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e LORD God called unto Adam,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KJV — Genesis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KJV - 창세기 3:9
“To the dwellers in Eden was committed the care of the garden, “to dress it and to keep it.” Their occupation was not wearisome, but pleasant and invigorating. God appointed labor as a blessing to man, to occupy his mind, to strengthen his body, and to develop his faculties. In mental and physical activity Adam found one of the highest pleasures of his holy existence. And when, as a result of his disobedience, he was driven from his beautiful home, and forced to struggle with a stubborn soil to gain his daily bread, that very labor, although widely different from his pleasant occupation in the garden, was a safeguard against temptation and a source of happiness...” PP 50.1
"에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동산을 가꾸는 일, 즉 "동산을 입히고 지키는 일"이 맡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즐겁고 활력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노동을 축복으로 주셨고, 정신을 집중시키고, 신체를 강화하고, 능력을 개발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은 정신적, 육체적 활동에서 자신의 거룩한 존재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불순종의 결과로 아름다운 집에서 쫓겨나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완고한 토양과 싸워야 했을 때, 바로 그 노동은 동산에서의 즐거운 직업과는 크게 다르지만 유혹에 대한 안전장치이자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PP 50.1
“While they remained true to God, Adam and his companion were to bear rule over the earth. Unlimited control was given them over every living thing...” PP 50.2
"아담과 그의 동반자는 신에게 충실한 동안 땅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통제권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PP 50.2
“The holy pair were not only children under the fatherly care of God but students receiving instruction from the all-wise Creator. They were visited by angels, and were granted communion with their Maker, with no obscuring veil between. They were full of the vigor imparted by the tree of life, and their intellectual power was but little less than that of the angels...” PP 50.3
"거룩한 부부는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보살핌을 받는 자녀였을 뿐만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방문을 받았으며, 그 사이에 가려진 장막도 없이 창조주와 교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들은 생명 나무가주는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의 지적 능력은 천사들보다 조금 적었습니다..." PP 50.3
“After their sin Adam and Eve were no longer to dwell in Eden... PP 61.4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후 더 이상 에덴에 살지 못했고... PP 61.4
“In humility and unutterable sadness they bade farewell to their beautiful home and went forth to dwell upon the earth, where rested the curse of sin. The atmosphere, once so mild and uniform in temperature, was now subject to marked changes, and the Lord mercifully provided them with a garment of skins as a protection from the extremes of heat and cold.” PP 61.5
"그들은 겸손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으로 아름다운 고향에 작별을 고하고 죄의 저주가 머무는 땅에 거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한때 온화하고 온도가 균일했던 대기는 이제 현저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주님께서는 극심한 더위와 추위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비롭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PP 61.5
Zechariah 12:8 – “In that day shall the Lord defend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and he that is feeble among them at that day shall be as David; and the house of David shall be as God, as the angel of the Lord before them.”
스가랴 12:8 - "그 날에 주께서 예루살렘 주민을 지키시리니 그 날에 그들 중에 연약한 자는 다윗과 같을 것이요 다윗의 집은 하나님과 같을 것이며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 앞에 있으리라."
Besides giving us the assurance that the Lord shall defend His people, Inspiration likens them unto David and unto God. Even the feeble ones “shall be as David; and the house of David shall be as God,” “as the angel of the Lord before them.” What a great and wonderful statement! What a privilege to be likened unto God Himself!
영감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 외에도 그들을 다윗과 하나님에 비유합니다. 연약한 자들도 "다윗과 같을 것이요, 다윗의 집은 하나님과 같을 것이며", "그들 앞에 주의 천사와 같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 자신에 비유되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
Now, that we might know what it means to be “as God,” we must study what God is like. At the outset He did not only create and abundantly fill the earth with every good thing for His creatures, but He also planted a garden (home) for the man. Thus He made a model home for all human beings who were to live thereafter. He taught Adam how to keep the home and how to dress the garden. He taught him to speak and to discern the nature between one beast and another, to name them accordingly. God endowed man with knowledge and life in order to make him happy, and useful in making the world what it ought to be. Even after the holy pair fell in sin God was still interested in them as He was before – so much so, in fact, that He immediately began to teach them how to redeem themselves, and to return to their eternal home. From that day to this He thus continued to teach the human family.
