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을 향한 선교

제 7과, 4분기 11월 11~17일,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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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오후, 11월 11일

Memory Text 기억 본문:

“And he answering sai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strength, and with all thy mind; and thy neighbour as thyself.” KJV — Luke 10: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느니라." KJV - 누가복음 10:27


“In order to be candidates for heaven we must meet the requirement of the law: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strength, and with all thy mind; and thy neighbour as thyself’ (Luke 10:27). We can do this only as we grasp by faith the righteousness of Christ. By beholding Jesus we receive a living, expanding principle in the heart, and the Holy Spirit carries on the work, and the believer advances from grace to grace, from strength to strength, from character to character. He conforms to the image of Christ, until in spiritual growth he attains unto the measure of the full stature in Christ Jesus. Thus Christ makes an end of the curse of sin, and sets the believing soul free from its action and effect.” 1SM 395.1

"천국 후보자가 되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율법의 요구 사항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을 때만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살아서 확장하는 원리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성령께서 그 일을 수행하시며 신자는 은혜에서 은혜로, 힘에서 힘으로, 성품에서 성품으로 전진합니다. 그는 영적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저주를 끝내시고 믿는 영혼을 죄의 작용과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1SM 395.1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strength, and with all thy mind; and thy neighbour as thyself’ (Luke 10:27). These words sum up the whole duty of man. They mean the consecration of the whole being, body, soul, and spirit, to God's service. How can men obey these words, and at the same time pledge themselves to support that which deprives their neighbors of freedom of action? And how can men obey these words, and form combinations that rob the poorer classes of the advantages which justly belong to them, preventing them from buying or selling, except under certain conditions?’ Letter 26, 1903.” 2SM 143.4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의무를 요약합니다. 이 말씀은 몸과 마음과 영을 모두 하나님의 봉사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동시에 이웃의 행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지지하겠다고 서약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여 가난한 계급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이점을 빼앗는 조합을 결성하여 특정한 조건이 아니면 사고 팔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편지 26, 1903." 2SM 143.4

11월 12일 일요일

The Question of Questions
가장 중요한 질문


Read Luke 10:25. What did this lawyer ask and why did he ask it?

누가복음 10:25을 읽어 보라. 이 율법사는 무엇을, 왜 물었는가?

“When this young ruler came to Jesus, his sincerity and earnestness won the Saviour's heart. He “beholding him loved him.” In this young man He saw one who might do service as a preacher of righteousness. He would have received this talented and noble youth as readily as He received the poor fishermen who followed Him. Had the young man devoted his ability to the work of saving souls, he might have become a diligent and successful laborer for Christ. COL 392.2

"이 젊은 통치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그의 성실함과 간절함이 구세주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주님은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 주님은 이 젊은이에게서 의의 전파자로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을 따르는 가난한 어부들을 받아들이셨던 것처럼 이 재능 있고 고귀한 청년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그 청년이 자신의 능력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했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부지런하고 성공적인 일꾼이 되었을 것이다. COL 392.2

“But first he must accept the conditions of discipleship. He must give himself unreservedly to God. At the Saviour's call, John, Peter, Matthew, and their companions “left all, rose up, and followed Him.” Luke 5:28. The same consecration was required of the young ruler. And in this Christ did not ask a greater sacrifice than He Himself had made.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that ye through His poverty might be rich.” 2 Corinthians 8:9. The young man had only to follow where Christ led the way.” COL 393.1

"그러나 먼저 그는 제자도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아낌없이 하느님께 바쳐야 합니다. 구세주의 부르심에 요한, 베드로, 마태,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주님을 따랐습니다." 누가복음 5:28. 젊은 통치자에게도 동일한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이 하신 것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부요하신 분이시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으니 이는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9. 청년은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COL 393.1

“Zacchaeus had been overwhelmed, amazed, and silenced at the love and condescension of Christ in stooping to him, so unworthy. Now love and loyalty to his new-found Master unseal his lips. He will make public his confession and his repentance. DA 554.2

"삭개오는 너무나도 합당하지 않은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히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에 압도당하고 놀랐으며 침묵했습니다. 이제 새로 만난 스승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그의 입술을 봉인 해제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백과 회개를 공개할 것이다. DA 554.2

“In the presence of the multitude, “Zacchaeus stood, and said unto the Lord; Behold, Lord, the half of my goods I give to the poor; and if I have taken anything from any man by false accusation, I restore him fourfold. DA 555.1

