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when he had called the people unto him with his disciples also, he said unto them, Whosoever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KJV — Mark 8:34
"또 제자들과 함께 사람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KJV - 마가복음 8:34
“From the chosen companions of His ministry the scenes that lay before Him were as yet hidden; but the time was near when they must behold His agony. They must see Him whom they had loved and trusted, delivered into the hands of His enemies, and hung upon the cross of Calvary. Soon He must leave them to face the world without the comfort of His visible presence. He knew how bitter hate and unbelief would persecute them, and He desired to prepare them for their trials.” DA 410.3
"그분의 사역을 위해 선택된 제자들에게는 아직 그분 앞에 놓인 장면이 숨겨져 있었지만, 그들이 그분의 고난을 바라봐야 할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신뢰했던 그분이 원수들의 손에 넘겨져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곧 그분은 눈에 보이는 임재의 위로 없이 제자들을 세상과 마주하도록 떠나셔야 합니다. 그분은 증오와 불신이 얼마나 그들을 박해할지 아셨고, 그들이 시련에 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DA 410.3
“He was about to tell them of the suffering that awaited Him. But first He went away alone, and prayed that their hearts might be prepared to receive His words. Upon joining them, He did not at once communicate that which He desired to impart. Before doing this, He gave them an opportunity of confessing their faith in Him that they might be strengthened for the coming trial. He asked, ‘Whom do men say that I the Son of man am?’” DA 411.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통에 대해 말씀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혼자 가셔서 그들의 마음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들과 합류하신 후, 그분은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한꺼번에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전에 그분은 다가올 시련에 대비하여 그들이 강건해질 수 있도록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나를 인자라고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DA 411.2
“Jesus now put a second question, relating to the disciples themselves: ‘But whom say ye that I am?’ Peter answered,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DA 411.4
“Jesus answered Peter, saying, ‘Blessed art thou, Simon Bar-jona: for flesh and blood hath not revealed it unto thee, but My Father which is in heaven.’” DA 412.2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과 관련하여 두 번째 질문을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DA 411.4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 베드로야, 너는 복이 있도다, 이는 혈육이 네게 이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로다' 하시니라." DA 412.2
“After Peter's confession, Jesus charged the disciples to tell no man that He was the Christ. This charge was given because of the determined opposition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More than this, the people, and even the disciples, had so false a conception of the Messiah that a public announcement of Him would give them no true idea of His character or His work. But day by day He was revealing Himself to them as the Saviour, and thus He desired to give them a true conception of Him as the Messiah.” DA 414.4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단호한 반대 때문에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물론 제자들조차도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공개적인 발표는 그분의 성품이나 그분의 사역에 대한 진정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날마다 자신을 구세주로서 그들에게 계시하셨고, 따라서 그분은 그들에게 메시야로서의 참된 개념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DA 414.4
Read Mark 8:22-30. Why did it take Jesus two touches to heal the blind man, and what lessons came out of this account?
