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쟁투

제 11과 2기, 2024년 6월 8~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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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오후, 6월 8일

기 억 절 :

“Sanctify them through thy truth: thy word is truth.” KJV — John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한 복음 17:17).


“Those who honor the Bible Sabbath will be denounced as enemies of law and order, as breaking down the moral restraints of society, causing anarchy and corruption, and calling down the judgments of God upon the earth. Their conscientious scruples will be pronounced obstinacy, stubbornness, and contempt of authority. They will be accused of disaffection toward the government. Ministers who deny the obligation of the divine law will present from the pulpit the duty of yielding obedience to the civil authorities as ordained of God. In legislative halls and courts of justice, commandment keepers will be misrepresented and condemned. A false coloring will be given to their words; the worst construction will be put upon their motives. GC 592.1

“성경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법과 질서의 적으로, 사회의 도덕적 제약을 무너뜨리고 무정부 상태와 부패를 야기하며 지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는 자로 비난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양심적 양심의 가책은 고집과 완고함, 권위 경멸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비난받을 것입니다. 신성한 법의 의무를 부인하는 목사들은 강단에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시민 권위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제시할 것입니다. 입법 회관과 사법 법정에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잘못 표현되고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는 거짓된 색채가 입혀질 것이며, 그들의 동기에 최악의 구조가 덧씌워질 것입니다. GC 592.1

“As the Protestant churches reject the clear, Scriptural arguments in defense of God's law, they will long to silence those whose faith they cannot overthrow by the Bible. Though they blind their own eyes to the fact, they are now adopting a course which will lead to the persecution of those who conscientiously refuse to do what the rest of the Christian world are doing, and acknowledge the claims of the papal sabbath. GC 592.2

“개신교 교회는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명백한 성경적 주장을 거부하면서 성경으로 전복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침묵시키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에 눈을 감고 있지만, 다른 기독교 세계가 하고 있는 일을 양심적으로 거부하고 교황의 안식일 주장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GC 592.2

“The dignitaries of church and state will unite to bribe, persuade, or compel all classes to honor the Sunday. The lack of divine authority will be supplied by oppressive enactments. Political corruption is destroying love of justice and regard for truth; and even in free America, rulers and legislators, in order to secure public favor, will yield to the popular demand for a law enforcing Sunday observance. Liberty of conscience, which has cost so great a sacrifice, will no longer be respected. In the soon-coming conflict we shall see exemplified the prophet's words: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ich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elation 12:17.’” GC 592.3

“교회와 국가의 고위 인사들이 연합하여 모든 계층이 주일을 지키도록 뇌물을 주거나 설득하거나 강요할 것입니다. 신성한 권위의 부족은 억압적인 제정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정치적 부패는 정의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존중을 파괴하고 있으며, 자유 미국에서도 통치자와 입법자들은 대중의 호의를 확보하기 위해 일요일 준수를 강제하는 법률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굴복할 것입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양심의 자유는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할 것입니다. 곧 다가올 분쟁에서 우리는 선지자의 말을 예시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진노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그 남은 자손과 전쟁을 하러 가더라.” 요한계시록 12:17'” GC 592.3

6월 9일 일요일

Revelation’s Final Conflict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쟁투


Compare Revelation 14:7, 9 with Revelation 14:11. What is the overarching theme of Revelation in this conflict between good and evil? 

요한계시록 14:7, 9과 요한계시록 4:11을 비교해 보라. 이 선과 악의 쟁투 가운데서 요한계시록을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By the first angel, men are called upon to “fear God, and give glory to Him” and to worship Him as the Creator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In order to do this, they must obey His law. Says the wise man: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for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 Ecclesiastes 12:13. Without obedience to His commandments no worship can be pleasing to God. “This is the love of God, that we keep His commandments.” “He that turneth away his ear from hearing the law, even his prayer shall be abomination.” 1 John 5:3; Proverbs 28:9.” GC 436.1

  “첫 번째 천사에 의해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천지의 창조주로서 그분을 경배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의 율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전도서 12:13.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니라.” “율법을 듣지 아니하고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조차 가증한 것이 되리라.” 요한일서 5:3; 잠언 28:9.” GC 436.1

