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even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KJV — Mark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KJV - 마가복음 10:45
“Again the strife as to which should be greatest seemed about to be renewed, when Jesus, calling them to Him, said to the indignant disciples, “Ye know that they which are accounted to rule over the Gentiles exercise lordship over them; and their great ones exercise authority upon them. But so shall it not be among you.” DA 550.1
"예수께서 분노한 제자들을 부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방인을 다스리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권을 행사하고 그들의 큰 자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행사하는 것을 알고 있느니라"고 하셨을 때 다시 어느 것이 더 큰가에 대한 분쟁이 새롭게 시작되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리라." DA 550.1
“In the kingdoms of the world, position meant self-aggrandizement. The people were supposed to exist for the benefit of the ruling classes. Influence, wealth, education, were so many means of gaining control of the masses for the use of the leaders. The higher classes were to think, decide, enjoy, and rule; the lower were to obey and serve. Religion, like all things else, was a matter of authority. The people were expected to believe and practice as their superiors directed. The right of man as man, to think and act for himself, was wholly unrecognized. DA 550.2
"전 세계 왕국에서 지위는 곧 자기 확장을 의미했습니다. 민중은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했습니다. 영향력, 부, 교육은 지도자들이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수많은 수단이었죠. 상류층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즐기고, 지배하고, 하류층은 순종하고 봉사해야 했습니다. 종교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권위의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상급자가 지시하는 대로 믿고 실천해야 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는 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DA 550.2
“Christ was establishing a kingdom on different principles. He called men, not to authority, but to service, the strong to bear the infirmities of the weak. Power, position, talent, education, placed their possessor under the greater obligation to serve his fellows. To even the lowliest of Christ's disciples it is said, “All things are for your sakes.” 2 Corinthians 4:15. DA 550.3
"그리스도는 다른 원칙을 바탕으로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권위가 아닌 섬김으로 부르셨고,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연약함을 짊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권력, 지위, 재능, 교육은 그 소유자에게 동료들을 섬겨야 할 더 큰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낮은 제자에게도 "모든 것이 다 너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15. DA 550.3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Among His disciples Christ was in every sense a caretaker, a burden bearer. He shared their poverty, He practiced self-denial on their account, He went before them to smooth the more difficult places, and soon He would consummate His work on earth by laying down His life. The principle on which Christ acted is to actuate the members of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plan and ground of salvation is love. In the kingdom of Christ those are greatest who follow the example He has given, and act as shepherds of His flock." DA 550.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돌보는 자, 짐을 지는 자였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가난을 나누셨고, 그들을 위해 자기 부인을 실천하셨으며, 더 어려운 곳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그들보다 먼저 가셨고, 곧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음으로써 지상에서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행동하신 원리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을 움직이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의 계획과 근거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그분이 주신 모범을 따르고 그분의 양떼의 목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장 위대합니다." DA 550.4
“The words of Paul reveal the true dignity and honor of the Christian life: “Though I be free from all men, yet have I made myself servant unto all,” “not seeking mine own profit, but the profit of many, that they may be saved.” 1 Corinthians 9:19; 10:33. DA 550.5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울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고자 함은" "내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인 삶의 진정한 존엄과 명예를 드러냅니다. 고린도전서 9:19; 10:33. DA 550.5
“In matters of conscience the soul must be left untrammeled. No one is to control another's mind, to judge for another, or to prescribe his duty. God gives to every soul freedom to think, and to follow his own convictions. “Every one of us shall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 No one has a right to merge his own individuality in that of another. In all matters where principle is involved, “let every man be fully persuaded in his own mind.” Romans 14:12, 5. In Christ's kingdom there is no lordly oppression, no compulsion of manner. The angels of heaven do not come to the earth to rule, and to exact homage, but as messengers of mercy, to co-operate with men in uplifting humanity.” DA 550.6
"양심에 관한 문제에서는 영혼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거나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판단하거나 그의 의무를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에게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을 따를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명해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과 합칠 권리가 없습니다. 원칙이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각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충분히 설득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4:12, 5.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군주의 억압이나 예의에 대한 강압이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통치하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상에 온 것이 아니라 자비의 사자로서 인간을 고양하는 데 인간과 협력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DA 550.6
Read Mark 10:1-12, as well as Genesis 1:27 and Genesis 2:24. What trap was hiding under the Pharisees question about divorce, and what lesson did Jesus teach ion His response?
마가복음 10:1-12과 창세기 1:27, 2:24을 읽어 보라. 이혼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는 어떤 함정이 숨겨져 있었으며, 이에 대답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어떤 교훈을 주셨는가?
