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when ye stand praying, forgive, if ye have ought against any: that your Father also which is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trespasses.” KJV — Mark 11:25
“또 기도할 때에 너희가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라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KJV - 마가복음 11:25
“The Sadducees had flattered themselves that they of all men adhered most strictly to the Scriptures. But Jesus showed that they had not known their true meaning. That knowledge must be brought home to the heart by the enlightenment of the Holy Spirit. Their ignorance of the Scriptures and the power of God He declared to be the cause of their confusion of faith and darkness of mind. They were seeking to bring the mysteries of God within the compass of their finite reasoning. Christ called upon them to open their minds to those sacred truths that would broaden and strengthen the understanding. Thousands become infidels because their finite minds cannot comprehend the mysteries of God. They cannot explain the wonderful exhibition of divine power in His providences, therefore they reject the evidences of such power, attributing them to natural agencies which they can comprehend still less. The only key to the mysteries that surround us is to acknowledge in them all the presence and power of God. Men need to recognize God as the Creator of the universe, One who commands and executes all things. They need a broader view of His character, and of the mystery of His agencies.” DA 605.5
“사두개인들은 모든 사람 중에서 자신들이 성경을 가장 엄격하게 지킨다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지식은 성령의 깨달음을 통해 마음속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그들의 무지가 그들의 신앙의 혼란과 마음의 어두움의 원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비를 자신들의 유한한 이성의 나침반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이해를 넓히고 강화할 수 있는 신성한 진리에 마음을 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교도가 된 것은 그들의 유한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섭리에서 신성한 능력의 놀라운 전시를 설명 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능력의 증거를 거부하고 이해할 수있는 자연 기관에 기인하여 더 적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신비에 대한 유일한 열쇠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임재와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이자 모든 것을 명령하고 실행하시는 분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기관들의 신비에 대한 더 넓은 관점이 필요합니다.” DA 605.5
Read Mark 11:1-11 and Zechariah 9:9, 10. What is happening here?
마가복음 11:1-11과 스가랴 9:9, 10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It was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that Christ made His triumphal entry into Jerusalem. Multitudes who had flocked to see Him at Bethany now accompanied Him, eager to witness His reception. Many people were on their way to the city to keep the Passover, and these joined the multitude attending Jesus. All nature seemed to rejoice. The trees were clothed with verdure, and their blossoms shed a delicate fragrance on the air. A new life and joy animated the people. The hope of the new kingdom was again springing up.” DA 569.3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신 것은 한 주의 첫날이었습니다. 베다니에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 몰려들었던 수많은 무리가 이제 그분의 영접을 목격하기 위해 그분과 동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도시로 가는 중이었고, 이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모든 자연이 기뻐하는 듯했습니다. 나무들은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꽃들은 은은한 향기를 발산했습니다. 새로운 생명과 기쁨이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새 왕국의 희망이 다시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DA 569.3
“Christ was following the Jewish custom for a royal entry. The animal on which He rode was that ridden by the kings of Israel, and prophecy had foretold that thus the Messiah should come to His kingdom. No sooner was He seated upon the colt than a loud shout of triumph rent the air. The multitude hailed Him as Messiah, their King. Jesus now accepted the homage which He had never before permitted, and the disciples received this as proof that their glad hopes were to be realized by seeing Him established on the throne. The multitude were convinced that the hour of their emancipation was at hand. In imagination they saw the Roman armies driven from Jerusalem, and Israel once more an independent nation. All were happy and excited; the people vied with one another in paying Him homage. They could not display outward pomp and splendor, but they gave Him the worship of happy hearts. They were unable to present Him with costly gifts, but they spread their outer garments as a carpet in His path, and they also strewed the leafy branches of the olive and the palm in the way. They could lead the triumphal procession with no royal standards, but they cut down the spreading palm boughs, Nature's emblem of victory, and waved them aloft with loud acclamations and hosannas.” DA 570.1
“그리스도는 왕의 입성을 위한 유대인의 관습을 따르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타신 동물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타는 동물이었고,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그분의 왕국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분이 나귀에 앉으시자마자 큰 승리의 함성이 하늘을 찢었습니다. 군중은 그분을 메시아, 즉 그들의 왕으로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전에는 허락하지 않으셨던 경의를 받아들이셨고, 제자들은 그분이 왕좌에 오르신 것을 보고 그들의 기쁜 희망이 실현될 것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군중은 자신들이 해방될 때가 가까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고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독립 국가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흥분했고, 서로 경쟁하듯 주님께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화려하고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주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값비싼 선물은 드리지 못했지만, 겉옷을 펼쳐 주님의 길에 카펫을 깔고 올리브 잎사귀와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왕의 기준 없이도 승리의 행렬을 이끌 수 있었지만, 자연의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잘라 큰 환호와 호산나로 높이 흔들었습니다.” DA 570.1