  “In contrast to those who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faith of Jesus, the third angel points to another class, against whose errors a solemn and fearful warning is uttered: “If any man worship the beast and his image, and receive his mark in his forehead, or in his hand, the same shall drink of the wine of the wrath of God.” Revelation 14:9, 10. A correct interpretation of the symbols employed is necessary to an understanding of this message. What is represented by the beast, the image, the mark?” GC 438.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세 번째 천사는 다른 부류를 가리키며 그들의 잘못에 대해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를 전합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마에나 손에 그의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라.” 요한계시록 14:9, 10. 이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사용된 상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짐승, 이미지, 표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GC 438.1

  “In chapter 13 (verses 1-10) is described another beast, “like unto a leopard,” to which the dragon gave “his power, and his seat, and great authority.” This symbol, as most Protestants have believed, represents the papacy, which succeeded to the power and seat and authority once held by the ancient Roman empire. Of the leopardlike beast it is declared: “There was given unto him a mouth speaking great things and blasphemies.... And he opened his mouth in blasphemy against God, to blaspheme His name, and His tabernacle, and them that dwell in heaven. And it was given unto him to make war with the saints, and to overcome them: and power was given him over all kindreds, and tongues, and nations.” This prophecy, which is nearly identical with the description of the little horn of Daniel 7, unquestionably points to the papacy.” GC 439.1

“But what is the “image to the beast”? and how is it to be formed? The image is made by the two-horned beast, and is an image to the first beast. It is also called an image of the beast. Then to learn what the image is like and how it is to be formed we must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the beast itself—the papacy. GC 443.1

  “13장(1-10절)에는 ‘표범과 같은’ 또 다른 짐승이 묘사되는데, 이 용은 ‘그의 권세와 그의 자리와 큰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이 믿어온 것처럼 이 상징은 고대 로마 제국이 가졌던 권력과 자리, 권위를 계승한 교황권을 상징합니다. 표범 같은 짐승에 대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에게 큰 일과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이 주어졌고.... 그가 입을 열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전쟁을 벌이고 그들을 이기라는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고 모든 족속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다니엘서 7장의 작은 뿔에 대한 설명과 거의 동일한 이 예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권을 가리킵니다.” GC 439.1

“그러나 ‘짐승의 형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 형상은 두 뿔이 있는 짐승에 의해 만들어지며, 첫 번째 짐승에 대한 형상입니다. 짐승의 형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우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짐승 자체의 특성, 즉 교황권을 연구해야 합니다. GC 443.1

  “When the early church became corrupted by departing from the simplicity of the gospel and accepting heathen rites and customs, she lost the Spirit and power of God; and in order to control the consciences of the people, she sought the support of the secular power. The result was the papacy, a church that controlled the power of the state and employed it to further her own ends, especially for the punishment of “heresy.” In order for the United States to form an image of the beast, the religious power must so control the civil government that the authority of the state will also be employed by the church to accomplish her own ends.” GC 443.2
  “초대 교회는 복음의 단순함에서 벗어나 이교도의 의식과 관습을 받아들임으로써 타락했고, 하나님의 영과 능력을 잃었으며, 사람들의 양심을 통제하기 위해 세속 권력의 지원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이를 자신의 목적, 특히 “이단”을 처벌하는 데 사용한 교회인 교황권이 탄생했습니다. 미국이 짐승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종교 권력이 시민 정부를 통제하여 국가의 권위도 교회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GC 443.2

  “The special characteristic of the beast, and therefore of his image, is the breaking of God's commandments. Says Daniel, of the little horn, the papacy: “He shall think to change times and the law.” Daniel 7:25, R.V. And Paul styled the same power the “man of sin,” who was to exalt himself above God. One prophecy is a complement of the other. Only by changing God's law could the papacy exalt itself above God; whoever should understandingly keep the law as thus changed would be giving supreme honor to that power by which the change was made. Such an act of obedience to papal laws would be a mark of allegiance to the pope in the place of God. GC 446.1

  “짐승과 그의 형상의 특별한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작은 뿔, 즉 교황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시대와 율법을 바꾸려고 생각하리라.” 다니엘 7:25, R.V. 그리고 바울은 같은 권세를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죄의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 예언은 다른 예언을 보완합니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함으로써만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일 수 있으며, 그렇게 변경된 율법을 이해하여 지켜야하는 사람은 그 변경을 만든 권력에 최고의 영예를 바치는 것입니다. 교황의 법에 순종하는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교황에게 충성을 바치는 표시가 될 것입니다. GC 446.1