마가복음 8:22-3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기 위해 두 번 만지셔야 했 던 이유는 무엇이며,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As Jesus passed by, He saw a man which was blind from his birth. And His disciples asked Him, saying, Master, who did sin,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Jesus answered, Neither hath this man sinned, nor his parents: but that the works of God should be made manifest in him.... When He had thus spoken, He spat on the ground, and made clay of the spittle, and He anointed the eyes of the blind man with the clay, and said unto him,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which is by interpretation, Sent). He went his way therefore, and washed, and came seeing.’” DA 470.3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한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이 사람이나 그 부모 중 누가 죄를 지었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도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그에게서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땅에 침을 뱉으시고 그 침으로 진흙을 만드사 그 진흙으로 소경의 눈에 기름을 부으시고 이르시되, 가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해석상, 보내심). 그러므로 그는 자기 길을 가서 씻고 와서 보았더라." DA 470.3
“The belief of the Jews in regard to the relation of sin and suffering was held by Christ's disciples. While Jesus corrected their error, He did not explain the cause of the man's affliction, but told them what would be the result. Because of it the works of God would be made manifest. “As long as I am in the world,”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Then having anointed the eyes of the blind man, He sent him to wash in the pool of Siloam, and the man's sight was restored. Thus Jesus answered the question of the disciples in a practical way, as He usually answered questions put to Him from curiosity. The disciples were not called upon to discuss the question as to who had sinned or had not sinned, but to understand the power and mercy of God in giving sight to the blind. It was evident that there was no healing virtue in the clay, or in the pool wherein the blind man was sent to wash, but that the virtue was in Christ. DA 471.4
"죄와 고통의 관계에 대한 유대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면서 그 사람이 고난을 당한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의 눈에 기름을 부으시고 그를 실로암 못에 씻으라고 보내셨더니 그 사람의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소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에 대답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의 질문에 실제적인 방식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않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소경에게 시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이해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진흙이나 소경이 씻으라고 보내진 못에는 치유하는 미덕이 없었지만, 그 미덕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DA 471.4
“The Pharisees could not but be astonished at the cure. Yet they were more than ever filled with hatred; for the miracle had been performed on the Sabbath day." DA 471.5
“The neighbors of the young man, and those who knew him before in his blindness, said, “Is not this he that sat and begged?” They looked upon him with doubt; for when his eyes were opened, his countenance was changed and brightened, and he appeared like another man. From one to another the question passed. Some said, “This is he;” others, “‘He is like him.’ But he who had received the great blessing settled the question by saying, ‘I am he.’ He then told them of Jesus, and by what means he had been healed, and they inquired, ‘Where is He? He said, I know not.’” DA 471.6
"바리새인들은 그 치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DA 471.5
"그 청년의 이웃들과 그가 소경이 되기 전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하였다. 그들은 의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는데, 눈을 뜨자 그의 얼굴이 변하고 밝아져서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넘어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바로 그분이다."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는 그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큰 축복을 받은 그는 '내가 그분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의문을 해결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그가 어떤 방법으로 고침을 받았는지를 말했고, 그들은 '그분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471.6
Read Mark 8:31-38. What does Jesus teach here about the cost of following Christ?
마가복음 8:31-38절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무엇이 필요하 다고 가르치시는가?
“‘From that time forth began Jesus to show unto His disciples, how that He must go unto Jerusalem, and suffer many things of the elders and chief priests and scribes, and be killed, and be raised again the third day.’ DA 415.2
"'그 때부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보이시기 시작하셨으니'. DA 415.2
“Speechless with grief and amazement, the disciples listened. Christ had accepted Peter's acknowledgment of Him as the Son of God; and now His words pointing to His suffering and death seemed incomprehensible. Peter could not keep silent. He laid hold upon his Master, as if to draw Him back from His impending doom, exclaiming, ‘Be it far from Thee, Lord: this shall not be unto Thee.’” DA 415.3