"삭개오가 무리가 보는 앞에서 서서 주께 이르되 주여 보소서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내가 누구의 것을 거짓으로 고발하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나이다." DA 555.1

“‘Jesus said unto him, This day is salvation come to this house, forsomuch as he also is a son of Abraham.’ DA 555.2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으니 이는 그가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니라'. DA 555.2

“When the rich young ruler had turned away from Jesus, the disciples had marveled at their Master's saying, “How hard is it for them that trust in riches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They had exclaimed one to another, “Who then can be saved?” Now they had a demonstration of the truth of Christ's words, “The things which are impossible with men are possible with God.” Mark 10:24, 26; Luke 18:27. They saw how, through the grace of God, a man could enter into the kingdom.” DA 555.3

"부유한 젊은 통치자가 예수님을 외면했을 때, 제자들은 "재물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스승의 말씀에 놀라워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이제 그들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진리를 입증했습니다. 마가복음 10:24, 26; 누가복음 18:27.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이 어떻게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보았다." DA 555.3

11월 13일 월요일

Jesus’ Method and Response
예수님의 응답과 방법


Read Matthew 26:56, Acts 17:11, 1 Corinthians 15:3, and 2 Timothy 3:16. How do these verses help us understand Jesus’ response to the layer in Luke 10:26?

마태복음 26:56, 사도행전 17:11, 고린도전서 15:3, 디모데후서 3:16을 읽어 보라. 누가복음 10:26에 기록된 율법사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 이 되는가?

Remember, too, that when the rich young ruler asked what he must do to have eternal life, Jesus' answer was: "Keep the commandments." And His answer today is the same. (See Rev. 22:14) When the ruler inquired which commandments he should keep, the Lord plainly told him: "Thou shalt do no murder,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Thou shalt not steal, Thou shalt not bear false witness, Hon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and,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Matt. 19:18, 19.

부유한 젊은 통치자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는 사실도 기억하세요: "계명을 지키십시오." 오늘날에도 그분의 대답은 동일합니다. (계 22:14 참조) 그 통치자가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 물었을 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19:18, 19.

Here you see that the moral "law" and the "commandment" are synonymous. "Think not," He declared, "that I am come to destroy [or to put away] the law, or the prophets: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l [the prophecies concerning Me and My work]. For verily I say unto you, Till heaven and earth pass [and they still stand],one jot or one tittle shall in no wise pass from the law, till all be fulfilled. Whosoever therefore shall break one of these least commandments, and shall teach men so, he shall be called the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whosoever shall do and teach them, the same shall be called great in the Kingdom of Heaven....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by them of old time, Thou shalt not kill; and whosoever shall kill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but I say unto you,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thout a cause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hell fire." Matt. 5:17-19, 21, 22.

여기서 도덕적 "율법"과 "계명"은 동의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일에 관한 예언을] 이루려 함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기 전에는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지극히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어기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옛적부터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살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리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유 없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리라 누구든지 형제 라카에게 말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리라 누구든지 이 어리석은 자여 하는 자는 지옥 불에 처하리라." 마태복음 5:17-19, 21, 22.

Let us note carefully that the commandments were written by God Himself on two tables of stone. The first one contained the first four commandments -- those which demand love to God -- and the second table contained the last six commandments -- those which demand love to our fellow men. These two tables with their ten precepts -- four on the one and six on the other, the Lord summarizes them in two commandments and declares that they are the great commandments. All of the ten commandments, therefore, are great,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one and the other. So it is that on these commandments hang the law and the prophets -- the whole Bible -- that if these commandments fail then the whole Bible fails, that since the Bible cannot fail neither can the commandments fail, but he who does not repent for having broken them, and does not stop breaking them, will certainly fall to the bottom of the pit.

계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두 개의 돌판에 기록하셨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첫 번째 돌판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요구하는 첫 네 계명이, 두 번째 돌판에는 이웃을 향한 사랑을 요구하는 마지막 여섯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돌판에는 열 개의 계명, 즉 한 돌판에는 네 계명, 다른 돌판에는 여섯 계명이 있는데, 주님은 이 두 계명으로 요약하여 큰 계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열 계명은 모두 위대하며, 하나하나의 계명 사이에 구별이 없습니다. 이 계명 위에 율법과 선지자들, 즉 성경 전체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 계명이 실패하면 성경 전체가 실패하고, 성경이 실패할 수 없으므로 계명도 실패할 수 없지만, 계명을 어긴 것을 회개하지 않고 계속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구덩이 바닥에 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Let us hear the conclusion of the whole matter: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for this is the whole duty of man. For God shall bring every work into judgment, with every secret thing, whether it be good, or whether it be evil." Eccles. 12:13, 14.