이제 '하나님처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으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태초에 그분은 피조물을 위해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우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한 동산(집)도 심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 이후에 살게 될 모든 인간을 위한 모범적인 집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에게 집을 지키는 방법과 동산을 가꾸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짐승과 짐승 사이의 본성을 분별하고 그에 따라 이름을 짓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식과 생명을 부여하신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유용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거룩한 한 쌍이 죄에 빠진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들에게 관심이 많으셨고, 실제로 즉시 그들에게 자신을 구속하고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인간 가족을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To do this saving work God sent down the Spirit of Truth, He sent prophets and angels, also His only Son – all teachers of redemption. He Himself descended to Sinai and even though they slew nearly all His servants including His son, yet His unfailing interest in the human race has continued on to this very day. Not withstanding our faults, His promise to take us back into Eden there to live with Him if we repent, still stands as sure as does the sun.
이 구원 사업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영을 내려 보내셨고, 선지자와 천사들, 그리고 그분의 외아들, 즉 모든 구원의 교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친히 시내산으로 내려오셨고, 비록 그들이 그분의 아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에 대한 그분의 변함없는 관심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회개하면 에덴동산으로 데려가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은 여전히 태양처럼 확실합니다.
Now you see what God is like, and if we are to be “as God,” then that is what we, too, must be like. That means that we must be as interested in one another and in the upbuilding of His Kingdom as He is interested. We are to be as unselfish as He is. We must gladly teach others all that He has taught us. We are to do all we can to improve the living conditions of others. We are to make the world better than it could be if we were not in it. In creation week God did His part. Now we are to do our part of creation if we are to be as God.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면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도 그분이 관심을 가지시는 것처럼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처럼 이기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없을 때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창조 주간에 하나님은 그분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면 창조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Whatever good thing we may have, be it a trade or some other gift that is worth having we are to be as faithful in it and as anxious to teach it to others as He is faithful and anxious to teach us. If we neglect this duty, we shall not only fail to be as God, but shall even be required to give account of our neglect.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재물이든 다른 어떤 은사이든,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신실하고 가르치기를 열망하시는 것처럼 그것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이 의무를 게을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태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The Lord taught the birds how to live and how to build nests, and how to raise their young. Then should we not help others to build and to better their homes and living? You recall Jesus saying, “Whosoever shall give to drink unto one of these little ones a cup of cold water only in the name of a disciple, verily I say unto you, he shall in no wise lose his reward.” Matt. 10:42.
주님은 새들에게 사는 법과 둥지를 짓는 법, 새끼를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집을 짓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마태복음 10:42.
Were God not what He is, He would not be God; and if we continue as we ever were we shall never be “as God.”
신이 신이 아니었다면 신은 신이 아니었을 것이며,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한다면 우리는 결코 "신과 같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Read Genesis 17:7, Genesis 26:3, and Genesis 28:15. What was the main focus of God’s promise to Abraham and his descendants in these verses?
창세기 17장 7절, 창세기 26장 3절, 창세기 28장 15절을 읽으세요.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주요 초점은 무엇이었나요?
"Men, brethren, and fathers, hearken; The God of glory appeared unto our father Abraham, when he was in Mesopotamia, before he dwelt in Charran, and said unto him, Get thee out of thy country, and from thy kindred, and come into the land which I shall shew thee." Acts 7:2, 3. "So Abram departed, as the Lord had spoken unto him" (Gen. 12:4), and went at His lead into Canaan, wherein he dwelt, though the Lord "gave him none inheritance in it, no, not so much as to set his foot on: yet He promised that He would give it to him for a possession, and to his seed after him, when as yet he had no child." Acts 7:5.
"형제들아, 아버지들아 들으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거하기 전에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7:2, 3. "아브람이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떠나"(창 12:4) 주님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으로 가서 그곳에 거하였으나, 주님은 "그에게 기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발붙일 만큼도 주지 아니하셨으나 아직 자식이 없을 때에 그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5). 사도행전 7:5.
Then in time, the Lord purposed to lead Jacob and his household out of the land of Canaan, down into Egypt. Knowing, though, that the sons of Jacob would not go as did Abraham, by His simply telling them to, He therefore in His providence put into the heart of Jacob a greater love for Joseph than for his other children. This begot in them envy and jealousy, which in turn begot hatred and greed, manifesting itself in their cruel treatment and sale of Joseph, which resulted in his being carried away a slave into Egypt.