“Never before in His earthly life had Jesus permitted such a demonstration. He clearly foresaw the result. It would bring Him to the cross. But it was His purpose thus publicly to present Himself as the Redeemer. He desired to call attention to the sacrifice that was to crown His mission to a fallen world. While the people were assembling at Jerusalem to celebrate the Passover, He, the antitypical Lamb, by a voluntary act set Himself apart as an oblation. It would be needful for His church in all succeeding ages to make His death for the sins of the world a subject of deep thought and study. Every fact connected with it should be verified beyond a doubt. It was necessary, then, that the eyes of all people should now be directed to Him; the events which preceded His great sacrifice must be such as to call attention to the sacrifice itself. After such a demonstration as that attending His entry into Jerusalem, all eyes would follow His rapid progress to the final scene.” DA 571.2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애에서 그런 시위를 허락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그 결과를 예견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구세주로 드러내는 것이 공개적으로 그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분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희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유월절을 축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이는 동안, 전형적인 어린 양이신 그분은 자발적인 행위로 자신을 구별된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세상의 죄를 위한 그분의 죽음을 깊은 생각과 연구의 주제로 삼는 것은 이후의 모든 시대에 그분의 교회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모든 사실은 의심할 여지없이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분께로 향해야 했고, 그분의 위대한 희생에 앞서 일어난 사건들은 그 희생 자체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분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와 같은 시위가 있은 후, 모든 시선은 마지막 장면으로 향하는 그분의 빠른 진행을 따라갈 것입니다.” DA 571.2
“The events connected with this triumphal ride would be the talk of every tongue, and would bring Jesus before every mind. After His crucifixion, many would recall these events in their connection with His trial and death. They would be led to search the prophecies, and would be convinced that Jesus was the Messiah; and in all lands converts to the faith would be multiplied.” DA 571.3
“이 승리와 관련된 사건들은 모든 방언으로 회자되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시련과 죽음과 관련하여 이 사건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을 찾게 될 것이고,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며, 모든 땅에서 신앙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번성할 것입니다.” DA 571.3
Read Mark 11:12-26. What is the significance of the events depicted here?
마가복음 11:12-26을 읽어 보라. 여기에 묘사된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The entire night Jesus spent in prayer, and in the morning He came again to the temple. On the way He passed a fig orchard. He was hungry, “and seeing a fig tree afar off having leaves, He came, if haply He might find anything thereon: and when He came to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for the time of figs was not yet.” DA 581.3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시다가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도중에 예수님은 무화과 과수원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분은 배가 고프셨고 “멀리서 무화과나무에 잎이 있는 것을 보시고 혹시 거기서 무엇이 있을까 하여 오셨으나 무화과나무에 가보니 잎만 있었으니 이는 아직 무화과 때가 아니었음이라.” DA 581.3
“It was not the season for ripe figs, except in certain localities; and on the highlands about Jerusalem it might truly be said, “The time of figs was not yet.” But in the orchard to which Jesus came, one tree appeared to be in advance of all the others. It was already covered with leaves. It is the nature of the fig tree that before the leaves open, the growing fruit appears. Therefore this tree in full leaf gave promise of well-developed fruit. But its appearance was deceptive. Upon searching its branches, from the lowest bough to the topmost twig, Jesus found “nothing but leaves.” It was a mass of pretentious foliage, nothing more.” DA 581.4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무화과가 익을 때가 아니었고, 예루살렘 주변의 고지대에서는 “무화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던 과수원에는 한 나무가 다른 모든 나무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미 잎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잎이 열리기 전에 자라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무화과 나무의 특성입니다. 따라서 잎이 가득한이 나무는 잘 발달 된 과일에 대한 약속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기만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나뭇가지부터 가장 높은 나뭇가지까지 그 가지를 살펴본 결과 “잎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가식적인 나뭇잎 덩어리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DA 581.4
“Christ uttered against it a withering curse. “No man eat fruit of thee hereafter forever,” He said. The next morning, as the Saviour and His disciples were again on their way to the city, the blasted branches and drooping leaves attracted their attention. “Master,” said Peter, “behold, the fig tree which Thou cursedst is withered away.” DA 582.1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에 대해 시들어가는 저주를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아무도 네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구세주와 제자들이 다시 도시로 향하는 길에 앙상한 가지와 처진 잎사귀가 제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시들어 버렸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DA 582.1
“The cursing of the fig tree was an acted parable. That barren tree, flaunting its pretentious foliage in the very face of Christ, was a symbol of the Jewish nation. The Saviour desired to make plain to His disciples the cause and the certainty of Israel's doom. For this purpose He invested the tree with moral qualities, and made it the expositor of divine truth. The Jews stood forth distinct from all other nations, professing allegiance to God. They had been specially favored by Him, and they laid claim to righteousness above every other people. But they were corrupted by the love of the world and the greed of gain. They boasted of their knowledge, but they were ignorant of the requirements of God, and were full of hypocrisy. Like the barren tree, they spread their pretentious branches aloft, luxuriant in appearance, and beautiful to the eye, but they yielded “nothing but leaves.” The Jewish religion, with its magnificent temple, its sacred altars, its mitered priests and impressive ceremonies, was indeed fair in outward appearance, but humility, love, and benevolence were lacking." DA 582.4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연기된 비유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 앞에서 가식적인 잎사귀를 과시하는 그 척박한 나무는 유대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파멸의 원인과 확실성을 분명히 밝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분은 나무에 도덕적 자질을 부여하여 신성한 진리의 해설자로 삼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모든 민족과 구별되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공언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으며 다른 모든 민족보다 의로움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이득에 대한 탐욕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지식을 자랑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에는 무지했고 위선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메마른 나무처럼 가식적인 가지를 높이 뻗어 겉모습은 무성하고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잎만 무성”했습니다. 웅장한 성전, 신성한 제단, 성직자, 인상적인 의식을 갖춘 유대 종교는 겉모습은 참으로 공평했지만 겸손, 사랑, 자비가 부족했습니다.” DA 582.4