"모든 문제의 결론을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하나님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모든 은밀한 일과 함께 모든 일을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 14.

11월 14일 화요일

To Inherit Eternal Life
영생을 얻으려면


Read Luke 10:27 28. What was the lawyer’s answer to his own question?

누가복음 10:27, 28을 읽어 보라. 이 질문에 대한 율법사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Millions of people in our world are making the choice made by the young ruler. They have intelligence, but they cannot decide to be honest stewards of their Lord's goods. Many say, “I will bless and glorify myself; I will be honored as a man above his fellows.” Jesus paid the price for their redemption; for their sake he became poor, that they might be rich; and yet, though wholly dependent on him for all their earthly possessions, they refuse to do his will by showing love to their fellow men. They are not willing to relieve the necessities of those around them with the means which the Lord has placed in their hands for this purpose. They refuse to appropriate the Lord's capital for the benefit of others, and hold fast to their possessions. Like the ruler, they refuse the heavenly treasure, and choose that which is agreeable to themselves. By such selfishness they prove themselves unworthy of the eternal riches. They show that they are unfit for a place in the kingdom of God; if they were allowed to enter there, they would, like the great apostate, claim everything as if they had created it, and would spoil heaven by their covetousness. RH December 14, 1897, par. 7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젊은 통치자의 선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총명하지만 주님의 재산을 정직하게 관리하는 청지기가 되기로 결심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스스로를 축복하고 영광을 돌리겠으며, 동료들보다 더 높은 사람으로 존귀하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구속을 위해 대가를 치르셨고, 그들을 위해 가난해지셔서 부자가 되셨지만, 그들은 지상의 모든 소유를 전적으로 주님께 의존하면서도 동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 그들의 손에 주신 수단으로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덜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주님의 재산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소유를 굳게 붙잡습니다. 그들은 통치자처럼 하늘의 보물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선택합니다. 그러한 이기심으로 그들은 영원한 부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들이 그곳에 들어가도록 허락된다면, 그들은 위대한 배교자처럼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이 창조한 것처럼 주장하고 탐욕으로 천국을 망칠 것입니다. RH 12월 14일, 1897, 파. 7

“Moses was called upon to choose between the world and God. Two conflicting objects were placed before him. The treasures of Egypt, the honor of a temporal crown, and all the worldly benefits involved in this choice, were presented by the prince of this world. The opposite side was presented by the Prince of Light, the world's Redeemer. He held out the recompense of reward,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and showed also the path of affliction, self-denial, and self-sacrifice, that must be traveled by all who gain this reward.” RH December 14, 1897, par. 8

"모세는 세상과 하나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모세 앞에 두 가지 상반된 대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애굽의 보물, 현세의 왕관의 명예, 그리고 이 선택과 관련된 모든 세상적인 혜택은 이 세상의 왕자가 제시했습니다. 반대편에는 세상의 구속자이신 빛의 왕자가 제시했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인 보상의 보상을 제시하셨고, 이 보상을 얻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가야 할 고난과 자기 부인, 자기 희생의 길도 보여 주셨습니다." RH 12월 14일, 1897, 파. 8

“The decision was left with Moses. As a free moral agent he was at liberty to choose. All heaven was interested in the matter. What would be his choice?—obedience to God, with the eternal recompense of reward, or obedience to that most agreeable to his own will? ‘By faith Moses, when he was come to years, refused to be called the son of Pharaoh's daughter; choosing rather to suffer affliction with the people of God,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eason; esteeming the reproach of Christ greater riches than the treasures in Egypt: for he had respect unto the recompense of the reward.’” RH December 14, 1897, par. 9

"결정은 모세에게 맡겨졌습니다.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로서 그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온 하늘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영원한 보상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에 가장 잘 맞는 것에 순종할 것인가?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많을 때에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한동안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 택하고 그리스도의 능욕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중히 여기니 이는 그가 상급의 보응을 존중하였음이라'" RH 12월 14일, 1897, 파. 9

11월 15일 수요일

Loving Others as we love Ourselves.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Read Matthew 22:37-40. How does what Jesus himself said here compare to His answer to the lawyer, in Luke 19: 27, 28?

마태복음 22:37-40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누가복 음 10:27, 28의 율법사에게 하신 대답과 어떻게 비교되는가?