“In the youthful mind, marriage is clothed with romance, and it is difficult to divest it of this feature, with which imagination covers it, and to impress the mind with a sense of the weighty responsibilities involved in the marriage vow. This vow links the destinies of the two individuals with bonds which nought but the hand of death should sever.” 4T 506.3
"젊은 마음에서 결혼은 로맨스로 옷을 입었고, 상상력이 그것을 덮고 있는 이 특징에서 벗어나 결혼 서약에 수반되는 무거운 책임감을 마음에 각인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 서약은 두 사람의 운명을 죽음의 손길 외에는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연결한다." 4T 506.3
“Every marriage engagement should be carefully considered, for marriage is a step taken for life. Both the man and the woman should carefully consider whether they can cleave to each other through the vicissitudes of life as long as they both shall live.” 11LtMs, Lt 17, 1896, par. 8
"결혼은 평생을 위한 발걸음이기 때문에 모든 결혼 약혼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살아 있는 한 인생의 굴곡 속에서 서로를 갈라놓을 수 있는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11LtM, Lt 17, 1896, par. 8
“Among the Jews a man was permitted to put away his wife for the most trivial offenses, and the woman was then at liberty to marry again. This practice led to great wretchedness and sin. In the Sermon on the Mount Jesus declared plainly that there could be no dissolution of the marriage tie, except for unfaithfulness to the marriage vow. “Everyone,” He said, “that putteth away his wife, saving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maketh her an adulteress: and whosoever shall marry her when she is put away committeth adultery.” R.V. MB 63.1
"유대인들 사이에서 남자는 아주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도 아내를 버릴 수 있었고, 여자는 다시 결혼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 관행은 큰 비참함과 죄를 낳았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결혼 서약에 불충실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 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음행을 위하여 아내를 버리는 자는 간음하는 자요, 아내가 버림을 받았을 때에 장가드는 자는 간음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R.V. MB 63.1
“When the Pharisees afterward questioned Him concerning the lawfulness of divorce, Jesus pointed His hearers back to the marriage institution as ordained at creation. “Because of the hardness of your hearts,” He said, Moses “suffered you to put away your wives: but from the beginning it was not so.” Matthew 19:8. He referred them to the blessed days of Eden, when God pronounced all things “very good.” Then marriage and the Sabbath had their origin, twin institutions for the glory of God in the benefit of humanity. Then, as the Creator joined the hands of the holy pair in wedlock, saying,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Genesis 2:24), He enunciated the law of marriage for all the children of Adam to the close of time. That which the Eternal Father Himself had pronounced good was the law of highest blessing and development for man. MB 63.2 ‘Jesus came to our world to rectify mistakes and to restore the moral image of God in man. Wrong sentiments in regard to marriage had found a place in the minds of the teachers of Israel. They were making of none effect the sacred institution of marriage. Man was becoming so hard-hearted that he would, for the most trivial excuse, separate from his wife, or, if he chose, he would separate her from the children and send her away. This was considered a great disgrace, and was often accompanied by the most acute suffering on the part of the discarded one.’” 14LtMs, Ms 16, 1899, par. 10
"나중에 바리새인들이 이혼의 합법성에 관해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창조 당시 제정된 결혼 제도를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모세는 "너희가 아내를 버리라고 고통을 주었으나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8.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셨던 에덴의 복된 시절을 언급했습니다. 결혼과 안식일은 인류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쌍둥이 제도로서 그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께서 결혼하는 거룩한 한 쌍의 손을 잡고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담의 모든 자녀에게 결혼의 율법을 선포하셨고, 그 율법은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친히 선하다고 선언하신 그 법은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과 발전의 법이었습니다. MB 63.2 '예수님은 실수를 바로잡고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결혼에 관한 잘못된 정서가 이스라엘의 교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해져서 아주 사소한 핑계로 아내와 별거하거나, 원할 경우 아내를 아이들과 분리하여 멀리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는 큰 수치로 여겨졌고, 버림받은 당사자에게는 가장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4LtM, Ms 16, 1899, par. 10
“Christ came not to destroy the law, but to fulfill its every specification. He came to pull down and destroy the works of oppression that the enemy had raised up everywhere. It was in perfect harmony with His character and work to make known the fact that marriage is a sacred and holy institution.” 14LtMs, Ms 16, 1899, par. 31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모든 규정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원수가 모든 곳에서 일으킨 억압의 역사를 무너뜨리고 파괴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결혼이 신성하고 거룩한 제도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사역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습니다." 14LtM, 16, 1899, par. 31
Read Mark 10:13-16. What did Jesus do for those who brought children to Him?