  “As the sign of the authority of the Catholic Church, papist writers cite “the very act of changing the Sabbath into Sunday, which Protestants allow of; ... because by keeping Sunday, they acknowledge the church's power to ordain feasts, and to command them under sin.”—Henry Tuberville, An Abridgment of the Christian Doctrine, page 58. What then is the change of the Sabbath, but the sign, or mark, of the authority of the Roman Church—'the mark of the beast’?” GC 448.1

  “가톨릭 교회의 권위의 표징으로 교부들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는 바로 그 행위를 개신교가 허용하는 것으로 인용한다; ...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그들은 절기를 제정하고 죄 아래서 명령할 수 있는 교회의 권한을 인정하기 때문이다.’-헨리 튜버빌, 기독교 교리 요약, 58페이지. 그렇다면 안식일의 변화는 로마 교회의 권위에 대한 표징, 즉 '짐승의 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GC 448.1

Read Revelation 12:17 and Revelation 14:12. How does worshiping the Creator finds its final expression?

요한계시록 12:17과 요한계시록 14:12을 읽어 보라. 창조주를 경배한다는 것은 결 국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In Revelation 14, men are called upon to worship the Creator; and the prophecy brings to view a class that, as the result of the threefold message, a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One of these commandments points directly to God as the Creator. The fourth precept declares: “The seventh day is the Sabbath of the Lord thy God: ...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all that in them is, and rested the seventh day: wherefore the Lord blessed the Sabbath day, and hallowed it.” Exodus 20:10, 11. Concerning the Sabbath, the Lord says, further, that it is “a sign, ... that ye may know that I am the Lord your God.” Ezekiel 20:20. And the reason given is: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heaven and earth, and on the seventh day He rested, and was refreshed.” Exodus 31:17.” GC 437.1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사람들은 창조주께 경배하라는 부름을 받고, 이 예언은 세 가지 메시지의 결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계층을 보게 합니다. 이 계명 중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가리킵니다. 네 번째 계명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니 ... 이는 엿새 동안에 주께서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을 쉬셨음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20:10, 11. 안식일에 관해 주님은 더 나아가 “이는 ... 너희로 나 주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려는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20:20. 그리고 그 이유는 “엿새 동안에 주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 안식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17.” GC 437.1

6월 10일 월요일

다가오는 위기


Read John 16;2, Matthew 10;22, 2 Timothy 3:12, and 1 Peter 4:12. What did the New Testament church experience, and how does that apply to Christ-end time church?

요한복음 16:2, 마태복음 10:22, 디모데후서 3:12, 베드로전서 4:12을 읽어 보라. 신약 교회는 어떤 일을 경험했으며, 마지막 때의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는가?

  “When Jesus revealed to His disciples the fate of Jerusalem and the scenes of the second advent, He foretold also the experience of His people from the time when He should be taken from them, to His return in power and glory for their deliverance. From Olivet the Saviour beheld the storms about to fall upon the apostolic church; and penetrating deeper into the future, His eye discerned the fierce, wasting tempests that were to beat upon His followers in the coming ages of darkness and persecution. In a few brief utterances of awful significance He foretold the portion which the rulers of this world would mete out to the church of God. Matthew 24:9, 21, 22. The followers of Christ must tread the same path of humiliation, reproach, and suffering which their Master trod. The enmity that burst forth against the world's Redeemer would be manifested against all who should believe on His name. GC 39.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운명과 재림의 장면을 계시하실 때, 그분은 또한 그분이 그들에게서 빼앗기실 때부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실 때까지 그분의 백성들이 겪게 될 경험에 대해서도 예언하셨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감람나무에서 사도 교회에 닥칠 폭풍을 보셨고, 미래를 더 깊이 꿰뚫어 보시며 다가오는 어둠과 박해의 시대에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닥칠 사납고 소모적인 폭풍을 식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끔찍한 의미를 지닌 몇 가지 짧은 말씀으로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가할 부분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9, 21, 22.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스승이 밟았던 굴욕과 모욕, 고통의 길을 똑같이 밟아야 합니다. 세상의 구속자에 대해 터져 나온 적개심은 그분의 이름을 믿어야 할 모든 사람에게도 나타날 것입니다. GC 39.1