"제자들은 슬픔과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잃은 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 것을 받아들이셨고, 이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그분의 말씀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임박한 운명에서 주님을 끌어내리려는 듯이 주님을 붙잡고 '주님, 주님에게서 멀어지소서, 주님에게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DA 415.3
“Satan was trying to discourage Jesus, and turn Him from His mission; and Peter, in his blind love, was giving voice to the temptation. The prince of evil was the author of the thought. His instigation was behind that impulsive appeal. In the wilderness, Satan had offered Christ the dominion of the world on condition of forsaking the path of humiliation and sacrifice. Now he was presenting the same temptation to the disciple of Christ. He was seeking to fix Peter's gaze upon the earthly glory, that he might not behold the cross to which Jesus desired to turn his eyes. And through Peter, Satan was again pressing the temptation upon Jesus. But the Saviour heeded it not; His thought was for His disciple. Satan had interposed between Peter and his Master, that the heart of the disciple might not be touched at the vision of Christ's humiliation for him. The words of Christ were spoken, not to Peter, but to the one who was trying to separate him from his Redeemer. “Get thee behind Me, Satan.” No longer interpose between Me and My erring servant. Let Me come face to face with Peter, that I may reveal to him the mystery of My love. DA 416.1
"사탄은 예수님을 낙담시키고 그분의 사명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했고, 베드로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그 유혹에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악의 왕자는 그 생각을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충동적인 호소의 배후에는 그의 선동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은 굴욕과 희생의 길을 버리는 조건으로 그리스도에게 세상의 통치를 제안했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에게도 동일한 유혹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시선을 지상의 영광에 고정시켜 예수님이 눈을 돌리고자 하는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베드로를 통해 다시 예수님께 유혹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구세주께서는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고, 그분의 생각은 제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베드로와 스승 사이에 끼어들어 제자의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수치를 당하시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베드로가 아니라 그를 구속주에게서 떼어놓으려는 자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더 이상 나와 나의 잘못한 종 사이에 끼어들지 마라. 내가 베드로와 대면하여 내 사랑의 신비를 그에게 드러내게 하여라. DA 416.1
“It was to Peter a bitter lesson, and one which he learned but slowly, that the path of Christ on earth lay through agony and humiliation. The disciple shrank from fellowship with his Lord in suffering. But in the heat of the furnace fire he was to learn its blessing. Long afterward, when his active form was bowed with the burden of years and labors, he wrote, “Beloved, think it not strange concerning the fiery trial which is to try you, as though some strange thing happened unto you: but rejoice, inasmuch as ye are partakers of Christ's sufferings; that, when His glory shall be revealed, ye may be glad also with exceeding joy.” 1 Peter 4:12, 13. DA 416.2
"베드로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길은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지만 쓰라린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자는 고통 속에서 주님과의 교제에서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광로 불의 열기 속에서 그 축복을 배워야 했습니다. 오래 후, 그의 활동적인 모습이 세월과 수고의 짐으로 고개를 숙였을 때 그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또한 더한 즐거움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썼습니다. 베드로전서 4:12, 13. DA 416.2
“Jesus now explained to His disciples that His own life of self-abnegation was an example of what theirs should be. Calling about Him, with the disciples, the people who had been lingering near, He said,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The cross was associated with the power of Rome. It was the instrument of the most cruel and humiliating form of death. The lowest criminals were required to bear the cross to the place of execution; and often as it was about to be laid upon their shoulders, they resisted with desperate violence, until they were overpowered, and the instrument of torture was bound upon them. But Jesus bade His followers take up the cross and bear it after Him. To the disciples His words, though dimly comprehended, pointed to their submission to the most bitter humiliation,—submission even unto death for the sake of Christ. No more complete self-surrender could the Saviour's words have pictured. But all this He had accepted for them. Jesus did not count heaven a place to be desired while we were lost. He left the heavenly courts for a life of reproach and insult, and a death of shame. He who was rich in heaven's priceless treasure, became poor, that through His poverty we might be rich. We are to follow in the path He trod.” DA 416.3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자신의 자기 비움의 삶이 제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보기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머물러 있던 제자들과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권력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굴욕적인 형태의 죽음의 도구였습니다. 