마가복음 10:13-16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Jesus was ever a lover of children. He accepted their childish sympathy and their open, unaffected love. The grateful praise from their pure lips was music in His ears, and refreshed His spirit when oppressed by contact with crafty and hypocritical men. Wherever the Saviour went, the benignity of His countenance, and His gentle, kindly manner won the love and confidence of children.” DA 511.1
"예수님은 언제나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아이들의 유치한 동정심과 꾸밈없는 열린 사랑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입술에서 나오는 감사한 찬양은 그분의 귀에 음악이 되었고, 교활하고 위선적인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억눌렸을 때 그분의 영혼을 상쾌하게 해주었습니다. 구주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분의 얼굴의 온화함과 온화하고 친절한 태도는 어린이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DA 511.1
“Among the Jews it was customary for children to be brought to some rabbi, that he might lay his hands upon them in blessing; but the Saviour's disciples thought His work too important to be interrupted in this way. When the mothers came to Him with their little ones, the disciples looked on them with disfavor. They thought these children too young to be benefited by a visit to Jesus, and concluded that He would be displeased at their presence. But it was the disciples with whom He was displeased. The Saviour understood the care and burden of the mothers who were seeking to train their children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He had heard their prayers. He Himself had drawn them into His presence." DA 511.2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을 랍비에게 데려가서 축복의 안수를 받게 하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구세주의 제자들은 그분의 사역이 이런 식으로 중단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주님께 왔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예수님을 만나서 유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이 그들의 존재를 불쾌하게 여길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불쾌해하신 것은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를 훈련시키려는 어머니들의 걱정과 부담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분은 친히 그들을 그분의 면전으로 이끄셨다." DA 511.2
“One mother with her child had left her home to find Jesus. On the way she told a neighbor her errand, and the neighbor wanted to have Jesus bless her children. Thus several mothers came together, with their little ones. Some of the children had passed beyond the years of infancy to childhood and youth. When the mothers made known their desire, Jesus heard with sympathy the timid, tearful request. But He waited to see how the disciples would treat them. When He saw them send the mothers away, thinking to do Him a favor, He showed them their error, saying,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and forbid them not: for of such is the kingdom of God.” He took the children in His arms, He laid His hands upon them, and gave them the blessing for which they came." DA 511.3
“The mothers were comforted. They returned to their homes strengthened and blessed by the words of Christ. They were encouraged to take up their burden with new cheerfulness, and to work hopefully for their children. The mothers of today are to receive His words with the same faith. Christ is as verily a personal Saviour today as when He lived a man among men. He is as verily the helper of mothers today as when He gathered the little ones to His arms in Judea. The children of our hearths are as much the purchase of His blood as were the children of long ago." DA 512.1
"어머니들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축복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새 힘을 얻어 자신들의 짐을 짊어지고 자녀들을 위해 희망차게 일하도록 격려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어머니들도 같은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날에도 사람 가운데 사람으로 사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개인적인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유대에서 어린아이들을 그분의 품으로 모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어머니들의 진정한 도우미이십니다. 우리 난로의 자녀들은 오래 전의 자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분의 피를 사신 것입니다." DA 512.1
“Jesus knows the burden of every mother's heart. He who had a mother that struggled with poverty and privation sympathizes with every mother in her labors. He who made a long journey in order to relieve the anxious heart of a Canaanite woman will do as much for the mothers of today. He who gave back to the widow of Nain her only son, and who in His agony upon the cross remembered His own mother, is touched today by the mother's sorrow. In every grief and every need He will give comfort and help." DA 512.2
"예수님은 모든 어머니의 마음의 짐을 알고 계십니다. 가난과 궁핍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두신 그분은 모든 어머니의 수고를 공감하십니다. 가나안 여인의 불안한 마음을 덜어주기 위해 먼 길을 오셨던 그분은 오늘날의 어머니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나인의 과부에게 외아들을 돌려주시고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셨던 그분은 오늘날 어머니의 슬픔에 감동을 받으십니다. 모든 슬픔과 모든 필요에서 그분은 위로와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DA 512.2
“Let mothers come to Jesus with their perplexities. They will find grace sufficient to aid them in the management of their children. The gates are open for every mother who would lay her burdens at the Saviour's feet. He who said,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and forbid them not,” still invites the mothers to lead up their little ones to be blessed by Him. Even the babe in its mother's arms may dwell as under the shadow of the Almighty through the faith of the praying mother. John the Baptist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from his birth. If we will live in communion with God, we too may expect the divine Spirit to mold our little ones, even from their earliest moments." DA 512.3
"어머니들이 곤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오게 하세요. 그들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충분한 은혜를 발견할 것입니다. 구세주의 발 앞에 자신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모든 어머니를 위해 문이 열려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참아라,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그분은 여전히 어머니들이 어린아이들을 이끌고 그분께 축복을 받도록 초대하십니다.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조차도 기도하는 어머니의 믿음을 통해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간다면, 신성한 성령께서 우리의 어린 자녀를 가장 어린 순간부터 형성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DA 512.3
“In the children who were brought in contact with Him, Jesus saw the men and women who should be heirs of His grace and subjects of His kingdom, and some of whom would become martyrs for His sake. He knew that these children would listen to Him and accept Him as their Redeemer far more readily than would grown-up people, many of whom were the worldly-wise and hardhearted. In His teaching He came down to their level. He, the Majesty of heaven, did not disdain to answer their questions, and simplify His important lessons to meet their childish understanding. He planted in their minds the seeds of truth, which in after years would spring up, and bear fruit unto eternal life." DA 512.4
"예수님은 그분과 접촉한 어린이들 속에서 그분의 은혜의 상속자이자 그분의 왕국의 백성이 될 남녀를 보셨고, 그들 중 일부는 그분을 위해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린이들이 세상적으로 지혜롭고 마음이 강퍅한 어른들보다 훨씬 더 쉽게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가르치실 때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의 위엄을 지니신 그분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고, 그분의 중요한 교훈을 어린아이들의 이해에 맞게 단순화하여 설명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마음속에 진리의 씨앗을 심으셨고, 그 씨앗은 세월이 지나면 싹이 트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DA 512.4
“It is still true that children are the most susceptible to the teachings of the gospel; their hearts are open to divine influences, and strong to retain the lessons received. The little children may be Christians, having an experience in accordance with their years. They need to be educated in spiritual things, and parents should give them every advantage, that they may form characters after the similitude of the character of Christ.” DA 515.1
"어린이들이 복음의 가르침에 가장 민감하고, 신성한 영향에 마음이 열려 있으며, 받은 교훈을 기억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기독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들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하며, 부모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성품을 형성할 수 있도록 모든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DA 515.1
Read Mark 10:17-31. What crucial lessons about faith and the cost of discipleship–for anyone, rich or poor–is revealed here?
