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reaching the doctrine of the second advent, William Miller and his associates had labored with the sole purpose of arousing men to a preparation for the judgment. They had sought to awaken professors of religion to the true hope of the church and to their need of a deeper Christian experience, and they labored also to awaken the unconverted to the duty of immediate repentance and conversion to God. “They made no attempt to convert men to a sect or party in religion. Hence they labored among all parties and sects, without interfering with their organization or discipline.” GC 375.1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료들은 재림의 교리를 전파하면서 사람들을 깨워 심판을 준비하게 하려는 유일한 목적을 가지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종교 교수들에게 교회의 참된 희망과 더 깊은 기독교적 경험의 필요성을 일깨우고자 노력했으며,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회개와 하나님께로의 회심의 의무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종교의 종파나 정당으로 개종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조직이나 규율을 방해하지 않고 모든 정당과 종파 사이에서 노력했습니다." GC 375.1
“‘In all my labors,’ said Miller, ‘I never had the desire or thought to establish any separate interest from that of existing denominations, or to benefit one at the expense of another. I thought to benefit all. Supposing that all Christians would rejoice in the prospect of Christ's coming, and that those who could not see as I did would not love any the less those who should embrace this doctrine, I did not conceive there would ever be any necessity for separate meetings. My whole object was a desire to convert souls to God, to notify the world of a coming judgment, and to induce my fellow men to make that preparation of heart which will enable them to meet their God in peace. The great majority of those who were converted under my labors united with the various existing churches.’”—Bliss, page 328. GC 375.2
밀러는 "저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 기존 교단의 이익과 별개의 이해관계를 설정하거나 다른 교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어느 한 쪽에 이익을 주겠다는 생각이나 욕망은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모두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전망에 기뻐할 것이고, 나처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교리를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을 덜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때, 나는 별도의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모든 목적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다가오는 심판을 세상에 알리고, 동료들이 평화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수고로 개종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존의 여러 교회와 연합했습니다."-행복, 328쪽. GC 375.2
Read John 14:1-3, 1 Thessalonians 4:13-18, and Titus 2:11-14. Why did these Bible passages give such hope to Christians through the centuries?
요한복음 14:1-3, 데살로니가전서 4:13- 18, 디도서 2:11-14을 읽어 보라. 이 구 절이 여러 세기에 걸쳐 기독교인들에게 재림의 소망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As Paul's epistle was opened and read, great joy and consolation was brought to the church by the words revealing the true state of the dead. Paul showed that those living when Christ should come would not go to meet their Lord in advance of those who had fallen asleep in Jesus.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the trump of God would reach the sleeping ones, and the dead in Christ should rise first, before the touch of immortality should be given to the living. ‘Then we which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shall we ever be with the Lord. Wherefore comfort one another with these words.’ AA 258.2
"바울의 서신이 열리고 읽히자 죽은 자의 참된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이 교회에 큰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할 때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람들보다 먼저 주님을 만나러 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천사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잠자는 자들에게 도달할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야 산 자들에게 불멸의 손길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도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AA 258.2
“The hope and joy that this assurance brought to the young church at Thessalonica can scarcely be appreciated by us. They believed and cherished the letter sent to them by their father in the gospel, and their hearts went out in love to him. He had told them these things before; but at that time their minds were striving to grasp doctrines that seemed new and strange, and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 force of some points had not been vividly impressed on their minds. But they were hungering for truth, and Paul's epistle gave them new hope and strength, and a firmer faith in, and a deeper affection for, the One who through His death had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AA 259.1
"이 확신이 데살로니카의 젊은 교회에 가져다준 희망과 기쁨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들은 복음 안에서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믿고 소중히 여겼으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분은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 그 당시 그들의 마음은 새롭고 이상하게 보이는 교리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요점의 힘이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각인되지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갈망하고 있었고, 바울의 서신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힘을 주었고, 그분의 죽음을 통해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신 분에 대한 더 확고한 믿음과 더 깊은 애정을 심어 주었습니다. AA 259.1
“Now they rejoiced in the knowledge that their believing friends would be raised from the grave to live forever in the kingdom of God. The darkness that had enshrouded the resting place of the dead was dispelled. A new splendor crowned the Christian faith, and they saw a new glory in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AA 259.2
"이제 그들은 믿는 친구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혔습니다. 새로운 광채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덮었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에서 새로운 영광을 보았습니다." AA 259.2
Read John 14:1-3, 1 Thessalonians 4:13-18, and Titus 2:11-14. Why did these Bible passages give such hope to Christians through the centuries?