가장 낮은 범죄자들은 처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했고, 종종 십자가가 그들의 어깨 위에 놓이려고 할 때 필사적인 폭력으로 저항하다가 제압당하고 고문의 도구가 그들에게 묶일 때까지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라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분의 말씀은 비록 희미하게 이해되기는 했지만 가장 참혹한 굴욕, 즉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까지도 복종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구세주의 말씀에서 그보다 더 완전한 자기 항복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길을 잃은 동안 천국을 갈망하는 곳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욕과 모욕의 삶, 수치스러운 죽음을 위해 하늘의 법정을 떠나셨습니다. 하늘의 값진 보물로 부요하신 그분은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의 가난을 통해 우리가 부요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DA 416.3
“Love for souls for whom Christ died means crucifixion of self. He who is a child of God should henceforth look upon himself as a link in the chain let down to save the world, one with Christ in His plan of mercy, going forth with Him to seek and save the lost. The Christian is ever to realize that he has consecrated himself to God, and that in character he is to reveal Christ to the world. The self-sacrifice, the sympathy, the love, manifested in the life of Christ are to reappear in the life of the worker for God”. DA 417.1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영혼에 대한 사랑은 자아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은 이제부터 자신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진 사슬의 고리로서, 그분의 자비 계획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잃어버린 자를 찾고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나아가는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으며, 성품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난 자기 희생, 동정, 사랑은 하나님을 위한 일꾼의 삶에서 다시 나타나야 합니다." DA 417.1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shall lose his life for My sake and the gospel's, the same shall save it.’ Selfishness is death. No organ of the body could live should it confine its service to itself. The heart, failing to send its lifeblood to the hand and the head, would quickly lose its power. As our lifeblood, so is the love of Christ diffused through every part of His mystical body. We are members one of another, and the soul that refuses to impart will perish. And “what is a man profited,” said Jesus, ‘if he shall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or 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DA 417.2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기심은 죽음입니다. 신체의 어떤 기관도 자기 자신에게만 봉사한다면 살 수 없습니다. 심장이 손과 머리로 생명력을 보내지 못하면 금방 힘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줄인 심장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랑도 그분의 신비로운 몸의 모든 부분에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지체이며, 전하기를 거부하는 영혼은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만일 제 영혼과 바꾸어 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417.2
Read Mark 9:1-13. What did Peter, James, and John see one night with Jesus?
마가복음 9:1-13을 읽어 보라. 그날 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무엇을 보았는가?
“Evening is drawing on as Jesus calls to His side three of His disciples, Peter, James, and John, and leads them across the fields, and far up a rugged path, to a lonely mountainside. The Saviour and His disciples have spent the day in traveling and teaching, and the mountain climb adds to their weariness. Christ has lifted burdens from mind and body of many sufferers; He has sent the thrill of life through their enfeebled frames; but He also is compassed with humanity, and with His disciples He is wearied with the ascent.” DA 419.1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불러 들판을 가로질러 험준한 길을 따라 외로운 산 중턱으로 인도하실 때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구세주와 제자들은 하루 종일 여행과 가르침으로 지쳐 있었고, 산을 오르면서 피곤함이 더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고통받는 이들의 몸과 마음의 짐을 덜어 주셨고, 그들의 쇠약해진 틀을 통해 삶의 짜릿함을 보내 주셨지만, 그분은 또한 인류와 함께 동행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오르막길에 지치셨습니다." DA 419.1
“Presently Christ tells them that they are now to go no farther. Stepping a little aside from them, the Man of Sorrows pours out His supplications with strong crying and tears. He prays for strength to endure the test in behalf of humanity. He must Himself gain a fresh hold on Omnipotence, for only thus can He contemplate the future. And He pours out His heart longings for His disciples, that in the hour of the power of darkness their faith may not fail. The dew is heavy upon His bowed form, but He heeds it not. The shadows of night gather thickly about Him, but He regards not their gloom. So the hours pass slowly by. At first the disciples unite their prayers with His in sincere devotion; but after a time they are overcome with weariness, and, even while trying to retain their interest in the scene, they fall asleep. Jesus has told them of His sufferings; He