마가복음 10:17-31을 읽어 보라. 부자이든 가난하든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 는 믿음과 제자도의 대가에 대한 어떤 중요한 교훈이 여기에 드러나 있는가?
“Christ gave this man a test. He called upon him to choose between the heavenly treasure and worldly greatness. The heavenly treasure was assured him if he would follow Christ. But self must yield; his will must be given into Christ's control. The very holiness of God was offered to the young ruler. He had the privilege of becoming a son of God, and a coheir with Christ to the heavenly treasure. But he must take up the cross, and follow the Saviour in the path of self-denial." DA 519.5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람에게 시험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보물과 세상의 위대함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를 경우 하늘의 보물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아는 양보해야 하고, 그의 의지는 그리스도의 통제에 맡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이 젊은 통치자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물의 상속자가 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지고 자기 부인의 길로 구주를 따라야 합니다." DA 519.5
“Christ's words were verily to the ruler the invitation, “Choose you this day whom ye will serve.” Joshua 24:15. The choice was left with him. Jesus was yearning for his conversion. He had shown him the plague spot in his character, and with what deep interest He watched the issue as the young man weighed the question! If he decided to follow Christ, he must obey His words in everything. He must turn from his ambitious projects. With what earnest, anxious longing, what soul hunger, did the Saviour look at the young man, hoping that he would yield to the invitation of the Spirit of God!" DA 520.1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으로 통치자에게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는 초대장이었습니다." 여호수아 24:15. 선택은 그에게 맡겨졌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회심을 갈망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의 인격에 전염병이 있는 부분을 보여 주셨고, 그 청년이 그 문제를 저울질할 때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셨는지 모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했다면, 그는 모든 일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구세주께서는 얼마나 간절하고 간절한 갈망과 영혼의 굶주림으로 그 청년을 바라보셨으며, 그가 하느님의 영의 초청에 굴복하기를 바라셨을까!" DA 520.1
“Christ made the only terms which could place the ruler where he would perfect a Christian character. His words were words of wisdom, though they appeared severe and exacting. In accepting and obeying them was the ruler's only hope of salvation. His exalted position and his possessions were exerting a subtle influence for evil upon his character. If cherished, they would supplant God in his affections. To keep back little or much from God was to retain that which would lessen his moral strength and efficiency; for if the things of this world are cherished, however uncertain and unworthy they may be, they will become all-absorbing." DA 520.2
"그리스도께서는 통치자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엄격하고 엄격해 보이지만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 통치자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었습니다. 그의 고귀한 지위와 소유물은 그의 성품에 미묘한 악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들은 그의 애정에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합당하지 않더라도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들은 그의 도덕적 힘과 효율성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물러나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흡수하게 될 것입니다." DA 520.2
“The ruler was quick to discern all that Christ's words involved, and he became sad. If he had realized the value of the offered gift, quickly would he have enrolled himself as one of Christ's followers. He was a member of the honored council of the Jews, and Satan was tempting him with flattering prospects of the future. He wanted the heavenly treasure, but he wanted also the temporal advantages his riches would bring him. He was sorry that such conditions existed; he desired eternal life, but he was not willing to make the sacrifice. The cost of eternal life seemed too great, and he went away sorrowful; “for he had great possessions.” DA 520.3
"그 통치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포함된 모든 것을 재빨리 분별하고 슬퍼했습니다. 만약 그가 예물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그는 곧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등록했을 것입니다. 그는 명예로운 유대인 공의회의 일원이었고, 사탄은 미래에 대한 아첨하는 전망으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보물도 원했지만, 재물이 가져다 줄 현세적인 이점도 원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원했지만 그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존재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영생의 대가가 너무 커 보였기 때문에 그는 슬퍼하며 떠났습니다."그는 큰 소유를 가졌음이라". DA 520.3
“His claim that he had kept the law of God was a deception. He showed that riches were his idol. He could not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while the world was first in his affections. He loved the gifts of God more than he loved the Giver. Christ had offered the young man fellowship with Himself. “Follow Me,” He said. But the Saviour was not so much to him as his own name among men or his possessions. To give up his earthly treasure, that was seen, for the heavenly treasure, that was unseen, was too great a risk. He refused the offer of eternal life, and went away, and ever after the world was to receive his worship. Thousands are passing through this ordeal, weighing Christ against the world; and many choose the world. Like the young ruler, they turn from the Saviour, saying in their hearts, I will not have this Man as my leader." DA 520.4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다는 그의 주장은 속임수였습니다. 