“All the trees in the fig orchard were destitute of fruit; but the leafless trees raised no expectation, and caused no disappointment. By these trees the Gentiles were represented. They were as destitute as were the Jews of godliness; but they had not professed to serve God. They made no boastful pretensions to goodness. They were blind to the works and ways of God. With them the time of figs was not yet. They were still waiting for a day which would bring them light and hope. The Jews, who had received greater blessings from God, were held accountable for their abuse of these gifts. The privileges of which they boasted only increased their guilt.” DA 583.1
“무화과 과수원에 있는 모든 나무는 열매가 없었지만 잎이 없는 나무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실망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이 나무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가난했지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함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과 방식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화과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빛과 희망을 가져다줄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은 유대인들은 이러한 은사를 남용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들이 자랑했던 특권은 그들의 죄책감만 키웠을 뿐입니다.” DA 583.1
“The warning is for all time. Christ's act in cursing the tree which His own power had created stands as a warning to all churches and to all Christians. No one can live the law of God without ministering to others. But there are many who do not live out Christ's merciful, unselfish life. Some who think themselves excellent Christians do not understand what constitutes service for God. They plan and study to please themselves. They act only in reference to self. Time is of value to them only as they can gather for themselves. In all the affairs of life this is their object. Not for others but for themselves do they minister. God created them to live in a world where unselfish service must be performed. He designed them to help their fellow men in every possible way. But self is so large that they cannot see anything else. They are not in touch with humanity. Those who thus live for self are like the fig tree, which made every pretension but was fruitless. They observe the forms of worship, but without repentance or faith. In profession they honor the law of God, but obedience is lacking. They say, but do not. In the sentence pronounced on the fig tree Christ demonstrates how hateful in His eyes is this vain pretense. He declares that the open sinner is less guilty than is he who professes to serve God, but who bears no fruit to His glory.” DA 584.1
“이 경고는 모든 시대를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창조하신 나무를 저주하신 그리스도의 행위는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경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자비롭고 이타적인 삶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스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위한 봉사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계획하고 공부합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합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자신을 위해 모을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삶의 모든 일에서 이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봉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타적인 봉사를 수행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도록 그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동료 인간을 돕도록 설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아가 너무 커서 다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인류와 접촉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온갖 허세를 부렸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그들은 예배의 형식은 지키지만 회개나 믿음은 없습니다. 고백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만 순종은 부족합니다. 그들은 말하지만 행하지 않습니다. 무화과 나무에서 선포 된 문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이 헛된 가식이 그분의 눈에 얼마나 미워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지만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열매를 맺지 않는 죄인이 죄가 적다고 선언하십니다.” DA 584.1
“At the beginning of His ministry, Christ had driven from the temple those who defiled it by their unholy traffic; and His stern and godlike demeanor had struck terror to the hearts of the scheming traders. At the close of His mission He came again to the temple, and found it still desecrated as before. The condition of things was even worse than before. The outer court of the temple was like a vast cattle yard. With the cries of the animals and the sharp chinking of coin was mingled the sound of angry altercation between traffickers, and among them were heard the voices of men in sacred office. The dignitaries of the temple were themselves engaged in buying and selling and the exchange of money. So completely were they controlled by their greed of gain that in the sight of God they were no better than thieves.” DA 589.1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고, 그분의 엄격하고 신과 같은 태도는 음모를 꾸미는 상인들의 마음에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임무가 끝날 무렵 예수님은 다시 성전에 오셨지만 성전은 여전히 전처럼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성전 바깥뜰은 광활한 가축 마당과 같았습니다.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날카로운 동전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밀매상들 사이의 성난 말다툼이 섞여 있었고, 그중에는 신성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성전의 고위 인사들은 스스로 매매와 돈의 교환에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득에 대한 탐욕에 완전히 지배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도둑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DA 589.1
“In cleansing the temple from the world's buyers and sellers, Jesus announced His mission to cleanse the heart from the defilement of sin,—from the earthly desires, the selfish lusts, the evil habits, that corrupt the soul.” DA 161.1
“예수님은 세상의 매매업자들로부터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면서, 영혼을 부패시키는 죄의 더러움, 즉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적인 정욕, 악한 습관으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그분의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DA 161.1