has taken them with Him that they might unite with Him in prayer; even now He is praying for them. The Saviour has seen the gloom of His disciples, and has longed to lighten their grief by an assurance that their faith has not been in vain. Not all, even of the twelve, can receive the revelation He desires to give. Only the three who are to witness His anguish in Gethsemane have been chosen to be with Him on the mount. Now the burden of His prayer is that they may be given a manifestation of the glory He had with the Father before the world was, that His kingdom may be revealed to human eyes, and that His disciples may be strengthened to behold it. He pleads that they may witness a manifestation of His divinity that will comfort them in the hour of His supreme agony with the knowledge that He is of a surety the Son of God and that His shameful death is a part of the plan of redemption.” DA 419.4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이제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슬픔의 사람은 그들로부터 조금 물러나서 강한 울음과 눈물로 간청을 쏟아 붓습니다. 그분은 인류를 대신하여 시험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분 자신은 전능함을 새롭게 붙잡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그분께서 미래를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어둠의 권능의 시간에 그들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도록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부어 주 십니다. 그분의 고개 숙인 모습에 이슬이 무겁지만 그분은 그것을 듣지 않으 십니다. 밤의 그림자가 그분 주위에 짙게 드리워지지만 그분은 그들의 어둠을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렇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갑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진지한 헌신으로 그분과 기도를 합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곤에 지쳐서 그 장면에 관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잠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들이 기도로 그분과 일치할 수 있도록 그들을 데려가셨으며, 지금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구세주께서는 제자들의 어둠을 보셨고, 그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으로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기를 갈망하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도 모두가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겟세마네에서 그분의 고뇌를 목격할 세 사람만이 선택되어 산 위에서 그분과 함께했습니다. 이제 그분의 기도의 부담은 그분께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하셨던 영광의 현현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그분의 왕국이 인간의 눈에 드러나며,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힘을 얻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과 그분의 수치스러운 죽음이 구속 계획의 일부라는 지식으로 그분의 최고의 고통의 시간에 그들을 위로할 그분의 신성의 현현을 목격할 수 있기를 간구하십니다." DA 419.4
“His prayer is heard. While He is bowed in lowliness upon the stony ground, suddenly the heavens open, the golden gates of the city of God are thrown wide, and holy radiance descends upon the mount, enshrouding the Saviour's form. Divinity from within flashes through humanity, and meets the glory coming from above. Arising from His prostrate position, Christ stands in godlike majesty. The soul agony is gone. His countenance now shines “as the sun,” and His garments are “white as the light.” DA 421.1
"그분의 기도가 들리셨다. 그분이 돌무더기 땅에서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시는 동안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성의 금빛 문이 활짝 열리며 거룩한 광채가 산 위로 내려와 구세주의 모습을 감싸고 있습니다. 내면의 신성이 인성을 통해 번쩍이며 위로부터 오는 영광과 만납니다.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신 그리스도는 신과 같은 위엄으로 서 계십니다. 영혼의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이제 "태양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희게" 빛납니다. DA 421.1
“The disciples, awaking, behold the flood of glory that illuminates the mount. In fear and amazement they gaze upon the radiant form of their Master. As they become able to endure the wondrous light, they see that Jesus is not alone. Beside Him are two heavenly beings, in close converse with Him. They are Moses, who upon Sinai had talked with God; and Elijah, to whom the high privilege was given—granted to but one other of the sons of Adam—never to come under the power of death.” DA 421.2
"제자들은 깨어나 산을 비추는 영광의 광채를 바라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스승의 빛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놀라운 빛을 견딜 수 있게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 곁에는 두 천상의 존재가 그분과 긴밀하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했던 모세와 아담의 아들 중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된 높은 특권이 주어졌던 엘리야로, 결코 사망의 권세 아래 있지 않습니다." DA 421.2
“Jesus was clothed with the light of heaven, as He will appear when He shall come ‘the second time without sin unto salvation.’ For He will come “in the glory of His Father with the holy angels.” Hebrews 9:28; Mark 8:38. The Saviour's promise to the disciples was now fulfilled. Upon the mount the future kingdom of glory was represented in miniature,—Christ the King, Moses a representative of the risen saints, and Elijah of the translated ones." DA 421.4
"예수님은 하늘의 빛으로 옷을 입으셨는데, 이는 '죄 없이 구원에 이르는 두 번째 때' 오실 때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28; 마가복음 8:38. 제자들에게 하신 구세주의 약속이 이제 성취되었습니다. 산 위에는 미래의 영광의 왕국, 즉 왕이신 그리스도, 부활한 성도들의 대표인 모세, 번역된 성도들의 대표인 엘리야가 미니어처로 표현되었습니다." DA 421.4
