the Sabbath. As a consequence the people were dependent upon the Gentiles for many services which their rules forbade them to do for themselves. They did not reflect that if these acts were sinful, those who employed others to perform them were as guilty as if they had done the work themselves. They thought that salvation was restricted to the Jews, and that the condition of all others, being already hopeless, could be made no worse. But God has given no commandments which cannot be obeyed by all. His laws sanction no unreasonable or selfish restrictions.” DA 204.1

“유대인들은 율법을 너무 왜곡하여 속박의 멍에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무의미한 요구사항은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안식일은 온갖 무의미한 제한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은 주님의 거룩하고 존귀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준수를 참을 수 없는 부담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은 안식일에 불을 피우거나 촛불을 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율법이 금지한 많은 봉사를 이방인에게 의존해야 했고, 그 결과 스스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가 죄악이라면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그 일을 수행한 사람도 자신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죄가 있다는 것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며, 이미 절망적인 다른 모든 사람의 상태는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순종할 수 없는 계명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율법은 불합리하거나 이기적인 제한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DA 204.1

“The healed man was overjoyed at meeting his Deliverer. Ignorant of the enmity toward Jesus, he told the Pharisees who had questioned him, that this was He who had performed the cure. ‘Therefore did the Jews persecute Jesus, and sought to slay Him, because He had done these things on the Sabbath day.’” DA 204.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구원자를 만난 기쁨에 넘쳤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에 대해 무지한 그는 자신을 의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 사람이 바로 그 병을 고쳐 주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 것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DA 204.3

What do these other accounts teach about how spiritually hard people can become, regardless of the evidence? (Read John 9:1–16; Mark 3:22, 23; Matt. 12:9–14)?

명백하게 주어진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 에 대해 이 구절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요 9:1-16, 막 3:22, 23, 마 12:9-14). 이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 수 있었는가?

  “The Pharisees could not but be astonished at the cure. Yet they were more than ever filled with hatred; for the miracle had been performed on the Sabbath day.” DA 471.5

“바리새인들은 그 치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DA 471.5

“Then they brought him before a council of the Pharisees. Again the man was asked how he had received his sight. “He said unto them, He put clay upon mine eyes, and I washed, and do see. Therefore said some of the Pharisees, This man is not of God, because He keepeth not the Sabbath day.” The Pharisees hoped to make Jesus out to be a sinner, and therefore not the Messiah. They knew not that it was He who had made the Sabbath and knew all its obligation, who had healed the blind man. They appeared wonderfully zealous for the observance of the Sabbath, yet were planning murder on that very day. But many were greatly moved at hearing of this miracle, and were convicted that He who had opened the eyes of the blind was more than a common man. In answer to the charge that Jesus was a sinner because He kept not the Sabbath day, they said, ‘How can a man that is a sinner do such miracles?’” DA 472.1

“그러자 그들은 그를 바리새인 공회 앞으로 데려왔다. 그 사람은 다시 어떻게 시력을 얻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흙을 내 눈에 넣으시고 내가 씻었더니 보이나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중 일부가 말하되 이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어 메시아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만드신 분, 안식일의 모든 의무를 아시는 분, 맹인을 고치신 분이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준수를 위해 놀라울 정도로 열심인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그날 살인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의 소식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평범한 사람 이상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혐의에 대해 그들은 '죄인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DA 472.1

10월 3일 목요일

Jesus’ Claims
예수님의 주장


Read John 5:16–18. Why was Jesus persecuted for His action on the Sabbath?

요한복음 5:16-18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일로 박해를 받은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But the plans which these rabbis were working so zealously to fulfill originated in another council than that of the Sanhedrin. After Satan had failed to overcome Christ in the wilderness, he combined his forces to oppose Him in His ministry, and if possible to thwart His work. What he could not accomplish by direct, personal effort, he determined to effect by strategy. No sooner had he withdrawn from the conflict in the wilderness than in council with his confederate angels he matured his plans for still further blinding the minds of the Jewish people, that they might not recognize their Redeemer. He planned to work through his human agencies in the religious world, by imbuing them with his own enmity against the champion of truth. He would lead them to reject Christ and to make His life as bitter as possible, hoping to discourage Him in His mission. And the leaders in Israel became instruments of Satan in warring against the Saviour.” DA 205.2

“그러나 이 랍비들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이루려고 노력했던 계획은 산헤드린 공의회가 아닌 다른 공의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이기는 데 실패한 후, 그분의 사역을 반대하고 가능하면 그분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힘을 합쳤습니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은 전략으로 효과를 거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광야의 분쟁에서 물러나자마자 그는 동맹 천사들과 의논하여 유대 백성의 마음을 더욱 멀게 하여 그들이 그들의 구속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진리의 옹호자에 대한 자신의 적대감을 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종교계의 인간 기관을 통해 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분의 삶을 가능한 한 쓰라리게 만들어 그분의 사명을 방해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구주를 대적하는 전쟁에서 사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DA 205.2

“Jesus had come to “magnify the law, and make it honorable.” He was not to lessen its dignity, but to exalt it. The scripture says, “He shall not fail nor be discouraged, till He have set judgment in the earth.” Isaiah 42:21, 4. He had come to free the Sabbath from those burdensome requirements that had made it a curse instead of a blessing.” DA 206.1