“We are not to drift into worldly channels. Consider the cleansing of the temple at the beginning of Christ's ministry, and at the close of his life, his personal labors in the guise of humanity. Whom did he find intent on gain? The Jews had made the courts of the temple a scene of sacrilegious traffic. They had turned the ancient and sacred institution of the Passover into a means of vile profit." SpTA07 54.1
“우리는 세속적인 통로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시작될 때 성전 정화와 그의 생애 마지막에 인간을 가장한 그의 개인적인 수고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누구에게 이득을 주려고 했습니까? 유대인들은 성전 안뜰을 신성 모독의 현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이라는 고대의 신성한 제도를 사악한 이익의 수단으로 바꾼 것입니다.” SpTA07 54.1
Today this sacrilegious work is being more than repeated. There will be messages borne; and those who have rejected the messages God has sent, will hear most startling declarations. The Holy Spirit will invest the announcement with a sanctity and solemnity which will appear terrible in the ears of those who have heard the pleadings of infinite love, and have not responded to the offers of pardon and forgiveness. Injured and insulted Deity will speak, proclaiming the sins that have been hidden. As the priests and rulers, full of indignation and terror, sought refuge in flight at the last scene of the cleansing of the temple, so will it be in the work for these last days. The woes that will be pronounced upon those that have had light from heaven, and yet did not heed it, they will feel, but will have no power to act.” SpTA07 54.2
오늘날 이 신성 모독적인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지를 거부한 사람들은 가장 놀라운 선언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무한한 사랑의 간청을 듣고 사죄와 용서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의 귀에 끔찍하게 보일 성스러움과 엄숙함으로 그 발표를 투자하실 것입니다. 부상 당하고 모욕당한 신이 말하여 숨겨져 있던 죄를 선포 할 것입니다. 분노와 공포로 가득 찬 사제들과 통치자들이 성전 정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난처를 찾았듯이이 마지막 날을위한 작업에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빛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포 될 비참함은 느낄 것이지만 행동 할 힘이 없을 것입니다.” SpTA07 54.2
He thereby twice gave warning in type that also in the closing of the Christian dispensation, He will twice cleanse His church: once at the sealing of the first fruits the 144,000, and again at the sealing of the second fruits, the “great multitude.” Rev. 7:1-9
이로써 그리스도인 경륜의 종말에도 그분은 두 번, 즉 첫 열매인 144,000명을 인봉할 때와 두 번째 열매인 “큰 무리”를 인봉할 때, 그분의 교회를 두 번 정결하게 하실 것이라는 경고를 유형으로 두 번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1-9
Read Mark 11:27-33. What challenge did the religious leaders bring to Jesus and how did He respond?
마가복음 11:27-33을 읽어 보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도전을 제기했 으며, 그분은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By what authority doest Thou these things? and who gave Thee this authority?’ They expected Him to claim that His authority was from God. Such an assertion they intended to deny. But Jesus met them with a question apparently pertaining to another subject, and He made His reply to them conditional on their answering this question. “The baptism of John,” He said, “whence was it? from heaven, or of men?” DA 593.3
“'네가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행하느냐 누가 네게 이 권세를 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주장을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주제와 관련된 질문으로 그들을 만나셨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조건부로 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로부터 왔느냐 사람에게서 왔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593.3
“The priests saw that they were in a dilemma from which no sophistry could extricate them. If they said that John's baptism was from heaven, their inconsistency would be made apparent. Christ would say, Why have ye not then believed on him? John had testified of Christ, “Behold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John 1:29. If the priests believed John's testimony, how could they deny the Messiahship of Christ? If they declared their real belief, that John's ministry was of men, they would bring upon themselves a storm of indignation; for the people believed John to be a prophet.” DA 593.4
“제사장들은 어떤 궤변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한다면, 그들의 모순이 명백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왜 그를 믿지 않느냐?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증거했습니다. 요한복음 1:29. 제사장들이 요한의 증언을 믿었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할 수 있었을까요? 만일 그들이 요한의 사역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그들의 진정한 믿음을 선언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분노의 폭풍을 일으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DA 593.4
“With intense interest the multitude awaited the decision. They knew that the priests had professed to accept the ministry of John, and they expected them to acknowledge without a question that he was sent from God. But after conferring secretly together, the priests decided not to commit themselves. Hypocritically professing ignorance, they said, “We cannot tell.” “Neither tell I you,” said Christ, “by what authority I do these things.” DA 594.1
“군중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이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한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 없이 인정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비밀리에 함께 의논한 끝에 스스로 헌신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위선적으로 무지를 고백하면서 그들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도 너희에게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594.1
“Scribes, priests, and rulers were all silenced. Baffled and disappointed, they stood with lowering brows, not daring to press further questions upon Christ. By their cowardice and indecision they had in a great measure forfeited the respect of the people, who now stood by, amused to see these proud, self-righteous men defeated.” DA 594.2
“서기관, 제사장, 통치자들은 모두 침묵했습니다. 당황하고 실망한 그들은 감히 그리스도께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못한 채 눈썹을 내리깔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으로 그들은 백성들의 존경을 크게 잃었고, 이제 그들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들이 패배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DA 594.2
Read Mark 12:1-12. How did Jesus follow up His refusal to answer, and what effect did it have?