  “The history of the early church testified to the fulfillment of the Saviour's words. The powers of earth and hell arrayed themselves against Christ in the person of His followers. Paganism foresaw that should the gospel triumph, her temples and altars would be swept away; therefore she summoned her forces to destroy Christianity. The fires of persecution were kindled. Christians were stripped of their possessions and driven from their homes. They “endured a great fight of afflictions.” Hebrews 10:32. They “had trial of cruel mockings and scourgings, yea, moreover of bonds and imprisonment.” Hebrews 11:36. Great numbers sealed their testimony with their blood. Noble and slave, rich and poor, learned and ignorant, were alike slain without mercy.” GC 39.2

  “초대 교회의 역사는 구세주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증언합니다. 땅과 지옥의 권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인격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배치했습니다. 이교도들은 복음이 승리하면 그들의 성전과 제단이 휩쓸릴 것을 예견하고 기독교를 파괴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했습니다. 박해의 불길에 불이 붙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큰 고난의 싸움을 견뎌냈습니다.” 히브리서 10:32. 그들은 “잔인한 조롱과 채찍질, 더 나아가 결박과 투옥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36. 수많은 사람들이 피로써 그들의 증언을 인봉했습니다. 귀족과 노예,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무지한 자가 모두 똑같이 자비 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GC 39.2

  If the tribulation of Matthew [Matt. 24:21]  took place in the period of the 1260 years of papal supremacy, which event is in the past, and the time of trouble, foretold by Daniel [Dan. 12:1], in the future, how could I harmonize Matthew's record with that of Daniel, for Matthew writes that there will be no greater tribulation than the one from 538 to 1798 A.D., while Daniel claims that the time of trouble is to be greater than any 'since there was a nation.'" 

  마태의 환난[마 24:21]이 1260년 교황 패권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이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고 다니엘이 예언한 환난의 때[단 12:1]는 미래에 일어난 사건인데, 마태는 주후 538년부터 1798년까지 환난보다 더 큰 환난이 없을 것이라고 기록한 반면 다니엘은 '나라가 생긴 이래' 그 어떤 환난보다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어떻게 마태의 기록과 다니엘의 기록을 조화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Speaking of the tribulation, says the scripture: "Except those days should be shortened, there should no flesh be saved;" i.e., God's people would have been completely wiped out from the face of the earth had it not been for the never failing promise: "But for the elect's sake 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Matt. 24:22), whereas in the time of trouble Michael will stand up to deliver every one that shall be "found written in the book." In other words, during the time of the tribulation the righteous were killed and the wicked delivered, whereas in the time of trouble the righteous will be delivered and the wicked killed. Therefore, the tribulation and the time of trouble are two outstanding events, each one being the greatest of its kind in the annals of prophetic history -- one the greatest against the righteous and the other the greatest against the wicked. Thus we see that, both Matthew and Daniel are correct -- showing that each event is the greatest of its kind. 

  환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즉,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약속이 없었다면 지구상에서 완전히 전멸되었을 것입니다.“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이 단축되리라”(마 24:22), 반면 환난의 때에 마이클이 일어나서 “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을 구출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난의 시기에는 의인이 죽임을 당하고 악인이 구출되는 반면, 환난의 시기에는 의인이 구출되고 악인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환난과 환난의 시기는 예언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사건으로, 하나는 의인에 대한 가장 위대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악인에 대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와 다니엘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각 사건이 그 종류 중 가장 큰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As the tribulation is the greatest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it shows that there has never been as great a tribulation against God's people as there was during the above stated period; and as Jesus said that there never shall be the like, He assures us that God will not permit the wicked after 1798 A.D., to again "wear out the saints," whereas the time of trouble, says Daniel, is the greatest "since there was a nation" showing that the deluge was either greater or equal to it, also that the time of trouble could be followed by a greater one, for He says, "even to that same time" instead, "nor ever shall be." 

   환난은 “창세 이래로” 가장 큰 환난이므로, 위에 언급된 기간 동안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처럼 큰 환난이 있었던 적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후 1798년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하십니다, 다시“성도들을 지치게”하는 반면, 다니엘은“나라가 생긴 이래로”홍수가 더 크거나 그와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큰 홍수이며, 또한“같은 시간까지”대신에“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 큰 홍수가 뒤따를 수 있다고 다니엘은 말합니다. 