요한복음 14:1-3, 데살로니가전서 4:13- 18, 디도서 2:11-14을 읽어 보라. 이 구 절이 여러 세기에 걸쳐 기독교인들에게 재림의 소망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As Paul's epistle was opened and read, great joy and consolation was brought to the church by the words revealing the true state of the dead. Paul showed that those living when Christ should come would not go to meet their Lord in advance of those who had fallen asleep in Jesus.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the trump of God would reach the sleeping ones, and the dead in Christ should rise first, before the touch of immortality should be given to the living. ‘Then we which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shall we ever be with the Lord. Wherefore comfort one another with these words.’ AA 258.2
"바울의 서신이 열리고 읽히자 죽은 자의 참된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이 교회에 큰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할 때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람들보다 먼저 주님을 만나러 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천사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잠자는 자들에게 도달할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야 산 자들에게 불멸의 손길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도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AA 258.2
“The hope and joy that this assurance brought to the young church at Thessalonica can scarcely be appreciated by us. They believed and cherished the letter sent to them by their father in the gospel, and their hearts went out in love to him. He had told them these things before; but at that time their minds were striving to grasp doctrines that seemed new and strange, and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 force of some points had not been vividly impressed on their minds. But they were hungering for truth, and Paul's epistle gave them new hope and strength, and a firmer faith in, and a deeper affection for, the One who through His death had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AA 259.1
"이 확신이 데살로니카의 젊은 교회에 가져다준 희망과 기쁨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들은 복음 안에서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믿고 소중히 여겼으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분은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 그 당시 그들의 마음은 새롭고 이상하게 보이는 교리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요점의 힘이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각인되지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갈망하고 있었고, 바울의 서신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힘을 주었고, 그분의 죽음을 통해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신 분에 대한 더 확고한 믿음과 더 깊은 애정을 심어 주었습니다. AA 259.1
“Now they rejoiced in the knowledge that their believing friends would be raised from the grave to live forever in the kingdom of God. The darkness that had enshrouded the resting place of the dead was dispelled. A new splendor crowned the Christian faith, and they saw a new glory in th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of Christ.” AA 259.2
"이제 그들은 믿는 친구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혔습니다. 새로운 광채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덮었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에서 새로운 영광을 보았습니다." AA 259.2
Read Isaiah 28:9, 10; Proverbs 8:8, 9; John 16:13; and 2 Peter 1:19-21. What principles of Bible interpretation do you discover in these passages?
이사야 28:9, 10, 잠언 8:8, 9, 요한복음 16:13, 베드로후서 1:19-21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당신은 성경 해석의 어떤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that the man of God may be perfect, thoroughly furnished unto all good works.” 2 Tim. 3:16, 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히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 딤후 2장 3:16, 17.
“Knowing this first, that no prophecy of the scripture is of any private interpretation. For the prophecy came not in old time by the will of man: but holy men of God spake as they were moved by the Holy Ghost.” 2 Pet. 1:20, 21.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적인 해석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라. 예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2:20, 21.
Affirmatively stated, all Scripture (not merely a part of It) is inspired. Negatively stated, none of It is privately interpreted, for the reason that It did not come of men but of God. And It can be interpreted by men only as and when God's Spirit decrees. Accordingly, every jot and title of Scripture and Its interpretation is of Inspiration, and thus wholly profitable to guide the man of God doctrinally, to reprove and to correct him, and righteously to instruct him, unto perfection of faith and works.
긍정적으로 말하면, 모든 성경(단지 일부가 아니라)은 영감된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성경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사적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정하신 대로만 사람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구절과 제목과 그 해석은 영감으로 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교리적으로 인도하고,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믿음과 행실의 완전에 이르게 하는 데 전적으로 유익합니다.
Let us therefore covenant with the Lord that henceforth we shall neither accept nor advance as revealed truth any private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성경에 대한 어떠한 사적인 해석도 계시된 진리로 받아들이거나 발전시키지 않을 것을 주님과 언약합시다.
Daniel 1:17; Daniel 2:45; I Peter 1:10, 11; and Revelation 1:1-3. What do these passages teach us about understanding the prophecies of the Bible?
다니엘서 1:17, 2:45, 베드로전서 1:10, 11, 요한계시록 1:1-3을 읽어 보라. 이 구 절은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는 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Dan. 2:44, 45—“And in the days of these kings shall the God of heaven set up a kingdom, which shall never be destroyed: and the kingdom shall not be left to other people, but it shall break in pieces and consume all these kingdoms, and it shall stand forever. For as much as thou sawest that the stone was cut out of the mountain without hands, and that it brake in pieces the iron, the brass, the clay, the silver, and the gold; the great God bath made known to the king what shall come to pass hereafter: and the dream is certain, and the interpretation thereof sure.”