때가 되자 주님께서는 야곱과 그의 가족을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인도하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아브라함처럼 단순히 말씀만으로는 가지 않을 것임을 아셨기 때문에 그분은 섭리 안에서 야곱의 마음에 다른 자녀들보다 요셉에 대한 더 큰 사랑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시기와 질투가 생겨났고, 결국 증오와 탐욕이 생겨나 요셉을 잔인하게 대하고 팔아넘겨 애굽으로 노예로 끌려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Years later when Joseph's brothers went into Egypt to obtain food during the seven-year famine, Joseph, recognizing Providential design in the strange drama of his life from enslavement to enthronement, said unto his brothers as he "made himself known" unto them: "Be not grieved, nor angry with yourselves, that ye sold me hither: for God did send me before you to preserve life...and...to preserve you a posterity in the earth, and to save your lives by a great deliverance." Gen. 45:1, 5, 7.
몇 년 후, 요셉의 형제들이 7년 기근 동안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들어갔을 때, 요셉은 노예에서 즉위하기까지의 기묘한 인생의 드라마 속에서 섭리의 계획을 깨닫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너희는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슬퍼하거나 스스로 노하지 말라 하나님이 생명을 보존하고... 땅에 후손을 보존하고... 큰 구원으로 너희 생명을 구원하려고 나를 너희보다 먼저 보내셨느니라." 창 45:1, 5, 7.
Thus the Lord providentially exalted Joseph to share the throne of Egypt in order to predispose Pharaoh to grant Israel permission to enter into the land.
따라서 주님은 바로가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기 위해 섭리적으로 요셉을 높여 애굽의 왕좌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Next, to draw them there, He brought thereabouts the seven years of plenty, followed by the seven years of famine. Whereupon He sent word to Jacob that Joseph was yet alive. At the overjoying news, there sprang up in the father an irresistible desire to see his son. This and the life-taking hunger upon Joseph's brethren, compelled them to remove into Pharaoh's land of plenty, where they lived like kings.
그 다음에는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곱 해의 풍년과 일곱 해의 기근을 가져 오셨습니다. 그 후 야곱에게 요셉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에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열망이 솟아났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목숨을 앗아가는 굶주림으로 인해 바로의 풍요로운 땅으로 이주하여 왕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Not purposing, however, to leave them there forever, the Lord did not let their living continue as pleasant as at the first, lest they refuse to take heed to Moses when he should come with the word that the time had arrived for them to go back home. But He brought about another saving providence, this time permitting unbearable hardship to befall them, so that when called they would respond gladly. So slaves they had to become: and still worse, they had to be bereaved of their male children, then mercilessly driven with cruel lashes upon their backs to produce ever more bricks.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그곳에 남겨 두실 생각이 없으셨기 때문에, 모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말을 전하러 올 때 그들이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봐 그들의 생활을 처음처럼 계속 즐겁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 다른 구원의 섭리를 가져 오셨는데, 이번에는 견딜 수없는 고난이 그들에게 닥치도록 허용하여 부름을 받았을 때 기꺼이 응답 할 수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노예가 되어야 했고, 더 나쁜 것은 남자 자녀를 잃고 더 많은 벽돌을 생산하기 위해 잔인한 채찍으로 등을 무자비하게 때려야 했습니다.
Thus the power of the Spirit combined with horrible suffering from their hard Egyptian servitude, was an over-powering force compelling them to forsake the heathen land and to return to their own.
따라서 성령의 능력은 고된 이집트 종살이에서 오는 끔찍한 고통과 결합되어 이방 땅을 버리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도록 강요하는 압도적인 힘이었습니다.
Then, on their way back they met with another providence--their long wilderness sojourn, forty years in all--which God permitted for the express purpose of separating from them the unbelieving, unfaithful multitude who accompanied the Movement out of Egypt. These being destroyed, the survivors miraculously crossed the Jordan, just as they had forty years before crossed the Red Sea. There removing from their midst the one sinner, Achan, who then sprang up among them, they entered into the Promised Land and became the most glorious kingdom in their day. Slaves become kings--what a miracle indeed!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또 다른 섭리, 즉 총 40년에 걸친 긴 광야 생활을 만났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출애굽 운동에 동행한 믿지 않고 불충실했던 무리를 분리하기 위한 하나님의 명백한 목적으로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40년 전 홍해를 건넜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존자들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솟아난 죄인 아간을 제거한 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당대 가장 영광스러운 왕국이 되었습니다. 노예가 왕이 되다니,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Read the narrative of Jesus’ birth in Matthew 1:18-23. What essential things does this account tell us about God? Read John 1:14-18. What can you learn from Christ’s incarnation about God’s mission to us?