6월 11일 화요일

Identifying the Beast: Part 1
짐승의 정체– 1


Read Revelation 13:1, 2, 6. Where does this beast rise from, and who gives it authority? What key words is used to identify the beast power? 

요한계시록 13:1, 2을 읽어 보라. 이 짐승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그에게 권세를 준 자는 누구인가?

  “In chapter 13 (verses 1-10) is described another beast, “like unto a leopard,” to which the dragon gave “his power, and his seat, and great authority.” This symbol, as most Protestants have believed, represents the papacy, which succeeded to the power and seat and authority once held by the ancient Roman empire. Of the leopardlike beast it is declared: “There was given unto him a mouth speaking great things and blasphemies.... And he opened his mouth in blasphemy against God, to blaspheme His name, and His tabernacle, and them that dwell in heaven. And it was given unto him to make war with the saints, and to overcome them: and power was given him over all kindreds, and tongues, and nations.” This prophecy, which is nearly identical with the description of the little horn of Daniel 7, unquestionably points to the papacy.” GC 439.1

  “13장(1-10절)에는 ‘표범과 같은’ 또 다른 짐승이 묘사되는데, 이 용은 ‘그의 권세와 그의 자리와 큰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이 믿어온 것처럼 이 상징은 고대 로마 제국이 가졌던 권력과 자리, 권위를 계승한 교황권을 상징합니다. 표범 같은 짐승에 대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에게 큰 일과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이 주어졌고.... 그가 입을 열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전쟁을 벌이고 그들을 이기라는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고 모든 족속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다니엘서 7장의 작은 뿔에 대한 설명과 거의 동일한 이 예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권을 가리킵니다.” GC 439.1

  “‘Power was given unto him to continue forty and two months.’ And, says the prophet, “I saw one of his heads as it were wounded to death.” And again: “He that leadeth into captivity shall go into captivity: he that killeth with the sword must be killed with the sword.” The forty and two months are the same as the “time and times and the dividing of time,” three years and a half, or 1260 days, of Daniel 7—the time during which the papal power was to oppress God's people. This period, as stated in preceding chapters, began with the supremacy of the papacy, A.D. 538, and terminated in 1798. At that time the pope was made captive by the French army, the papal power received its deadly wound, and the prediction was fulfilled, ‘He that leadeth into captivity shall go into captivity.’” GC 439.2

  “‘사십 두 달을 계속할 권능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선지자는 “나는 그의 머리 중 하나가 상처를 입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포로로 인도하는 자는 포로로 갈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마흔 두 달은 다니엘서 7장의 “때와 때와 때를 나누는 때”인 3년 반, 즉 1260일, 즉 교황의 권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기간과 동일합니다. 이전 장에서 설명한 대로 이 시기는 교황권의 전성기인 서기 538년부터 시작되어 1798년에 종료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황은 프랑스 군대에 의해 포로가 되었고, 교황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으며, '포로로 인도하는 자는 포로가 될 것이다'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GC 439.2

  The ten crownless horns of Daniel’s fourth beast being symbolical of kings that were to arise out of the Roman Empire, the crowns on the leopard-like beast show that the beast represents the period in which the kings took their crowns, the period after the disintegration of the Pagan Roman Empire. 

  다니엘이 묘사한 네 번째 짐승의 열 뿔은 로마 제국에서 나올 왕을 상징하며, 표범 같은 짐승의 왕관은 이 짐승이 이교도 로마 제국이 붕괴된 후 왕들이 왕관을 쓴 시기를 상징합니다. 

  Still further, the leopard-like beast blasphemed God and His tabernacle just as long as did Daniel’s fourth beast in his second phase, Ecclesiastical Rome; that is, “a time and times and the dividing of time” (3 years and 6 months), forty and two months. Plain it is, then, that the leopard-like beast reigned contemporaneously with the non-descript beast in his second phase, the phase of the little horn-head. The deadly wound on the leopard-like therefore represents the deadly blow which it received from the Protestant Reformation. Hence its wounded head represents the horn-head power (an amalgamation of civil and religious powers) of Daniel’s beast divested of his civil power – dehorned. 