“The disciples do not yet comprehend the scene; but they rejoice that the patient Teacher, the meek and lowly One, who has wandered to and fro a helpless stranger, is honored by the favored ones of heaven. They believe that Elijah has come to announce the Messiah's reign, and that the kingdom of Christ is about to be set up on the earth. The memory of their fear and disappointment they would banish forever. Here, where the glory of God is revealed, they long to tarry. Peter exclaims, “Master,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and let us make three tabernacles; one for Thee, and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as.” The disciples are confident that Moses and Elijah have been sent to protect their Master, and to establish His authority as king.” DA 422.1
"제자들은 아직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내심이 많으신 선생님, 온유하고 낮은 분, 힘없는 나그네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시던 분이 하늘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메시아의 통치를 선포하러 왔으며 그리스도의 왕국이 곧 이 땅에 세워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려움과 실망의 기억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이곳에서 그들은 오래 머물고 싶어 합니다.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장막을 세 개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아스를 위하여 하소서"라고 외칩니다.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의 스승을 보호하고 그분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DA 422.1
Read Mark 9:30-41. What is different about Jesus’ second prediction about His death and resurrection (compare with Mark 8:31)? Also, what do the disciples argue about, and what instruction does Jesus give?
마가복음 9:30-4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언은 마가 복음 8:31과 무엇이 다른가? 또 제자들은 무엇에 대해 논쟁하였으며, 예수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가?
“On the journey through Galilee, Christ had again tried to prepare the minds of His disciples for the scenes before Him. He told them that He was to go up to Jerusalem to be put to death and to rise again. And He added the strange and solemn announcement that He was to be betrayed into the hands of His enemies. The disciples did not even now comprehend His words. Although the shadow of a great sorrow fell upon them, a spirit of rivalry found a place in their hearts. They disputed among themselves which should be accounted greatest in the kingdom. This strife they thought to conceal from Jesus, and they did not, as usual, press close to His side, but loitered behind, so that He was in advance of them as they entered Capernaum. Jesus read their thoughts, and He longed to counsel and instruct them. But for this He awaited a quiet hour, when their hearts should be open to receive His words.” DA 432.2
"갈릴리를 지나는 여정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한 번 제자들의 마음을 그 앞에 펼쳐질 장면에 대비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원수들의 손에 배신당할 것이라는 이상하고 엄숙한 발표를 덧붙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도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큰 슬픔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워졌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경쟁의 영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은 왕국에서 누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들은 이 다툼을 예수님께 숨기려고 생각했고, 평소처럼 예수님 곁으로 가까이 가지 않고 뒤에서 서성거렸기 때문에 가버나움에 들어올 때 예수님께서 그들보다 앞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읽으셨고, 그들에게 조언하고 가르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그분은 그들의 마음이 열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기다리셨다." DA 432.2
“When Christ and the disciples were alone in the house, while Peter was gone to the sea, Jesus called the others to Him, and asked, “What was it that ye disputed among yourselves by the way?” The presence of Jesus, and His question, put the matter in an entirely different light from that in which it had appeared to them while they were contending by the way. Shame and self-condemnation kept them silent. Jesus had told them that He was to die for their sake, and their selfish ambition was in painful contrast to His unselfish love.” DA 434.5
"베드로가 바다로 간 사이에 예수님과 제자들만 집에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을 불러서 "너희가 길에서 서로 다투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임재와 그분의 질문은 그들이 길에서 다투는 동안 그들에게 보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수치심과 자기 정죄가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죽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의 이기적인 야망은 그분의 이타적인 사랑과 고통스럽게 대조되었습니다.” DA 434.5