마태복음 1장 18-23절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이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본질적인 것을 알려주나요? 요한복음 1:14-18을 읽는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Because the work of Jesus was of tremendous importance and of great consequence, God was exceedingly particular about the parentage of Jesus. For this reason he chose the lineage of Abraham (a good tree), of Isaac, Jacob, Judas, Jesse, David, and down through the line of lineage to Joseph, who became the husband of Mary. Even though Joseph was to be but a foster father to Jesus, God was particular in choosing him.
예수님의 사역은 매우 중요하고 큰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혈통에 대해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브라함(좋은 나무)의 혈통, 이삭, 야곱, 유다, 이새, 다윗의 혈통, 그리고 그 혈통을 통해 마리아의 남편이 된 요셉을 선택하셨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양아버지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특별히 선택하셨습니다.
And as careful as God was about who the foster father of Jesus should be, He was even more particular in the selection of a mother for Jesus. Thus God chose the Saviour’s mother from the line of Joseph, the son of Jacob.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양아버지가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 신중하셨지만, 예수님의 어머니를 선택하실 때는 훨씬 더 신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혈통에서 구세주의 어머니를 선택하셨습니다.
How do [we] know what was the parental lineage of Jesus? – Well, His foster father’s lineage I know from the chronology which Saint Matthew gives. And His mother’s lineage [we] know from Moses’ prophecy of which [we] shall now read: “Joseph is a fruitful bough, even a fruitful bough by a well; whose branches run over the wall: the archers have sorely grieved him, and shot at him, and hated him: but his bow abode in strength, and the arms of his hands were made strong by the hands of the mighty God of Jacob; (from thence is the shepherd, the stone of Israel).” Gen. 49:22-24.
예수의 부모 혈통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양아버지의 혈통은 마태오 성인이 기록한 연대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의 혈통은 모세의 예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열매 맺는 나뭇가지 곧 우물가의 열매 맺는 나뭇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나들며 궁수들이 그를 심히 슬퍼하여 쏘며 미워하였으나 그의 활은 힘이 있고 그의 손의 팔은 야곱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강하게 되었나니 (이스라엘의 목자 곧 돌이 그로부터 났도다)". 창 49:22-24.
Not only was Jesus’ parental lineage carefully selected, but so also has been selected the lineage of every one of God’s men who were entrusted with weighty responsibilities. Why, I ask you, would such precautions be taken if the parents do not bear the most important part in the life of the children?
예수님의 부모의 혈통이 신중하게 선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막중한 책임을 맡겨진 하나님의 모든 사람의 혈통도 선택되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 예방 조치가 취해졌을까요?
Rev. 20:1 – “And I saw an angel come down from heaven, having the key of the bottomless pit and a great chain in His hand.”
요한계시록 20:1 - "또 내가 보니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손에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Here we are told that this mighty angel, Satan’s enemy, has the “key of the bottomless pit.” If He has it, then to Him the key must have been “given.” The Star that received the key, therefore, is symbolical of this angel.
여기서 우리는 사탄의 적인 이 강력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그 열쇠는 그에게 "주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열쇠를 받은 별은 이 천사를 상징합니다.