마가복음 12장 1-12절을 읽으세요.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을 거부하셨고, 그 결과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Hear another parable,” Christ said: “There was a certain householder, which planted a vineyard, and hedged it round about, and digged a wine press in it, and built a tower, and let it out to husbandmen, and went into a far country: and when the time of the fruit drew near, he sent his servants to the husbandmen, that they might receive the fruits of it. And the husbandmen took his servants, and beat one, and killed another, and stoned another. Again, he sent other servants more than the first: and they did unto them likewise. But last of all he sent unto them his son, saying, They will reverence my son. But when the husbandmen saw the son, they said among themselves,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let us seize on his inheritance. And they caught him, and cast him out of the vineyard, and slew him. When the lord therefore of the vineyard cometh, what will he do unto those husbandmen?’ DA 596.2
“'다른 비유를 들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집주인이 포도원을 심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주 틀을 파고 망대를 세워서 포도나무꾼들에게 내어주고 먼 나라로 갔더니, 열매 맺을 때가 가까워지자 종들을 그 집주인에게 보내어 그 열매를 받게 하려 하였다. 남편들이 그의 종들을 데려다가 하나를 때리고 또 하나를 죽이고 또 하나를 돌로 치니라.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내니 그들도 그들에게 똑같이 행하니라.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을 공경하리라. 그러나 시종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이 상속자이다, 오라,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그들은 그를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주인이 오실 때에 그가 그 머슴들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DA 596.2
“Jesus addressed all the people present; but the priests and rulers answered. “He will miserably destroy those wicked men,” they said, “and will let out his vineyard unto other husbandmen, which shall render him the fruits in their seasons.” The speakers had not at first perceived the application of the parable, but they now saw that they had pronounced their own condemnation. In the parable the householder represented God, the vineyard the Jewish nation, and the hedge the divine law which was their protection. The tower was a symbol of the temple. The lord of the vineyard had done everything needful for its prosperity. “What could have been done more to my vineyard,” he says, “that I have not done in it?” Isaiah 5:4. Thus was represented God's unwearied care for Israel. And as the husbandmen were to return to the lord a due proportion of the fruits of the vineyard, so God's people were to honor Him by a life corresponding to their sacred privileges. But as the husbandmen had killed the servants whom the master sent to them for fruit, so the Jews had put to death the prophets whom God sent to call them to repentance. Messenger after messenger had been slain. Thus far the application of the parable could not be questioned, and in what followed it was not less evident. In the beloved son whom the lord of the vineyard finally sent to his disobedient servants, and whom they seized and slew, the priests and rulers saw a distinct picture of Jesus and His impending fate. Already they were planning to slay Him whom the Father had sent to them as a last appeal. In the retribution inflicted upon the ungrateful husbandmen was portrayed the doom of those who should put Christ to death.” DA 596.3
“예수께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니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대답했습니다. “그 악한 자들을 비참하게 멸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내어주어 제철에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설자들은 처음에는 이 비유가 적용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제 자신들이 정죄를 선포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비유에서 집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유대 민족을, 울타리는 그들을 보호하는 신성한 율법을 상징했습니다. 탑은 성전의 상징이었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포도원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내가 내 포도원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느냐?” ‘내가 그 안에서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사야 5:4.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치지 않는 돌보심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머슴들이 포도원 열매의 정당한 비율을 주님께 돌려 드렸듯이 하나님의 백성도 그들의 신성한 특권에 상응하는 삶으로 그분을 공경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열매를 달라고 보낸 하인을 주인이 죽였듯이, 유대인들은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메신저들이 줄줄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비유의 적용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고,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마침내 불순종하는 종들에게 보내서 그들이 붙잡아 죽인 사랑하는 아들에게서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임박한 운명에 대한 뚜렷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이미 그들은 아버지께서 마지막 호소로 보내신 그분을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배은망덕한 남편들에게 가해진 보복에는 그리스도를 죽여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DA 596.3
Read Mark 12:13-27. What is going on here, and what truths does Jesus teach?