  더 나아가 표범 같은 짐승은 다니엘의 두 번째 단계인 교회 로마 시대, 즉 “한 때와 때를 나누는 때”(3년 6개월), 사십 2개월 동안 네 번째 짐승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그분의 장막을 모독했습니다. 그러므로 표범 같은 짐승이 두 번째 단계인 작은 뿔 머리의 단계에서 설명되지 않은 짐승과 동시대에 통치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표범 같은 짐승의 치명적인 상처는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으로부터 받은 치명적인 타격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상처 입은 머리는 다니엘의 짐승이 시민 권력을 빼앗긴, 즉 뿔이 제거된 뿔머리 권력(시민 권력과 종교 권력이 합쳐진 것)을 상징합니다. 

6월 12일 수요일

Identifying the Beast: Part 2
짐승의 정체-2


Read Revelation 15:5. Write this identifying characteristic in the space below.
요한계시록 13:5을 읽고 짐승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적어보라.

Now, since the horns of John’s beast symbolize the nations, and his wounded head symbolizes a religious organization divorced from a civil power, and since his seven heads are all alike, save for the wound on one of them, it becomes obvious that the heads, seven in number, portray religious bodies, Christendom in its entirety. The horns, though, ten in number, portray the civil governments in their entirety. Both horns and heads therefore represent the world of today just as each of Daniel’s four beasts respectively, represented the world in their day. 

  이제 요한이 그린 짐승의 뿔은 열방을 상징하고, 상처 입은 머리는 시민권에서 분리된 종교 단체를 상징하며, 일곱 개의 머리는 그 중 하나의 상처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하므로, 일곱 개의 머리는 종교 단체, 즉 그리스도교 국 전체를 묘사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지만 뿔은 열 개로 시민 정부 전체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뿔과 머리 모두 다니엘의 네 짐승이 각각 당대의 세상을 상징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세상을 상징합니다. 
 
  The horns and heads all being on the beast at the same time, not coming up one after another, or in like manner falling off as the horns in Daniel chapters 7 and 8, should forever convince every rational mind that the horns and heads symbolize civil and religious bodies, all existing at the same time, not one following the other. 

 뿔과 머리가 모두 동시에 짐승에 있고, 다니엘 7장과 8장에 나오는 뿔처럼 차례로 올라오거나 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뿔과 머리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시민과 종교 단체를 상징한다는 것은 모든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영원히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The blasphemy being over the heads, not over the horns, denotes that the religious bodies portrayed therein do not worship God according to Truth, that they are not wholly what they profess to be. The exact interpretation that Inspiration places on the word “blasphemy” is this: “I know the blasphemy of them which say they are Jews, and are not.” Rev. 2:9. 

 신성 모독이 뿔이 아닌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묘사된 종교 단체가 진리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그들이 전적으로 그들이 고백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인스퍼레이션이 '신성 모독'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린 정확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유대인이라 하면서도 유대인이 아닌 자들의 신성 모독을 아노라.” 계시록 2:9. 

   It is better for all of us to acknowledge our failures than to evade the Truth, for it is the Truth that shall make us free. 

   진리를 피하는 것보다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더 낫습니다. 

 Moreover, since we admit that the Reformation inflicted the deadly blow and brought forth Protestantism, and since Inspiration says the wound was healed, all these prove something which if we confess, may save our jeopardized lives, and make us as great as did the whole-hearted confessions anciently make David great. What is it that we have to confess? – Just this: If Protestantism wounded the beast by the Reformation, then the healing of the wound shows nothing less that that the Reformation has failed to keep the wound open, that the goal of the reformers has died, and despotism has been revived. Indeed, this symbolism is saying nothing more than what the message to the Laodiceans is saying: 

 게다가 종교개혁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개신교를 탄생시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감이 그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고백하면 위태로운 우리의 생명을 구하고 고대에 전심으로 고백한 것이 다윗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바로 이것입니다: 개신교가 종교개혁으로 짐승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그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것은 종교개혁이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고, 개혁자들의 목표가 죽고 전제주의가 부활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상징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다름 아닙니다: 

  “Because thou sayest, I am rich, and increased with goods, and have need of nothing; and knowest not that thou art wretched, and miserable, and poor, and blind, and naked: I counsel thee to buy of Me gold tried in the fire, that thou mayest be rich; and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do not appear; and anoint thine eyes with eyesalve, that thou mayest see.” Rev. 3:17, 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요하고 재물이 많아 부족함이 없다 하고 네가 비참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줄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네게 권하노니 불로 연단한 금을 내게서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가 나타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네 눈에 기름을 부어 보게 하라.” 계 3:17, 18. 