그는 재물이 우상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먼저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주신 분을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의 선물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청년에게 자신과의 교제를 제안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는 그에게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나 소유물만큼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보물을 위해 눈에 보이는 지상의 보물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제안을 거절하고 떠나셨고, 그 후 세상은 그분의 경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수천 명이 그리스도와 세상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이 시련을 통과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세상을 선택합니다. 젊은 통치자처럼 그들은 마음속으로 "나는 이 사람을 나의 지도자로 삼지 않겠다"고 말하며 구주에게서 돌아섭니다." DA 520.4
“Christ's dealing with the young man is presented as an object lesson. God has given us the rule of conduct which every one of His servants must follow. It is obedience to His law, not merely a legal obedience, but an obedience which enters into the life, and is exemplified in the character. God has set His own standard of character for all who would become subjects of His kingdom. Only those who will become co-workers with Christ, only those who will say, Lord, all I have and all I am is Thine, will be acknowledged as sons and daughters of God. All should consider what it means to desire heaven, and yet to turn away because of the conditions laid down. Think of what it means to say “No” to Christ. The ruler said, No, I cannot give You all. Do we say the same? The Saviour offers to share with us the work God has given us to do. He offers to use the means God has given us, to carry forward His work in the world. Only in this way can He save us. DA 523.1
"그리스도께서 이 청년을 대하신 것은 실물 교훈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종들이 따라야 할 행동 규칙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며, 단순히 율법적인 순종이 아니라 삶으로 들어오는 순종이며, 성품으로 모범을 보이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국의 신민이 될 모든 사람을 위해 그분만의 성품 표준을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사람만이, 주님, 나의 모든 것과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모두가 천국을 소망하면서도 정해진 조건 때문에 외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통치자가 말하기를, 아니, 나는 너희에게 모두 줄 수 없다. 우리도 똑같이 말합니까? 구주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우리와 함께 나누겠다고 제안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단을 사용하여 세상에서 그분의 일을 수행하겠다고 제안하십니다. 그래야만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DA 523.1
“The ruler's possessions were entrusted to him that he might prove himself a faithful steward; he was to dispense these goods for the blessing of those in need. So God now entrusts men with means, with talents and opportunities, that they may be His agents in helping the poor and the suffering. He who uses his entrusted gifts as God designs becomes a co-worker with the Saviour. He wins souls to Christ, because he is a representative of His character." DA 523.2
"통치자의 소유는 그가 신실한 청지기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에게 맡겨졌고,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축복을 위해 이 재물을 분배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제 사람들에게 수단과 재능과 기회를 맡기셔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그분의 대리인이 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은사를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구세주와 동역자가 됩니다. 그는 그분의 성품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끈다." DA 523.2
“To those who, like the young ruler, are in high positions of trust and have great possessions, it may seem too great a sacrifice to give up all in order to follow Christ. But this is the rule of conduct for all who would become His disciples. Nothing short of obedience can be accepted. Self-surrender is the substance of the teachings of Christ. Often it is presented and enjoined in language that seems authoritative, because there is no other way to save man than to cut away those things which, if entertained, will demoralize the whole being." DA 523.3
"젊은 통치자처럼 높은 지위에 있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 큰 희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의 행동 규칙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기 포기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종종 권위적으로 보이는 언어로 제시되고 강조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인간 전체를 타락시킬 수 있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DA 523.3
“When Christ's followers give back to the Lord His own, they are accumulating treasure which will be given to them when they shall hear the words,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 enter thou into the joy of thy Lord.”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Matthew 25:23; Hebrews 12:2. The joy of seeing souls redeemed, souls eternally saved, is the reward of all that put their feet in the footprints of Him who said, ‘Follow Me.’” DA 523.4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님께 자신의 것을 돌려드릴 때, 그들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님의 기쁨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을 때 그들에게 주어질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마태복음 25:23; 히브리서 12:2. 영혼이 구속되고 영혼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을 보는 기쁨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발자국에 발을 딛는 모든 사람의 상급입니다." DA 523.4
Read Mark 10:33-45. How do these verses reveal the continued ignorance of the disciples regarding not only Jesus’ mission but what it means to follow Him?