Moreover, let us notice that as the key opened the bottomless pit, the locusts were released. Finally, the fact that the locusts are enemies to those who have not the seal of God in their foreheads, then the “Star” (angel) that came from heaven and opened the pit to release the locusts is a friend to them and a mighty enemy to Satan. There is therefore no escaping this conclusion: The heavenly Star represents a heaven-sent Being, the same “angel,” of Whom we again read in chapter 20:1, and the locusts are Heaven’s rescued multitude. Who else, then, can the “Star” and the locusts represent but Christ and the Christians? Satan had shut up into the bottomless pit the entire Jewish nation, – the only nation that had previously been out of the pit. Christ therefore came to open the pit and to let the captives go free. To such a world was the Lord of Heaven sent, and when He came He immediately declared:
또한 열쇠가 바닥없는 구덩이를 열었을 때 메뚜기가 풀려났다는 것을 주목합시다. 마지막으로, 메뚜기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없는 사람들에게는 원수이며, 하늘에서 와서 구덩이를 열어 메뚜기를 풀어 준"별"(천사)은 그들에게 친구이고 사탄에게는 강력한 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결론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의 별은 우리가 20장 1절에서 다시 읽은 것과 동일한 "천사"인 하늘에서 보내신 존재를 나타내며, 메뚜기는 하늘에서 구출된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별"과 메뚜기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외에는 누구를 상징 할 수 있습니까? 사탄은 이전에 구덩이에서 나온 유일한 민족이었던 유대 민족 전체를 바닥이 없는 구덩이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 구덩이를 열고 포로들을 풀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 세상에 하늘의 주님이 보내졌고, 그분은 오셨을 때 즉시 선언하셨습니다:
Luke 4:18, 19 –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th anointed Me to preach the gospel to the poor; He hath sent Me to heal the broken-hearted, to preach deliverance to the captives, and recovering of sight to the blind, to set at liberty them that are bruised, to preach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누가복음 4:18, 19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Here you have it in Inspiration’s own code of mysticism, freshly unveiled that Jesus Christ is indeed a heaven-sent Being, the Saviour of the world.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늘이 보내신 존재이자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낸 인스퍼레이션의 신비주의 강령이 여기에 있습니다.
How does God’s love and mission interact in John 3:16? What is the promise we can find in the Great Commission of Matthew 28:18-20?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는 어떻게 상호 작용하나요? 마태복음 28:18-20의 지상명령에서 찾을 수 있는 약속은 무엇인가요?
The mission to save the world cannot be more important than the mission to save the church. Enlarging the church membership under the now prevailing lukewarm Laodicean conditions, could no more advance the Kingdom of Christ than could have been done under the conditions in the Jewish church in the days of His first advent. Understanding the true situation in that church, John the Baptist and Christ Himself and even the apostles at first, engaged themselves to work, not for the world in general, but only in the interest of their brethren in the church.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은 교회를 구원하는 사명보다 더 중요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에서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은 주님이 처음 오셨을 때 유대 교회의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왕국을 발전시킬 수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자신, 심지어 사도들조차도 그 교회의 진정한 상황을 이해하고 처음에는 세상 일반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있는 형제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했습니다.
As the same departure from Christ exists within the church now as it did then (Testimonies, Vol. 5, p. 217), it will take much greater effort to rescue the people from the Laodicean "sad deception" (Testimonies, Vol. 3, p. 253), than if they were in heathenism. For in Laodicea they are made to believe that they have all the truth there is to be had, that they are rich increased with goods, and in need of nothing--their salvation forever secured as long as they hold membership in the church! Hence there is greater risk of their losing their souls in the church while she is "lukewarm" and about to be spued out, than if they remain in the world until the church awakes from her slumber, and anoints herself with the eyesalve (Truth)--sees right, does right, and leads and feeds the flock aright.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간증 5권, 217쪽), 라오디게아의 "슬픈 속임수"(간증 3권, 253쪽)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려면 이교도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에서는 그들이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고, 재물로 부유해졌으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며, 교회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한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믿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잠에서 깨어나 눈동자 (진리)로 기름을 바르고 바르게보고 바르게 행하며 양떼를 바르게 인도하고 먹일 때까지 세상에 남아있는 것보다 교회가"미지근하고"쫓겨나려고하는 동안 교회에서 그들의 영혼을 잃을 위험이 더 큽니다.
Let every honest member ask the question, If the church herself is not saved (Testimonies, Vol. 3, p. 253), not following Christ her Leader (Testimonies, Vol. 5, p. 217) and "has become an harlot" (Testimonies, Vol. 8, p. 250), how can she save others? The greatest need therefore is first to save those in the church, then those in the world. The "special work of purification, of putting away of sin, among God's people" (The Great Controversy, p. 425), "the closing work for the church, in the sealing time of the one hundred and forty-four thousand" (Testimonies, Vol. 3, p.266), must come first, then is to follow the sealing of those in the world.