  For one to be in such a deplorable condition and at the same time to contend that he has need of nothing, is indeed a blasphemy. 

  그렇게 비참한 상태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신성 모독입니다. 

6월 13일 목요일

The beast from the Earth
땅에서 올라온 짐승


Read Revelation 13:11-18. How does this second beast differ from the first beast of Revelation 13?

요한계시록 13:11-18을 읽어 보라. 이 두 번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첫 번째 짐승과 어떻게 다른가?

  Unlike the first beast, the second beast comes from the earth. The sea and the earth obviously point to two different locations. We know that the beasts of Daniel 7, and the leopard-like of Revelation 13, the beasts that arose from the sea, all originated in the Old Country, the lands where humanity originated. Yes, the “sea” befittingly symbolizes the Old Country because the sea is the store-house of the waters, the place where the waters originate, as the Old Country is the place from where humanity spread out. 

  첫 번째 짐승과 달리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나옵니다. 바다와 땅은 분명히 서로 다른 두 곳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서 7장의 짐승과 요한계시록 13장의 표범과 같은 짐승,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모두 인류의 기원이 된 땅인 옛 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다는 물의 저장고이자 물의 발원지이며, 인류가 퍼져나간 곳이 옛 나라이기 때문에 '바다'는 옛 나라를 상징하는 단어로 적절합니다. 

 The “earth,” then, points to a place away from the “sea” and the opposite of what sea stands for, – a country made up of inhabitants who have emigrated from elsewhere. The only such country or nation away from the Old Country and as influential as portrayed in this two-horned beast that arises after the formation of the leopard-like beast, in the Protestant period, is the United States. Moreover, the United States is already a world power, and so we need not be guessing any more. The beast’s two horns point to its two political ruling powers – Democrats and Republicans. Their lamb-like character gives the appearance of innocence, harmlessness, and charitability. The beast’s speaking like a dragon nevertheless repudiates the lamb-like appearance of the horns. 

  따라서 '땅'은 '바다'에서 떨어진 곳이자 바다가 의미하는 것과 반대되는 곳, 즉 다른 곳에서 이주한 주민들로 구성된 국가를 가리킵니다. 개신교 시대에 표범과 같은 짐승이 형성된 후 발생하는 이 두 뿔 달린 짐승에 묘사된 것처럼 구국에서 떨어져 있고 영향력이 있는 유일한 국가 또는 민족은 미국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세계 강대국이기 때문에 더 이상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짐승의 두 뿔은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두 개의 정치적 지배 세력을 가리킵니다. 양과 같은 성격은 순수함, 무해함, 자비심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이 용처럼 말하는 것은 뿔의 양 같은 모습을 거부합니다. 

 The two-horned beast exercises all the power which the first beast, the leopard-like, exercised, again showing it to be a world power. Indeed, it requires just such a power to compel all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to worship as he commands, and to implement a likeness of a church and state government that is as outdated as are the Middle Ages themselves. Yes, it takes such a power to influence the world, save those whose names are written in the Lamb’s Book of Life, to bow down to it. 

 두 뿔 달린 짐승은 표범과 같은 첫 번째 짐승이 행사했던 모든 권세를 행사하며 다시 한 번 세계 강대국임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지구상의 모든 주민들이 그의 명령대로 예배하도록 강요하고 중세 시대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와 국가 정부를 구현하려면 그러한 힘이 필요합니다. 예,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절을 하려면 그러한 힘이 필요합니다. 

Read Revelation 13:11, 12. What change do you see in this beast and who does it speak?

요한계시록 13:11, 12을 읽어 보라. 이 짐승은 어떤 변화를 보이며 어떻게 말하는가?