Dan. 2:44, 45-"이 왕들의 날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왕국을 세우시리니 그 나라는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 나라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산산이 부서져서 이 모든 나라를 삼키고 영원히 서리라. 네가 산에서 돌이 손대지 아니하고 쪼개어지고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깨뜨리는 것을 본 것 같이 큰 하나님이 장차 이루어질 일을 왕에게 알리셨으니 그 꿈이 확실하고 그 해석이 확실하니라."
On Daniel's own word, the stone is symbolical, not of something else, but of the Kingdom, the which in the parable of the wheat and tares Jesus calls "barn," the place into which He is to put the wheat (saints) after it is separated from the tares (Matt. 13:30). Now mark carefully that according to Daniel's interpretation the stone depicts the Kingdom, the which God shall set up not after the days of these kings, but in their days, and that the stone Kingdom Itself, not something else, shall break the great image. If our interpretation of the stone contradicts Daniel's interpretation of it, then we do not only reject Daniel's inspiration, but even misconstrue the Word of God! We better not.
다니엘 자신의 말에 따르면, 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가라지와 분리된 후 밀(성도)을 넣을 장소인 "헛간"이라고 부르시는 왕국을 상징합니다(마 13:30). 이제 다니엘의 해석에 따르면 이 돌은 하나님께서 이 왕들의 시대 이후에 세우실 왕국을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것이 아니라 돌 왕국 그 자체가 큰 형상을 깨뜨릴 것이라는 점을 주의 깊게 주목하십시오. 돌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다니엘의 해석과 모순된다면, 우리는 다니엘의 영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If the Kingdom is to destroy all these kingdoms, then It must be set up before these kingdoms are destroyed. The stone that is cut out of the “mountain” in the days of these kings, is itself to become a great mountain, and It, the Kingdom, is to fill the whole earth (Dan. 2:35, 45).
왕국이 이 모든 왕국을 멸망시키려면 이 왕국들이 멸망되기 전에 왕국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 왕들의 시대에 '산'에서 잘라낸 돌은 그 자체로 큰 산이 될 것이며, 왕국은 온 땅을 채울 것입니다(단 2:35, 45)
Read Mark 1:15, Galatians 4:4, and Romans 5:6. What do these verses tell us about God’s timetable for the First Advent?
마가복음 1:15, 갈라디아서 4:4, 로마서 5:6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초림에 대한 하 나님의 시간표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The deep necessity of man for a divine teacher was known in heaven. The pity and sympathy of God were exercised in behalf of man, fallen and bound to Satan's chariot car; and when the fulness of time was come, he sent forth his Son. The One appointed in the counsels of heaven came to the earth as an instructor. He was no less a being than the Creator of the world, the Son of the Infinite God. The rich benevolence of God gave him to our world; and to meet the necessities of humanity, he took on him human nature. To the astonishment of the heavenly host, he walked this earth as the Eternal Word. Fully prepared, he left the royal courts to come to a world marred and polluted with sin. Mysteriously he allied himself to human nature.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God's excess of goodness, benevolence, and love was a surprise to the world, of grace which could be realized, but not told.” SpTEd 173.3
"신성한 교사에 대한 인간의 깊은 필요성이 하늘에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연민과 동정심이 타락하여 사탄의 수레에 묶인 인간을 대신하여 행사되었고, 때가 차자 그분은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늘의 권면으로 임명된 그분은 강사로 지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창조주이자 무한하신 하느님의 아들인 그분보다 더한 존재였습니다.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하심이 그를 세상에 보내셨고,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늘의 무리들이 놀랄 정도로 그분은 영원한 말씀으로 이 땅을 걸으셨습니다. 완전히 준비된 그는 왕궁을 떠나 죄로 더럽혀지고 오염된 세상에 오셨습니다. 신비롭게도 그분은 인간 본성과 연합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나님의 넘치는 선과 자비, 사랑은 세상에 놀라움을 주었고, 깨달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SpTEd 173.3
Read Daniel 8:14. What event was to occur at the end of the 2,300?
다니엘서 8장 14절을 읽어 보라. 2,300일이 끝나면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고 말하는가?
Dan. 8:13, 14 – “Then I heard one saint speaking, and another saint said unto that certain saint which spake, How long shall be the vision concerning the daily sacrifice, and the transgression of desolation, to give both the sanctuary and the host to be trodden under foot? And he said unto me, Unto two thousand and three hundred days; then shall the sanctuary be cleansed.”