마가복음 10:32-45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는 예수님의 사명만 아니라 그분을 따른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몰랐던 제자들의 무지함이 어떻게 드러나 있는가?
“Again Christ called the twelve about Him, and with greater definiteness than ever before, He opened to them His betrayal and sufferings. “Behold,” He said, “we go up to Jerusalem, and all things that are written by the prophets concerning the Son of man shall be accomplished. For He shall be delivered unto the Gentiles, and shall be mocked, and spitefully entreated, and spitted on: and they shall scourge Him, and put Him to death: and the third day He shall rise again. And they understood none of these things: and this saying was hid from them, neither knew they the things which were spoken.” DA 547.2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열두 제자를 부르셨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배신과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선지자들이 인자에 관하여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조롱을 받고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리니 그들이 그를 채찍질하여 죽이겠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그들이 이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 말씀이 그들에게 감추어졌으므로 그 말하는 것도 알지 못하였도다." DA 547.2
“Had they not just before proclaimed everywhere,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Had not Christ Himself promised that many should sit down with Abraham and Isaac and Jacob in the kingdom of God? Had He not promised to all who had left aught for His sake a hundredfold in this life, and a part in His kingdom? And had He not given to the twelve the special promise of positions of high honor in His kingdom,—to sit on thrones judgi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Even now He had said that all things written in the prophets concerning Him should be fulfilled. And had not the prophets foretold the glory of the Messiah's reign? In the light of these thoughts, His words in regard to betrayal, persecution, and death seemed vague and shadowy. Whatever difficulties might intervene, they believed that the kingdom was soon to be established." DA 547.3
"그들은 얼마 전에 모든 곳에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느님의 왕국에 앉으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분은 그분을 위해 무엇이든 남긴 모든 사람에게 이생에서 백 배와 그분의 왕국에서 일부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분께서는 열두 지파에게 그분의 왕국에서 높은 영예로운 지위, 즉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특별한 약속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도 그분은 자신에 관해 선지자들에게 기록된 모든 것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메시아의 통치의 영광에 대해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생각에 비추어 볼 때 배신과 박해, 죽음에 관한 주님의 말씀은 막연하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들은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DA 547.3
“John, the son of Zebedee, had been one of the first two disciples who had followed Jesus. He and his brother James had been among the first group who had left all for His service. Gladly they had forsaken home and friends that they might be with Him; they had walked and talked with Him; they had been with Him in the privacy of the home, and in the public assemblies. He had quieted their fears, delivered them from danger, relieved their sufferings, comforted their grief, and with patience and tenderness had taught them, till their hearts seemed linked with His, and in the ardor of their love they longed to be nearest to Him in His kingdom. At every possible opportunity, John took his place next the Saviour, and James longed to be honored with as close connection with Him.” DA 548.1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던 최초의 두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 야고보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첫 번째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집과 친구들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그분과 함께 걷고 이야기했으며, 집안에서나 공적인 모임에서나 주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두려움을 잠재우고, 위험에서 구해 주시고, 고통을 덜어 주시고, 슬픔을 위로해 주셨으며, 인내와 부드러움으로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의 마음이 그분과 하나가 되어 그분의 왕국에서 그분과 가장 가까이 있기를 열렬히 갈망할 때까지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능한 모든 기회에 요한은 구주 다음으로 자리를 잡았고, 야고보는 구주와의 친밀한 관계로 영예를 받기를 갈망했습니다." DA 548.1
“Jesus bears tenderly with them, not rebuking their selfishness in seeking preference above their brethren. He reads their hearts, He knows the depth of their attachment to Him. Their love is not a mere human affection; though defiled by the earthliness of its human channel, it is an outflowing from the fountain of His own redeeming love. He will not rebuke, but deepen and purify. He said, “Are ye able to drink of the cup that I shall drink of, and to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 They recall His mysterious words, pointing to trial and suffering, yet answer confidently, “We are able.” They would count it highest honor to prove their loyalty by sharing all that is to befall their Lord." DA 548.6
"예수님은 형제보다 우대받으려는 그들의 이기심을 꾸짖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품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그분께 대한 그들의 애착의 깊이를 아십니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인간적인 애정이 아닙니다. 비록 인간적인 채널의 세속성에 의해 더럽혀졌지만, 그것은 그분 자신의 구속하는 사랑의 샘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분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더 깊게 하시고 정화하십니다. 그분은 "너희가 내가 마실 잔을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로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시련과 고통을 가리키는 주님의 신비로운 말씀을 떠올리면서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들은 주님께 닥칠 모든 것을 나눔으로써 충성을 증명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깁니다." DA 548.6
“‘Ye shall drink indeed of My cup, and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 He said; before Him a cross instead of a throne, two malefactors His companions at His right hand and His left. John and James were to share with their Master in suffering; the one, first of the brethren to perish with the sword; the other, longest of all to endure toil, and reproach, and persecution.” DA 548.7