  “The lamblike horns and dragon voice of the symbol point to a striking contradiction between the professions and the practice of the nation thus represented. The “speaking” of the nation is the action of its legislative and judicial authorities. By such action it will give the lie to those liberal and peaceful principles which it has put forth as the foundation of its policy. The prediction that it will speak “as a dragon” and exercise “all the power of the first beast” plainly foretells a development of the spirit of intolerance and persecution that was manifested by the nations represented by the dragon and the leopardlike beast. And the statement that the beast with two horns “causeth the earth and them which dwell therein to worship the first beast” indicates that the authority of this nation is to be exercised in enforcing some observance which shall be an act of homage to the papacy. GC 442.1


  “이 상징의 양 같은 뿔과 용의 목소리는 이 상징이 나타내는 국가의 직업과 실천 사이의 현저한 모순을 가리킵니다. 국가의 '말하기'는 입법 및 사법 당국의 행동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국가가 정책의 기초로 내세운 자유롭고 평화로운 원칙에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용처럼” 말하고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은 용과 표범 같은 짐승으로 대표되는 국가들에 의해 나타난 편협과 박해의 정신이 발전할 것을 분명히 예언합니다. 그리고 두 뿔을 가진 짐승이 “땅과 그 안에 사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말씀은 이 나라의 권위가 교황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위가 될 어떤 준수를 시행하는 데 행사될 것임을 나타냅니다. GC 442.1

6월 14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After the warning against the worship of the beast and his image the prophecy declares: “Here are they that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the faith of Jesus.” Since those who keep God's commandments are thus placed in contrast with those that worship the beast and his image and receive his mark, it follows that the keeping of God's law, on the one hand, and its violation, on the other, will mak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worshipers of God and the worshipers of the beast.” GC 445.3

  “짐승과 그의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가 있은 후 예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배치되므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위반하는 것이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짐승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구별하게 될 것입니다.” GC 445.3

  “The special characteristic of the beast, and therefore of his image, is the breaking of God's commandments. Says Daniel, of the little horn, the papacy: “He shall think to change times and the law.” Daniel 7:25, R.V. And Paul styled the same power the “man of sin,” who was to exalt himself above God. One prophecy is a complement of the other. Only by changing God's law could the papacy exalt itself above God; whoever should understandingly keep the law as thus changed would be giving supreme honor to that power by which the change was made. Such an act of obedience to papal laws would be a mark of allegiance to the pope in the place of God.” GC 446.1

  “짐승과 그의 형상의 특별한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작은 뿔, 즉 교황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시대와 율법을 바꾸려고 생각하리라.” 다니엘 7:25, R.V. 그리고 바울은 같은 권세를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죄의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 예언은 다른 예언을 보완합니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함으로써만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일 수 있으며, 그렇게 변경된 율법을 이해하여 지켜야하는 사람은 그 변경을 만든 권력에 최고의 영예를 바치는 것입니다. 교황의 법에 순종하는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교황에게 충성을 바치는 표시가 될 것입니다.” GC 446.1

  “While the worshipers of God will be especially distinguished by their regard for the fourth commandment,—since this is the sign of His creative power and the witness to His claim upon man's reverence and homage,—the worshipers of the beast will be distinguished by their efforts to tear down the Creator's memorial, to exalt the institution of Rome. It was in behalf of the Sunday that popery first asserted its arrogant claims (see Appendix); and its first resort to the power of the state was to compel the observance of Sunday as “the Lord's day.” But the Bible points to the seventh day, and not to the first, as the Lord's day. Said Christ: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The fourth commandment declares: “The seventh day is the Sabbath of the Lord.” And by the prophet Isaiah the Lord designates it: “My holy day.” Mark 2:28; Isaiah 58:13.” GC 446.3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특히 제 4 계명에 대한 그들의 존중으로 구별 될 것이지만 -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의 표시이며 인간의 경외와 경의에 대한 그분의 주장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에 - 짐승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창조주의 기념비를 허물고 로마의 제도를 높이려는 노력으로 구별 될 것입니다. 교황청이 처음으로 오만한 주장을 펼친 것은 일요일이었으며(부록 참조), 국가 권력에 대한 첫 번째 수단은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첫째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주님의 날로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기도 하다.” 네 번째 계명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일곱째 날은 주님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님은 그것을 지정하십니다: “나의 거룩한 날이다.” 마가복음 2:28; 이사야 58:13.” GC 4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