“The lawyer sai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strength, and with all thy mind; and thy neighbour as thyself.” “Thou hast answered right,” Christ said; “this do, and thou shalt live.” COL 377.2

"율법사가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네가 옳게 대답하였느니라" "이같이 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COL 377.2

“The lawyer was not satisfied with the position and works of the Pharisees. He had been studying the scriptures with a desire to learn their real meaning. He had a vital interest in the matter, and he asked in sincerity, “What shall I do?” In his answer as to the requirements of the law, he passed by all the mass of ceremonial and ritualistic precepts. For these he claimed no value, but presented the two great principles on which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The Saviour's commendation of this answer placed Him on vantage ground with the rabbis. They could not condemn Him for sanctioning that which had been advanced by an expositor of the law. COL 377.3

"율법사는 바리새인들의 지위와 행위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경전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율법의 요구 사항에 대한 그의 대답에서 그는 의식적이고 의례적인 계율들을 모두 지나쳤습니다. 이것들에 대해 그는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매달려있는 두 가지 큰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이 대답에 대한 구세주의 칭찬은 그분을 랍비들과 유리한 위치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들은 율법 해설자에 의해 발전된 것을 승인하신 것에 대해 그분을 정죄할 수 없었다. COL 377.3

“‘This do, and thou shalt live,’ Christ said. In His teaching He ever presented the law as a divine unity, showing that it is impossible to keep one precept and break another; for the same principle runs through all. Man's destiny will be determined by his obedience to the whole law. COL 377.4

"'이렇게 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서 그분은 율법을 신성한 통일성으로 제시하면서 하나의 계율을 지키고 다른 계율을 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원리가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율법 전체에 대한 순종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COL 377.4

“Christ knew that no one could obey the law in his own strength. He desired to lead the lawyer to clearer and more critical research that he might find the truth. Only by accepting the virtue and grace of Christ can we keep the law. Belief in the propitiation for sin enables fallen man to love God with his whole heart and his neighbor as himself. COL 378.1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사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더 명확하고 비판적인 연구로 인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미덕과 은혜를 받아들여야만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한 속죄에 대한 믿음은 타락한 인간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COL 378.1

“The lawyer knew that he had kept neither the first four nor the last six commandments. He was convicted under Christ's searching words, but instead of confessing his sin he tried to excuse it. Rather than acknowledge the truth, he endeavored to show how difficult of fulfillment the commandment is. Thus he hoped both to parry conviction and to vindicate himself in the eyes of the people.

The Saviour's words had shown that his question was needless, since he was able to answer it himself. Yet he put another question, saying, “Who is my neighbour?” COL 378.2

"율법사는 자신이 처음 네 계명도 마지막 여섯 계명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엄중한 말씀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대신 변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진리를 인정하기보다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죄 판결을 피하고 사람들의 눈에 자신을 옹호하기를 바랐습니다.

구세주의 말씀은 그가 스스로 대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질문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말씀하시며 또 다른 질문을 던지셨다. COL 378.2

11월 16일 목요일

The Good Samaritan Story Today
오늘날의 선한 사마리아인


Read Luke 10:30-37. How would you summarize Jesus’ meaning in the story today?

누가복음 10:30-37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 담긴 예수님의 의도를 어떻게 요약 할 수 있겠는가?

 “In giving this lesson, Christ presented the principles of the law in a direct, forcible way, showing His hearers that they had neglected to carry out these principles. His words were so definite and pointed that the listeners could find no opportunity to cavil. The lawyer found in the lesson nothing that he could criticize. His prejudice in regard to Christ was removed. But he had not overcome his national dislike sufficiently to give credit to the Samaritan by name. When Christ asked, “Which now of these three, thinkest thou, was neighbour unto him that fell among the thieves?” he answered, “He that showed mercy on him.” COL 380.1

"이 교훈을 주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원리를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셨고, 청중들이 이 원리를 실천하는 데 소홀히 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하여 청중들이 반박할 기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는 그 교훈에서 비판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편견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마리아인의 이름을 인정할 만큼 민족적 혐오감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COL 380.1

“‘Then said Jesus unto him, Go, and do thou likewise.’ Show the same tender kindness to those in need. Thus you will give evidence that you keep the whole law.” COL 380.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부드러운 친절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온 율법을 지킨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COL 380.2

“Many today are making a similar mistake. They separate their duties into two distinct classes. The one class is made up of great things, to be regulated by the law of God; the other class is made up of so-called little things, in which the command,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is ignored. This sphere of work is left to caprice, subject to inclination or impulse. Thus the character is marred, and the religion of Christ misrepresented. COL 382.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두 가지 다른 부류로 구분합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규제되는 큰 일들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부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 무시되는 소위 작은 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일의 영역은 성향이나 충동에 따라 변덕에 맡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인격이 손상되고 그리스도의 종교가 잘못 표현된다. COL 382.2