"'너희는 참으로 내 잔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고, 그분 앞에는 보좌 대신 십자가가 있었고, 그분의 오른편과 왼편에는 두 명의 악인이 있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과 함께 고난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칼에 죽고, 다른 한 사람은 가장 오래 수고와 모욕과 핍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DA 548.7
“‘But to sit on My right hand, and on My left,’ He continued, ‘is not Mine to give, but it shall be given to them for whom it is prepared of My Father.’ In the kingdom of God, position is not gained through favoritism. It is not earned, nor is it received through an arbitrary bestowal. It is the result of character. The crown and the throne are the tokens of a condition attained; they are the tokens of self-conquest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DA 549.1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들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편애를 통해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임의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격의 결과입니다. 면류관과 보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정복의 증표이며, 획득한 조건의 증표입니다." DA 549.1
“Long afterward, when the disciple had been brought into sympathy with Christ through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the Lord revealed to John what is the condition of nearness in His kingdom. “To him that overcometh,” Christ said, “will I grant to sit with Me in My throne, even as I also overcame, and am set down with My Father in His throne.” “Him that overcometh will I make a pillar in the temple of My God, and he shall go no more out: and I will write upon him the name of My God, ... and I will write upon him My new name.” Revelation 3:21, 12. So Paul the apostle wrote, “I am now ready to be offered,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is at hand. I have fought a good fight, I have finished my course, I have kept the faith: henceforth there is laid up for me a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shall give me at that day.” 2 Timothy 4:6-8. DA 549.2
"한참 후에 제자들이 그분의 고난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와 동정심을 갖게 되었을 때, 주님은 요한에게 그분의 나라에 가까워지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또한 이기고 내 아버지와 함께 내 보좌에 앉은 것같이 나도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을 세우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을 그에게 기록하고 ... 내가 내 새 이름을 그에게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12.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이제 달려갈 준비가 되었으니 나의 떠날 때가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6-8. DA 549.2
“The one who stands nearest to Christ will be he who on earth has drunk most deeply of the spirit of His self-sacrificing love,—love that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1 Corinthians 13:4, 5),—love that moves the disciple, as it moved our Lord, to give all, to live and labor and sacrifice, even unto death, for the saving of humanity. This spirit was made manifest in the life of Paul. He said, ‘For to me to live is Christ;’ for his life revealed Christ to men; ‘and to die is gain,’—gain to Christ; death itself would make manifest the power of His grace, and gather souls to Him. ‘Christ shall be magnified in my body,’ he said, ‘whether it be by life or by death.’ Philippians 1:21, 20. DA 549.3
"그리스도께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사람은 지상에서 그분의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 즉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고, 쉽게 도발하지 않고, 악을 생각하지 않는'(고전 13:4, 5) 사랑, 즉 우리 주님을 감동시킨 것처럼 제자로 하여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살고, 죽기까지 수고하고 희생하게 하는 사랑에 깊이 취한 사람일 것입니다."(1고린도전서 13:5). 이 정신은 바울의 삶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는 '내게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니, 그의 삶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요, 죽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얻는 것이니, 죽음 자체가 그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어 영혼을 주께로 모으는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리라' '살든지 죽든지' 그는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1:21, 20. DA 549.3
Read Mark 10:46-52. How did Bartimaeus react to Jesus’ passing by?
마가복음 10장 46-52을 읽어 보라.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시자 어떻게 반응 했는가?
“And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What wilt thou that I should do unto thee? The blind man said unto him, Lord, that I might receive my sight.” KJV — Mark 10:5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이르되 주여, 내가 시력을 얻게 하옵소서." KJV - 마가복음 10:51
“It is only when the sinner feels the need of a Saviour, that his heart goes after the One who can help him. When Jesus walked among men, it was the sick that wanted a physician. The poor, the afflicted and distressed, followed after him, to receive the help and comfort which they could not find elsewhere. Blind Bartimaeus is waiting by the wayside; he has waited long to meet Christ. Throngs of people who possess their sight are passing to and fro, but they have no desire to see Jesus. One look of faith would touch his heart of love, and bring them the blessings of his grace; but they know not the sickness and poverty of their souls, and they feel no need of Christ. Not so with the poor blind man. His only hope is in Jesus. As he waits and watches, he hears the tread of many feet, and he eagerly inquires, What means this noise of travel? The by-standers answer that “Jesus of Nazareth passeth by.” With the eagerness of intense desire, he cries, “Jesus, thou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They try to silence him, but he cries the more vehemently, “Thou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This appeal is heard. His persevering faith is rewarded. Not only is physical sight restored, but the eyes of his understanding are opened. In Christ he sees his Redeemer, and the Sun of righteousness shines into his soul. All who feel their need of Christ as did blind Bartimaeus, and who will be as earnest and determined as he was, will, like him, receive the blessing which they crave. RH March 15, 1887, par. 3