“예수님은 “율법을 영화롭게 하고 존귀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존엄성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높이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은 땅에 심판을 세우기까지 실패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2:21, 4. 그분은 안식일을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게 하는 부담스러운 요구 사항으로부터 안식일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DA 206.1

“For this reason He had chosen the Sabbath upon which to perform the act of healing at Bethesda. He could have healed the sick man as well on any other day of the week; or He might simply have cured him, without bidding him bear away his bed. But this would not have given Him the opportunity He desired. A wise purpose underlay every act of Christ's life on earth. Everything He did was important in itself and in its teaching. Among the afflicted ones at the pool He selected the worst case upon whom to exercise His healing power, and bade the man carry his bed through the city in order to publish the great work that had been wrought upon him. This would raise the question of what it was lawful to do on the Sabbath, and would open the way for Him to denounce the restrictions of the Jews in regard to the Lord's day, and to declare their traditions void.” DA 206.2

“이런 이유로 그분은 베데스다에서 치유 행위를 행하기 위해 안식일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요일에도 병자를 고치실 수 있었으며, 또는 병자에게 침상을 치우라고 하지 않으시고 단순히 고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주님이 원하셨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의 모든 행동에는 지혜로운 목적이 깔려 있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그 자체로 그리고 그 가르침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분은 못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의 치유 능력을 발휘할 최악의 사례를 선택하셨고, 그에게 행하신 위대한 일을 알리기 위해 그 사람에게 침상을 들고 도시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에 무엇을 하는 것이 합법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주일에 관한 유대인들의 제한을 비난하고 그들의 전통을 무효라고 선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DA 206.2

Read John 5:19–47. What was Jesus saying in order to help the leaders see Him for who He truly is, a claim so powerfully attested by the miracle He had just done?

요한복음 5:19-47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방금 행하신 기적을 통해 강력하게 증거된 당신 의 주장, 즉 당신이 누구인지를 지도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Jesus claimed equal rights with God in doing a work equally sacred, and of the same character with that which engaged the Father in heaven. But the Pharisees were still more incensed. He had not only broken the law, according to their understanding, but in calling God “His own Father” had declared Himself equal with God." John 5:18, R. V. DA 207.3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신성한 일을 하셨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은 성격을 가진 일을 하셨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더 격분했습니다. 그들의 이해에 따르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18, R. V. DA 207.3

“The whole nation of the Jews called God their Father, therefore they would not have been so enraged if Christ had represented Himself as standing in the same relation to God. But they accused Him of blasphemy, showing that they understood Him as making this claim in the highest sense.” DA 207.4

“유대인 전체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느님과 동등한 관계에 서 있다고 표현했다면 그렇게 격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을 신성 모독죄로 고발하여, 그분이 가장 높은 의미에서 이 주장을 하신 것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DA 207.4

“Jesus repelled the charge of blasphemy. My authority, He said, for doing the work of which you accuse Me, is that I am the Son of God, one with Him in nature, in will, and in purpose. In all His works of creation and providence, I co-operate with God.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but what He seeth the Father do.” The priests and rabbis were taking the Son of God to task for the very work He had been sent into the world to do. By their sins they had separated themselves from God, and in their pride were moving independently of Him. They felt sufficient in themselves for all things, and realized no need of a higher wisdom to direct their acts. But the Son of God was surrendered to the Father's will, and dependent upon His power. So utterly was Christ emptied of self that He made no plans for Himself. He accepted God's plans for Him, and day by day the Father unfolded His plans. So should we depend upon God, that our lives may be the simple outworking of His will.” DA 208.2

“예수님은 신성 모독 혐의를 반박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비난하는 일을 하는 나의 권위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본성과 뜻과 목적에 있어서 그분과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모든 창조와 섭리의 일에서 나는 하나님과 협력합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바로 그 일을 하도록 맡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교만하여 하나님과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모든 일에 충분하다고 느꼈고, 그들의 행동을 인도할 더 높은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셨고 그분의 능력에 의존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비우셨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아버지께서는 날마다 그분의 계획을 펼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의 삶이 그분의 뜻을 이루는 단순한 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DA 208.2

10월 4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The Jewish leaders had studied the teachings of the prophets concerning the kingdom of the Messiah; but they had done this, not with a sincere desire to know the truth, but with the purpose of finding evidence to sustain their ambitious hopes. When Christ came in a manner contrary to their expectations, they would not receive Him; and in order to justify themselves, they tried to prove Him a deceiver. When once they had set their feet in this path, it was easy for Satan to strengthen their opposition to Christ. The very words that should have been received as evidence of His divinity were interpreted against Him. Thus they turned the truth of God into a lie, and the more directly the Saviour spoke to them in His works of mercy, the more determined they were in resisting the light.” DA 212.2

“유대 지도자들은 메시아의 왕국에 관한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연구했지만, 진리를 알고자 하는 진지한 열망이 아니라 야심찬 희망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기대와 반대되는 방식으로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분이 사기꾼임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일단 그들이 이 길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탄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강화하기 쉬웠습니다. 그분의 신성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여야 할 바로 그 말씀이 그분께 불리하게 해석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고, 구주께서 그분의 자비 사업을 통해 그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실수록 그들은 빛에 저항하는 데 더욱 단호해졌습니다.” DA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