모든 정직한 회원은 교회 자신도 구원받지 못하고(간증, 3권, 253쪽), 지도자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간증, 5권, 217쪽), "창녀가 되었다"(간증, 8권, 250쪽)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장 큰 필요는 먼저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다음에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죄를 버리고 정결케 하는 특별한 역사"(대쟁투, 425쪽), "십사만사천 인봉의 때에 교회를 위한 종결 사업"(간증집, 3권, 266쪽)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266), 세상 사람들의 인봉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그 다음이 세상 사람들의 인봉을 따르는 것입니다.
Still further, as it is not we, but Christ Who "is taking the reins in His own hands" (Testimonies to Ministers, p. 300), it is not our duty to tell Him which work should be done, and which should be left undone, but let every follower of His realize that He will "work in a manner very much out of the common order of things, and in a way that will be contrary to any human planning."--Testimonies to Ministers, p. 300.
더 나아가, "그분의 손에 고삐를 쥐고 계신 분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므로"(성역자 간증, 300쪽),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그분이 "일반적인 질서에서 매우 벗어나 인간의 계획에 반하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시오.
Be not like the class who "question and criticize everything that arises in the unfolding of truth" (Testimonies, Vol. 5, p. 690), but be like those who "let Heaven guide."--Testimonies to Ministers, p. 475.
"진리의 전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간증, 5권, 690쪽)하는 반원들처럼 되지 말고, "하늘이 인도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들처럼 되십시오."--목회자 간증, 475쪽.
The command to us is: "Cry aloud, spare not lift up thy voice like a trumpet, and shew My people their transgression, and the house of Jacob their sins." Isa. 58:1.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나팔처럼 목소리를 높이기를 아끼지 말고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 주라." 이사야 58:1.
"Go through, go through the gates; prepare ye the way of the people; cast up, cast up the highway; gather out the stones; lift up a standard for the people. Behold, the Lord hath proclaimed unto the end of the world, Say ye to the daughter of Zion, Behold, thy salvation cometh; behold, His reward is with Him; and His work before Him." Isa. 62:10, 11.
"너희는 성문으로 들어가서 백성의 길을 예비하고, 큰길을 쌓고, 돌을 치우고, 백성을 위한 표준을 세우라. 보라 주께서 세상 끝까지 선포하시기를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도다 보라 그의 상이 그와 함께 있고 그의 일이 그 앞에 있도다 하라 하셨느니라." 사 62:10, 11.
In what ways is John 14:1-3 connected with the end-time message found in the Scriptures?
요한복음 14장 1~3절은 성경에 나오는 종말의 메시지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나요?
The millennial age of peace is hence, plainly, to be spent, not on the earth, but in the “mansions” above, for the Lord’s promise is: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again, and receive you unto myself; that where I am, there ye may be also.” John 14:2, 3.
그러므로 천년 평화의 시대는 분명히 이 땅이 아니라 위의 "저택"에서 보내게 될 것이며, 주님의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 3.
Thus, at Christ’s second appearing, both all the righteous and all the wicked receive their rewards: the righteous dead are raised to life everlasting, and the righteous living are changed to immortality in the twinkling of an eye, and are then with the resurrected taken to heaven (1 Cor. 15:52, 53; 1 Thess. 4:15-17) while the wicked living go into their graves (2 Thess. 2:8; Isa. 11:4; Heb. 10:27; Luke 19:27). And since from the resurrection of all the righteous to the resurrection of all the wicked (Rev. 20:5), there stretch a thousand years (the millennium), this period, obviously, then, cannot be a time of receiving rewards, but rather must be a time in which the righteous enjoy in heaven the rewards already received, and in which the wicked rest in their graves.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의인과 악인 모두 상을 받습니다. 의로운 죽은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나고 의로운 살아있는 자들은
의로운 산 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불멸로 변화되어 부활한 자들과 함께 하늘로 옮겨지고(고전 15:52, 53, 살전 4:15-17), 악한 산 자들은 무덤으로 들어갑니다(살후 2:8, 사 11:4, 히 10:27, 눅 19:27). 그리고 모든 의인의 부활에서 모든 악인의 부활까지(계 20:5) 천 년(천년왕국)이 이어지므로, 이 기간은 분명히 상을 받는 기간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의인은 이미 받은 상을 하늘에서 누리고 악인은 무덤에서 안식하는 기간이어야 합니다.