마가복음 12:13-27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예수님은 어떤 진리 를 가르치시는가?
“The Pharisees had ever chafed under the exaction of tribute by the Romans. The payment of tribute they held to be contrary to the law of God. Now they saw opportunity to lay a snare for Jesus. The spies came to Him, and with apparent sincerity, as though desiring to know their duty, said, ‘Master, we know that Thou sayest and teachest rightly, neither acceptest Thou the person of any, but teachest the way of God truly: is it lawful for us to give tribute unto Caesar, or no?’ DA 601.2
“바리새인들은 로마인들의 공물 강요에 불만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물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 올무를 놓을 기회를 보았습니다. 정탐꾼들은 그분께 나아가 자신들의 의무를 알고 싶어 하는 듯 진실한 마음으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께서 옳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아무 사람의 사람도 받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도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 압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이 합당한지요, 아니오? DA 601.2
“The words, ‘We know that Thou sayest and teachest rightly,’ had they been sincere, would have been a wonderful admission. But they were spoken to deceive; nevertheless their testimony was true. The Pharisees did know that Christ said and taught rightly, and by their own testimony will they be judged. DA 602.1
“'주께서 옳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라는 말은 그들이 진심이었다면 훌륭한 고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속이기 위해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증언은 진실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증언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DA 602.1
“Those who put the question to Jesus thought that they had sufficiently disguised their purpose; but Jesus read their hearts as an open book, and sounded their hypocrisy. “Why tempt ye Me?” He said; thus giving them a sign they had not asked, by showing that He read their hidden purpose. They were still more confused when He added, “Show Me a penny.” They brought it, and He asked them, “Whose image and superscription hath it? They answered and said, Caesar's.” Pointing to the inscription on the coin, Jesus said, “Render therefore un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and un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DA 602.2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충분히 위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열린 책처럼 읽으시고 그들의 위선을 들으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숨겨진 목적을 읽으셨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묻지 않은 표적을 주셨습니다. “동전 한 닢을 보여 주시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여전히 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이 동전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누구의 형상과 상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시저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전에 새겨진 글귀를 가리키시며 “그러므로 가이사에게 속한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602.2
“The spies had expected Jesus to answer their question directly, in one way or the other. If He should say, It is unlawful to give tribute to Caesar, He would be reported to the Roman authorities and arrested for inciting rebellion. But in case He should pronounce it lawful to pay the tribute, they designed to accuse Him to the people as opposing the law of God. Now they felt themselves baffled and defeated. Their plans were disarranged. The summary manner in which their question had been settled left them nothing further to say.” DA 602.3
“정탐꾼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해 주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카이사르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로마 당국에 신고되어 반란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공물을 바치는 것이 합법이라고 말씀하실 경우,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다고 백성들에게 고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당황하고 패배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지 않았습니다.” DA 602.3
“The resurrection was the subject on which they chose to question Him. Should He agree with them, He would give still further offense to the Pharisees. Should He differ with them, they designed to hold His teaching up to ridicule.” DA 605.2
“부활은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로 선택한 주제였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의하신다면 바리새인들을 더욱 화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과 의견이 다르면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조롱거리로 삼으려 했습니다.” DA 605.2
“The Sadducees reasoned that if the body is to be composed of the same particles of matter in its immortal as in its mortal state, then when raised from the dead it must have flesh and blood, and must resume in the eternal world the life interrupted on earth. In that case they concluded that earthly relationships would be resumed, husband and wife would be reunited, marriages consummated, and all things go on the same as before death, the frailties and passions of this life being perpetuated in the life beyond. DA 605.3
“사두개인들은 몸이 필멸의 상태와 동일한 불멸의 물질 입자로 구성되려면 죽음에서 부활할 때 살과 피가 있어야 하고, 지상에서 중단된 삶이 영원한 세계에서 재개되어야 한다고 추론했습니다. 이 경우 지상의 관계가 재개되고 남편과 아내가 재결합하며 결혼이 완성되고 모든 것이 죽음 이전과 동일하게 진행되며 이생의 연약함과 정열이 저승에서도 지속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DA 605.3
“In answer to their questions, Jesus lifted the veil from the future life. “In the resurrection,” He said, “they neither marry, nor are given in marriage, but are as the angels of God in heaven.” He showed that the Sadducees were wrong in their belief. Their premises were false. “Ye do err,” He added, “not knowing the Scriptures, nor the power of God.” He did not charge them, as He had charged the Pharisees, with hypocrisy, but with error of belief.” DA 605.4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미래의 삶에서 휘장을 걷어내셨습니다. “부활할 때 그들은 결혼하지도 않고 장가도 가지지 않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의 전제는 거짓이었습니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여 잘못하고 있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기소하셨던 것처럼 위선이 아니라 믿음의 오류로 그들을 기소하셨습니다.” DA 605.4