“There are those who would think it lowering to their dignity to minister to suffering humanity. Many look with indifference and contempt upon those who have laid the temple of the soul in ruins. Others neglect the poor from a different motive. They are working, as they believe, in the cause of Christ, seeking to build up some worthy enterprise. They feel that they are doing a great work, and they cannot stop to notice the wants of the needy and distressed. In advancing their supposedly great work they may even oppress the poor. They may place them in hard and trying circumstances, deprive them of their rights, or neglect their needs. Yet they feel that all this is justifiable because they are, as they think, advancing the cause of Christ. COL 382.3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존엄성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성전을 폐허로 만든 사람들을 무관심과 경멸로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동기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믿는 대로 그리스도의 대의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치 있는 사업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궁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필요를 알아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하거나,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그들의 필요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느낀다. COL 382.3

“Many will allow a brother or a neighbor to struggle unaided under adverse circumstances. Because they profess to be Christians he may be led to think that in their cold selfishness they are representing Christ. Because the Lord's professed servants are not in co-operation with Him, the love of God, which should flow forth from them, is in great degree cut off from their fellow men. And a large revenue of praise and thanksgiving from human hearts and human lips is prevented from flowing back to God. He is robbed of the glory due to His holy name. He is robbed of the souls for whom Christ died, souls whom He longs to bring into His kingdom to dwell in His presence through endless ages.” COL 383.1

"많은 사람들이 형제나 이웃이 불리한 상황에서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는 것을 방관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기 때문에 차가운 이기심 속에서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주님과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흘러 나와야 할 하나님의 사랑은 동료 사람들과 크게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입술에서 나오는 찬양과 감사의 많은 수입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분은 그분의 거룩한 이름 때문에 영광을 빼앗겼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영혼들, 그분께서 끝없는 세월 동안 그분의 면전에서 거하기 위해 그분의 왕국으로 데려오기를 갈망하시는 영혼들을 빼앗기셨습니다." COL 383.1

11월 17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Both the rich young man and Nicodemus were rulers, and though Nicodemus might not have been as rich as was the young man, he nevertheless was not poor. But why was the one asked to distribute his riches to the poor, and the other told to be born again? Why should not both pay the same price for salvation? Here are the reasons:

부자 청년과 니고데모는 모두 율법학자였고, 니고데모는 청년만큼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한 사람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요청을 받고 다른 사람은 거듭나라는 말을 들었을까요? 왜 둘 다 구원을 위해 같은 대가를 지불해서는 안 될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To avoid being seen in the company of Jesus, Nicodemus came to Him, not by day, but secretly by night, whereas the young ruler came to Jesus not only openly by day, but also while a multitude were with Jesus. The rich young ruler’s basic hindrance, therefore, was his wealth, and Nicodemus’ basic hindrance was his pride. Plainly, then, the one’s ailment called for one kind of treatment, and the other’s ailment called for another kind of treatment.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낮이 아니라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반면, 젊은 관원은 낮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도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부유한 젊은 통치자의 근본적인 장애물은 그의 재산이었고 니고데모의 근본적인 장애물은 그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병에는 한 종류의 치료가 필요했고, 다른 사람의 병에는 다른 종류의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Jesus never asked anyone to take His religion, but He asked them to “follow” Him, to be one of His disciples. The rich young ruler could not follow the Lord because his heart was centered upon his own riches. And Nicodemus could not follow the Lord because he was too proud to be seen in the company of unpopular and hated Jesus followed by humble fishermen. To remove the hindrances, the one had to get rid of his riches, and the other had to get rid of his pride. To eradicate pride, one must be born again, must become a new man. But to eradicate the love of money one must give his money to those who really need it.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그분의 종교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그분은 그분을 "따르라", 즉 제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부유한 젊은 통치자는 자신의 재물에 마음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인기 없고 미움받는 예수님과 겸손한 어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교만해서 주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장애물을 제거하려면 한 사람은 재물을 없애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교만을 없애야 했습니다. 교만을 없애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사랑을 근절하려면 돈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야합니다.

The Scriptures bear record that Abraham was very rich. Yet he is called the “friend of God.” Riches in themselves, therefore, can be a blessing, although they more often become a curse. Pride, however, is never good.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매우 부자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부는 그 자체로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종종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