"죄인이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낄 때 비로소 그의 마음은 그를 도울 수 있는 분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 사이를 걸으셨을 때 의사를 원했던 것은 병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도움과 위로를 받기 위해 그분을 따랐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길가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시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지나가고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길 한 번이면 그분의 사랑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은혜의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그들은 영혼의 병과 가난을 알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불쌍한 맹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뿐입니다. 그는 기다리며 지켜보다가 많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간절히 묻습니다."이 여행 소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강렬한 열망의 간절함으로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은 그를 침묵시키려 하지만 그는 더욱 격렬하게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이 호소가 들립니다. 그의 끈질긴 믿음은 보상을 받습니다. 육체적 시력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지각의 눈도 열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자신의 구속자를 보게 되고 의의 태양이 그의 영혼에 비춥니다. 눈먼 바르티매오처럼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와 같이 간절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와 같이 갈망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RH 3월 15일, 1887, 파. 3
“The afflicted, suffering ones who sought Christ as their helper, were charmed with the divine perfection, the beauty of holiness, that shone forth in his character. But the Pharisees could see no beauty in him that they should desire him. His simple attire, and humble life, devoid of outward show, rendered him to them as a root out of dry ground.” RH March 15, 1887, par. 4
“그리스도를 도우미로 찾았던 고난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분의 성품에서 빛나는 신성한 완전성, 거룩함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에게서 그들이 갈망해야 할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소박한 옷차림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는 겸손한 삶은 그들에게 그를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RH 3월 15일, 1887, par. 4
“Those who receive Christ by faith will receive also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72 SD 126.5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능력도 받게 될 것이다."72 SD 126.5
To be a Christian in God’s sight you must never praise yourself, but praise God and His goodness. Never boast of your own interests and achievements, but boast of God’s. Never try to promote your business, but always try to promote God’s. Never pray for light to know what to do, and where to go in order that your business, your interests prosper, but rather pray for light that God help you do the thing or go to the place where you would best serve His cause, that He lead you and teach you how to advance His kingdom. Then, and then only, will you find that you never go wrong! Any motive other than this will take you where God does not want you, and where you will have to carry your own burden independent of Him.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자신을 칭찬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업적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자랑하세요. 자신의 사업을 홍보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사업을 홍보하십시오. 여러분의 사업과 이익이 번영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빛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시고, 그분의 대의를 위해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곳으로 가도록 도와주시고,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그분의 왕국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도록 빛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만 결코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며, 그분과 무관하게 자신의 짐을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When things go contrary to one’s will and way today, most Christians give credit to the Devil. Only when things go according to their liking do they give credit to God! Balaam, too, was happy when the way opened for him to go to Balak, but when the angel of the Lord blocked the road he was traveling on, then Balaam, became as mad as a dog and smote the ass.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일이 자신의 뜻과 방식에 어긋날 때 마귀의 탓으로 돌립니다. 일이 자기 뜻대로 될 때만 하나님께 공을 돌립니다! 발람도 발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때 기뻐했지만, 주님의 천사가 가던 길을 막자 발람은 개처럼 화를 내며 나귀를 치고 말았습니다.
No, nothing but you yourself can defeat God’s plans for you. Be it your friends or your enemies, be it beasts or kings, you will find them all unwittingly or wittingly working for your good rather than for your harm if you are doing God’s bidding. What a rich resource Heaven is! And who knows it!
아니요, 여러분 자신 외에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친구든 적이든, 짐승이든 왕이든,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면 그들은 모두 자신도 모르게 또는 지혜롭게 당신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당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참으로 풍부한 자원입니다! 그리고 누가 알겠습니까!
Remember now, that whatever may stand in your way, be it the Red Sea or the River Jordan, be it a mountain or be it a desert, it shall become your very stepping stone.
홍해든 요단강이든, 산이든 사막이든, 무엇이든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리라는 것을 이제 기억하세요.
Such as this is the righteousness of the Lord, and you can have it at the cost of your own righteousness. Then you will find the Lord’s ways as much higher than yours as the Heaven is higher than the earth. When this happens, then only you will understandingly say, “The Lord our Righteousness.”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의이며, 여러분은 자신의 의를 희생해서라도 주님의 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주님의 길이 여러분의 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직 여러분만이 “주님은 우리의 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Thou wilt keep him in perfect peace, whose mind is stayed on Thee: because he trusteth in Thee. Trust ye in the Lord for ever: for in the Lord JEHOVAH is everlasting strength: for He bringeth down them that dwell on high; the lofty city, He layeth it low; He layeth it low, even to the ground; He bringeth it even to the dust. The foot shall tread it down, even the feet of the poor, and the steps of the needy." Isa. 26:3-6.
“주께서 그를 온전한 평안으로 지키시리니 그의 마음이 주께 머물러 있음은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여호와께는 영원한 힘이 있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높은 곳에 사는 자를 내리시며 높은 성읍을 낮추시며 땅에 낮추시며 흙에까지 내리시리로다. 발이 그것을 밟을 것이니 곧 가난한 자의 발과 궁핍한 자의 발걸음이라.” 이사야 2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