“Christ declared to His hearers that if there were no resurrection of the dead, the Scriptures which they professed to believe would be of no avail. He said, “But as touching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have ye not read that which was spoken unto you by God, saying, I am the God of Abraham, and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God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God counts the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He sees the end from the beginning, and beholds the result of His work as though it were now accomplished. The precious dead, from Adam down to the last saint who dies,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will come forth from the grave to immortal life. God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His people. There will be a close and tender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the risen saints. This condition, which is anticipated in His purpose, He beholds as if it were already existing. The dead live unto Him.” DA 606.1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들이 믿는다고 공언한 성경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청중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하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여기십니다. 그분은 시작부터 끝을 보시고, 그분의 일의 결과를 마치 지금 성취된 것처럼 보십니다. 아담부터 마지막 성도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불멸의 생명으로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활한 성도들 사이에는 친밀하고 부드러운 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이 상태는 그분의 목적에 예상되는 것으로, 그분은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바라보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분께로 살아납니다.” DA 606.1
Read Mark 12:28-34. What deep question did the friendly scribe ask, and what double response did Jesus give?
마가복음 12:28-34을 읽어 보라. 우호적인 서기관은 어떤 심오한 질문을 했으며 예수님은 어떤 중의적인 대답을 하셨는가?
“The Pharisees had exalted the first four commandments, which point out the duty of man to his Maker, as of far greater consequence than the other six, which define man's duty to his fellow man. As the result, they greatly failed of practical godliness. Jesus had shown the people their great deficiency, and had taught the necessity of good works, declaring that the tree is known by its fruits. For this reason He had been charged with exalting the last six commandments above the first four." DA 606.4
“바리새인들은 창조주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지적하는 처음 네 계명을 동료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규정하는 나머지 여섯 계명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실천적인 경건에 크게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큰 결핍을 보여 주셨고,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선행의 필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은 마지막 여섯 계명을 처음 네 계명보다 더 높인 책임을 지셨습니다.” DA 606.4
“The lawyer approached Jesus with a direct question, “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of all?” The answer of Christ is direct and forcible: “The first of all the commandments 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and with all thy strength: this is the first commandment.” The second is like the first, said Christ; for it flows out of it,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There is none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DA 607.1
“율법사는 예수님께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라는 직접적인 질문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스도의 대답은 직접적이고 강제적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둘째이니라.” 둘째도 첫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 가운데서 흘러나온 것이니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두 계명 위에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있다.” DA 607.1
“The first four of the Ten Commandments are summed up in the one great precept,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The last six are included in the other,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Both these commandments are an expression of the principle of love. The first cannot be kept and the second broken, nor can the second be kept while the first is broken. When God has His rightful place on the throne of the heart, the right place will be given to our neighbor. We shall love him as ourselves. And only as we love God supremely is it possible to love our neighbor impartially." DA 607.2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의 큰 교훈으로 요약됩니다. 마지막 여섯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다른 계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계명 모두 사랑의 원칙을 표현한 것입니다. 첫 번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두 번째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첫 번째 계명이 깨진 상태에서 두 번째 계명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보좌에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때, 이웃에게도 정당한 자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만 이웃을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DA 607.2
“And since all the commandments are summed up in love to God and man, it follows that not one precept can be broken without violating this principle. Thus Christ taught His hearers that the law of God is not so many separate precepts, some of which are of great importance, while others are of small importance and may with impunity be ignored. Our Lord presents the first four and the last six commandments as a divine whole, and teaches that love to God will be shown by obedience to all His commandments." DA 607.3
“모든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되므로, 이 원칙을 어기지 않고는 어떤 계율도 어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그렇게 많은 개별 계율이 아니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중요하고 다른 일부는 중요하지 않아서 무시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처음 네 계명과 마지막 여섯 계명을 하나의 신성한 전체로 제시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의 모든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드러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DA 607.3
“The scribe who had questioned Jesus was well read in the law, and he was astonished at His words. He did not expect Him to manifest so deep and thorough a knowledge of the Scriptures. He had gained a broader view of the principles underlying the sacred precepts. Before the assembled priests and rulers he honestly acknowledged that Christ had given the right interpretation to the law, saying: DA 607.4
“예수님께 질문한 서기관은 율법을 잘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성경에 대해 그렇게 깊고 철저한 지식을 나타내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스러운 계율의 근간이 되는 원리에 대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인 제사장들과 통치자들 앞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주셨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DA 607.4