Dan. 8:13, 14 - "내가 한 성도의 말을 들으니 다른 성도가 그 말하는 어떤 성도에게 이르되 매일 제사를 드리는 것과 성소와 무리가 발에 밟히게 하는 폐허에 관한 환상이 언제까지 이르리이까?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일까지이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리라 하더라."
To this question, “How long shall be the vision concerning the daily, and the transgression of desolation, to give both the sanctuary and the host to be trodden under foot?” came the answer, “Unto two thousand and three hundred days; then shall the sanctuary be cleansed.” That is, within the 2300 days the daily shall be taken away, the transgression of desolation set up, the sanctuary and the host shall be trodden underfoot. After this the sanctuary is to be cleansed. “Every morning” (margin), denotes 24 hour days – full measure of time. The word “sacrifice” does not belong in the text.
"성소와 무리가 발에 밟히게 될 날과 황폐한 죄에 관한 환상이 언제까지 이르리이까?"라는 질문에 "이천 삼백 일까지이니 그 때에 성소가 깨끗하게 되리라"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즉, 2300일 안에 매일이 제거되고 황폐의 죄가 세워지며 성소와 군대가 발에 밟힐 것입니다. 그 후에 성소는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여백)은 하루 24시간, 즉 완전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는 본문에 없습니다.
The daily, the desolation, also the Sanctuary and the host pertain both to the doctrines and the people. Both are to be cleansed. And the angel explained that the cleansing of the Sanctuary (cleansing it from both error and hypocrisy) takes place after the 2300 days, during the time of the end.
매일, 황폐함, 성역과 호스트는 교리와 사람들 모두와 관련이 있습니다. 둘 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는 성소의 정화(오류와 위선으로부터 성소를 정화하는 것)가 2300일 후, 종말의 때에 이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The cleansing must thence have commenced in 1844, the very year in which,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the first angel’s message rang forth the proclamation: “Fear God, and give glory to Him; for the hour of His judgment is come” (Rev. 14:7; Dan. 7:9, 10) – the time that the Great Judge and the heavenly tribunal sit in judgment to separate the bad from the good; that is, to blot from the Book of Life the names of those who have entered the service of Christ but have not endured to the end.
역사상 처음으로 천사의 메시지가 선포된 바로 그 해인 1844년에 정화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느니라"(계 14:7, 단 7:9, 10) - 대심판관과 하늘 재판소가 심판대에 앉아 악인과 선인을 분리하는 시간, 즉 그리스도의 봉사에 들어갔지만 끝까지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는 시간입니다.
Read Ezra 7:7-13. When was the decree issued to allow Israel’s captives in Persia to go free to rebuild their temple?
에스라 7:7-13을 읽어 보라.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 방되어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는 칙령은 언제 내려졌는가?
“That which led to this movement was the discovery that the decree of Artaxerxes for the restoration of Jerusalem, which formed the starting point for the period of the 2300 days, went into effect in the autumn of the year 457 B.C., and not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as had been formerly believed. Reckoning from the autumn of 457, the 2300 years terminate in the autumn of 1844. (See Appendix note for page 329.)” GC 398.4
"2300일의 시작점이 된 예루살렘 재건을 위한 아닥사스다의 칙령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연초가 아니라 기원전 457년 가을에 발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457년 가을부터 계산하면 2300년은 1844년 가을에 종료됩니다. (329페이지 부록 주 참조)." GC 398.4
As they failed to turn from their evil course, the voice of prophecy declared that they were to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the Chaldeans and there to remain captive seventy years. At the close of that span of time, God, by the hand of Cyrus and Darius, the kings of Medo-Persia, again set His people free, and the kings commanded them to rebuild the temple and the holy city. (Ezra 1:1, 2). As the prophecies concerning the church were then fulfilled, God in His faithfulness, made known to His people that which was to take place within a period of "two thousand three hundred days" or years (Dan. 8:14), beginning at the time when the commandment was made to rebuild the city, and ending in 1844. Among the events that took place during that length of time were Christ's first coming and His crucifixion. (Dan. 9:26.)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을 때, 예언의 목소리는 그들이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져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는 메도-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와 다리우스의 손을 통해 그의 백성을 다시 자유롭게 하셨고, 왕들은 그들에게 성전과 거룩한 성읍을 재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에스라 1:1, 2). 그 후 교회에 관한 예언이 성취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으로서 성을 재건하라는 계명이 내려진 시점부터 1844년까지 "이천 삼백 일" 또는 수년(단 8:14) 동안 일어날 일을 백성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일어난 사건 중에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도 있습니다. (단 9:26)
Read Daniel 9:25-27. When would this entire prophetic period begin? What major events do these verses predict? How would the 70-week prophecy end?