“I go” said Jesus, “to prepare a place for you.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again, and receive you unto Myself; that where I am, there ye may be also.” John 14:2, 3. Plainly, they that live during the millennium, live with Christ in the mansions above. Then, after the thousand years, reveals John, “the sea gave up the dead which were in it; and death and hell delivered up the dead which were in them: and they were [had been] judged every man according to their works.”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 3. 분명히 천년 동안 사는 사람들은 위의 저택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후 요한은 "바다가 그 가운데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사망과 음부가 그 가운데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주니 그들이 각 사람이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더라"고 말합니다.
Still further, as both the living and the resurrected saints are taken to “live and reign with Christ,” and as all those who are judged at the Great White Throne, are judged while dead, the truth stands out more and more clearly that there are no wicked living during the thousand years. Indeed not, for the earth and heaven have by then fled away, moved out of their original sphere, become empty of life and void (Isa. 24:1-6; Jer. 4:23-26), a “bottomless pit” (Rev. 20:1) on which no one can stand. Necessarily, the saints, those who are left, live and reign a thousand years with Christ in the Heaven of heavens, where the “many mansions” are. At the termination of the thousand years, descends the Holy City, the mansions, the New Jerusalem, and the saints with it (Rev. 21:2). From then on the saints do not live with Christ but He lives with them (Rev. 21 :3).
더 나아가, 산 자와 부활한 성도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다스리는" 곳으로 옮겨지고, 백보좌에서 심판을 받는 모든 사람이 죽은 상태에서 심판을 받을 때, 천 년 동안 악인이 살지 않는다는 진리가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땅과 하늘은 본래의 영역에서 벗어나 생명이 없고 공허하며(사 24:1-6; 렘 4:23-26) 아무도 설 수 없는 "바닥이 없는 구덩이"(계 20:1)가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성도들, 즉 남은 자들은 "많은 저택"이 있는 하늘의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살며 통치합니다. 천 년이 끝나면 거룩한 성, 저택, 새 예루살렘,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내려옵니다(계 21:2). 그때부터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사십니다(계 21:3).
“When the message of truth is presented in our day, there are many who, like the Jews, cry, Show us a sign. Work us a miracle. Christ wrought no miracle at the demand of the Pharisees. He wrought no miracle in the wilderness in answer to Satan's insinuations. He does not impart to us power to vindicate ourselves or to satisfy the demands of unbelief and pride. But the gospel is not without a sign of its divine origin. Is it not a miracle that we can break from the bondage of Satan? Enmity against Satan is not natural to the human heart; it is implanted by the grace of God. When one who has been controlled by a stubborn, wayward will is set free, and yields himself wholeheartedly the drawing of God's heavenly agencies, a miracle is wrought; so also when a man who has been under strong delusion comes to understand moral truth. Every time a soul is converted, and learns to love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the promise of God is fulfilled, “A new heart also will I give you, and a new spirit will I put within you.” Ezekiel 36:26. The change in human hearts, the transformation of human characters, is a miracle that reveals an ever-living Saviour, working to rescue souls. A consistent life in Christ is a great miracle. In the preaching of the word of God, the sign that should be manifest now and always is the presence of the Holy Spirit, to make the word a regenerating power to those that hear. This is God's witness before the world to the divine mission of His Son.” DA 407.1
"우리 시대에 진리의 메시지가 전해질 때 유대인들처럼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소서.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따라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에 응답하여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을 변호하거나 불신앙과 교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신성한 기원의 표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까요? 사탄에 대한 적개심은 인간의 마음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심어진 것입니다. 완고하고 변덕스러운 의지의 지배를 받던 사람이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하늘 기관의 이끄심에 전심으로 자신을 내어줄 때 기적이 일어나며, 강한 망상 속에 있던 사람이 도덕적 진리를 이해하게 될 때에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영혼이 회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법을 배울 때마다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에스겔 36:26. 인간의 마음이 변화하고 인격이 변화하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영원히 살아 계신 구세주를 드러내는 기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관된 삶은 위대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지금 그리고 항상 나타나야 하는 표징은 성령의 임재이며, 그 말씀이 듣는 사람들에게 재생의 능력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아들의 신성한 사명에 대한 하나님의 세상 앞에서의 증거입니다." DA 4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