“‘Well, Master, Thou hast said the truth: for there is one God; and there is none other but He: and to love Him with all the heart, and with all the understanding, and with all the soul, and with all the strength, and to love his neighbor as himself, is more than all whole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DA 607.5
“'선생님, 선생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나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그분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전한 번제물과 희생물보다 더 크니라.' DA 607.5
“The wisdom of Christ's answer had convicted the scribe. He knew that the Jewish religion consisted in outward ceremonies rather than inward piety. He had some sense of the worthlessness of mere ceremonial offerings, and the faithless shedding of blood for expiation of sin. Love and obedience to God, and unselfish regard for man, appeared to him of more value than all these rites. The readiness of this man to acknowledge the correctness of Christ's reasoning, and his decided and prompt response before the people, manifested a spirit entirely different from that of the priests and rulers. The heart of Jesus went out in pity to the honest scribe who had dared to face the frowns of the priests and the threats of the rulers to speak the convictions of his heart. ‘And when Jesus saw that he answered discreetly, He said unto him, Thou art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DA 608.1
“그리스도의 대답의 지혜가 서기관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는 유대 종교가 내적인 경건보다는 외적인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의식적 제물의 무가치함과 죄의 속죄를 위한 믿음 없는 피 흘림에 대해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 인간에 대한 이타적인 배려가 이 모든 의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추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백성 앞에서 단호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제사장이나 통치자들과는 전혀 다른 정신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제사장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통치자들의 위협에 맞서 감히 자신의 마음의 신념을 말했던 정직한 서기관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아니하니라'. DA 608.1
“The scribe was near to the kingdom of God, in that he recognized deeds of righteousness as more acceptable to God than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But he needed to recognize the divine character of Christ, and through faith in Him receive power to do the works of righteousness. The ritual service was of no value, unless connected with Christ by living faith. Even the moral law fails of its purpose, unless it is understood in its relation to the Saviour. Christ had repeatedly shown that His Father's law contained something deeper than mere authoritative commands. In the law is embodied the same principle that is revealed in the gospel. The law points out man's duty and shows him his guilt. To Christ he must look for pardon and for power to do what the law enjoins.” DA 608.2
“서기관은 번제나 희생보다 의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더 받으실 만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성품을 인식하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했습니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으면 제의적 예배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도덕법조차도 구주와의 관계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율법에는 단순한 권위적인 명령보다 더 깊은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율법에는 복음에 계시된 것과 동일한 원리가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의 의무를 지적하고 그의 죄책감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용서를 구하고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DA 608.2
“The Pharisees had gathered close about Jesus as He answered the question of the scribe. Now turning He put a question to them: “What think ye of Christ? whose son is He?” This question was designed to test their belief concerning the Messiah,—to show whether they regarded Him simply as a man or as the Son of God. A chorus of voices answered, “The Son of David.” This was the title which prophecy had given to the Messiah. When Jesus revealed His divinity by His mighty miracles, when He healed the sick and raised the dead, the people had inquired among themselves, “Is not this the Son of David?” The Syrophoenician woman, blind Bartimaeus, and many others had cried to Him for help, “Have mercy on me, O Lord, Thou Son of David.” Matthew 15:22. While riding into Jerusalem He had been hailed with the joyful shout, “Hosanna to the Son of David: Blessed is He that cometh in the name of the Lord.” Matthew 21:9. And the little children in the temple had that day echoed the glad ascription. But many who called Jesus the Son of David did not recognize His divinity. They did not understand that the Son of David was also the Son of God." DA 608.3
“예수님께서 서기관의 질문에 대답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주변에 가까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아들이냐?” 이 질문은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사람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한 목소리로 “다윗의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이 메시아에게 부여한 칭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력한 기적을 통해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셨을 때,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을 때, 사람들은 서로 “이 사람이 다윗의 아들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맹인 바디매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마태복음 15:22.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다윗의 자손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도다”라는 기쁨의 외침으로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1:9. 그날 성전에 있던 어린 아이들도 그 기쁨의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DA 608.3
“In reply to the statement that Christ was the Son of David, Jesus said, ‘How then doth David in Spirit [the Spirit of Inspiration from God] call Him Lord, saying,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on My right hand, til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If David then call Him Lord, how is He his son? And no man was able to answer Him a word, neither durst any man from that day forth ask Him any more questions.’” DA 609.1
“예수께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말씀에 대한 대답으로 '그러면 영[하나님의 영감의 영]으로 다윗이 어찌하여 그를 주님이라 부르며 이르기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느냐'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르면 어떻게 그의 아들입니까? 아무도 그분께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고, 그 날 이후로는 아무도 그분께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였느니라.” DA 6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