다니엘 9장 25~27절을 읽어보세요. 이 전체 예언의 시기는 언제 시작될까요? 이 구절은 어떤 주요 사건을 예언하고 있나요? 70주 예언은 어떻게 끝날까요?
“The 2300 days had been found to begin when the commandment of Artaxerxes for the restoration and building of Jerusalem went into effect, in the autumn of 457 B.C. Taking this as the starting point, there was perfect harmony in the application of all the events foretold in the explanation of that period in Daniel 9:25-27. Sixty-nine weeks, the first 483 of the 2300 years, were to reach to the Messiah, the Anointed One; and Christ's baptism and anointing by the Holy Spirit, A.D. 27, exactly fulfilled the specification. In the midst of the seventieth week, Messiah was to be cut off. Three and a half years after His baptism, Christ was crucified, in the spring of A.D. 31. The seventy weeks, or 490 years, were to pertain especially to the Jews. At the expiration of this period the nation sealed its rejection of Christ by the persecution of His disciples, and the apostles turned to the Gentiles, A.D. 34. The first 490 years of the 2300 having then ended, 1810 years would remain. From A.D. 34, 1810 years extend to 1844. “Then,” said the angel, “shall the sanctuary be cleansed.” All the preceding specifications of the prophecy had been unquestionably fulfilled at the time appointed.” GC 410.1
"2300일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건축을 위한 아닥사스다의 계명이 발효된 기원전 457년 가을에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다니엘 9:25-27에서 그 시기에 대한 설명에서 예언된 모든 사건의 적용에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졌습니다. 2300년 중 첫 483주인 69주는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야에게 도달해야 하는 기간이었으며, 서기 27년 그리스도의 세례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정확히 그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습니다. 일곱째 주 중반에 메시아는 끊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세례 받으신 지 3년 반 후인 서기 31년 봄에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70주야, 즉 490년은 특히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이 만료될 무렵, 유대 민족은 제자들의 박해로 그리스도에 대한 거부를 봉인했고 사도들은 서기 34년에 이방인들에게로 눈을 돌렸습니다. 2300년 중 처음 490년이 끝나면 1810년이 남게 됩니다. 서기 34년부터 1810년은 1844년까지 연장됩니다. "천사는 "그 때에 성소가 깨끗해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언의 모든 앞부분은 약속된 시점에 의심할 여지없이 성취되었습니다." GC 410.1
“With this reckoning, all was clear and harmonious, except that it was not seen that any event answering to the cleansing of the sanctuary had taken place in 1844. To deny that the days ended at that time was to involve the whole question in confusion, and to renounce positions which had been established by unmistakable fulfillments of prophecy.” GC 410.2
"이 계산으로 1844년에 성소의 정화에 대한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명확하고 조화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그 시대가 끝났다고 부인하는 것은 모든 문제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며, 틀림없는 예언의 성취로 확립된 입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GC 410.2
“But God had led His people in the great advent movement; His power and glory had attended the work, and He would not permit it to end in darkness and disappointment, to be reproached as a false and fanatical excitement. He would not leave His word involved in doubt and uncertainty. Though many abandoned their former reckoning of the prophetic periods and denied the correctness of the movement based thereon, others were unwilling to renounce points of faith and experience that were sustained by the Scriptures and by the witness of the Spirit of God. They believed that they had adopted sound principles of interpretation in their study of the prophecies, and that it was their duty to hold fast the truths already gained, and to continue the same course of Biblical research. With earnest prayer they reviewed their position and studied the Scriptures to discover their mistake. As they could see no error in their reckoning of the prophetic periods, they were led to examine more closely the subject of the sanctuary.” GC 410.3
"그러나 하나님은 위대한 재림 운동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셨고, 그분의 능력과 영광이 그 일에 함께 하셨으며, 그분은 그 일이 어둠과 실망으로 끝나거나 거짓되고 광신적인 흥분으로 비난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의심과 불확실성 속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 시대에 대한 이전의 인식을 버리고 그에 근거한 운동의 정확성을 부인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성경과 하나님의 영의 증거에 의해 유지되는 신앙과 경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언서를 연구할 때 건전한 해석 원칙을 채택했으며, 이미 얻은 진리를 굳게 붙잡고 동일한 성경 연구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기도로 자신들의 입장을 검토하고 성경을 연구하여 자신들의 실수를 발견했습니다. 예언의 시대에 대한 그들의 계산에 오류가 없음을 알게 되자, 그들은 성소의 주제를 더 면밀히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GC 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