“When Jesus told them that He was to be put to death and to rise again, He was trying to draw them into conversation in regard to the great test of their faith. Had they been ready to receive what He desired to make known to them, they would have been saved bitter anguish and despair. His words would have brought consolation in the hour of bereavement and disappointment. But although He had spoken so plainly of what awaited Him, His mention of the fact that He was soon to go to Jerusalem again kindled their hope that the kingdom was about to be set up. This had led to questioning as to who should fill the highest offices. On Peter's return from the sea, the disciples told him of the Saviour's question, and at last one ventured to ask Jesus,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DA 435.1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믿음의 큰 시험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분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쓰라린 고뇌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사별과 실망의 시간에 위로를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기다리는 일에 대해 그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곧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언급은 곧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로 인해 누가 최고 직책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베드로가 바다에서 돌아오자 제자들은 구세주의 질문에 대해 이야기했고, 마침내 한 제자가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DA 435.1
“The Saviour gathered His disciples about Him, and said to them, “If any man desire to be first, the same shall be last of all, and servant of all.” There was in these words a solemnity and impressiveness which the disciples were far from comprehending. That which Christ discerned they could not see. They did not understand the nature of Christ's kingdom, and this ignorance was the apparent cause of their contention. But the real cause lay deeper. By explaining the nature of the kingdom, Christ might for the time have quelled their strife; but this would not have touched the underlying cause. Even after they had received the fullest knowledge, any question of precedence might have renewed the trouble. Thus disaster would have been brought to the church after Christ's departure. The strife for the highest place was the outworking of that same spirit which was the beginning of the great controversy in the worlds above, and which had brought Christ from heaven to die. There rose up before Him a vision of Lucifer, the “son of the morning,” in glory surpassing all the angels that surround the throne, and united in closest ties to the Son of God. Lucifer had said, “I will be like the Most High” (Isaiah 14:12, 14); and the desire for self-exaltation had brought strife into the heavenly courts, and had banished a multitude of the hosts of God. Had Lucifer really desired to be like the Most High, he would never have deserted his appointed place in heaven; for the spirit of the Most High is manifested in unselfish ministry. Lucifer desired God's power, but not His character. He sought for himself the highest place, and every being who is actuated by his spirit will do the same. Thus alienation, discord, and strife will be inevitable. Dominion becomes the prize of the strongest. The kingdom of Satan is a kingdom of force; every individual regards every other as an obstacle in the way of his own advancement, or a steppingstone on which he himself may climb to a higher place.” DA 435.2
"구주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누구든지 꼴찌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엄숙함과 감동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분별하신 것을 제자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러한 무지가 그들의 다툼의 명백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더 깊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왕국의 본질을 설명함으로써 당장은 그들의 분쟁을 잠재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건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완전한 지식을 얻은 후에도 우선 순위에 대한 질문은 문제를 새롭게 일으켰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후 교회에 재앙이 닥쳤을 것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은 위 세상에서 큰 분쟁의 시작이었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죽게 했던 바로 그 영의 발로였습니다. 그분 앞에 "아침의 아들"인 루시퍼가 보좌를 둘러싼 모든 천사들을 능가하는 영광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가장 가까운 관계로 연합된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루시퍼는 "나는 지존자와 같이 되리라"(이사야 14:12, 14)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욕망은 하늘 궁정에 분쟁을 가져왔고 수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추방했습니다. 루시퍼가 정말로 지극히 높으신 분처럼 되기를 원했다면 하늘에서 정해진 자리를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영은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권능을 원했지만 그분의 성품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가장 높은 곳을 추구했으며, 그의 영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존재는 똑같이 할 것입니다. 따라서 소외, 불화, 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배는 가장 강한 자의 상이됩니다. 사탄의 왕국은 힘의 왕국입니다. 모든 개인은 다른 모든 사람을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또는 자신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있는 디딤돌로 간주합니다." DA 435.2
“Very tenderly, yet with solemn emphasis, Jesus tried to correct the evil. He showed what is the principle that bears sway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in what true greatness consists, as estimated by the standard of the courts above. Those who were actuated by pride and love of distinction were thinking of themselves, and of the rewards they were to have, rather than how they were to render back to God the gifts they had received. They would have no place in the kingdom of heaven, for they were identified with the ranks of Satan." DA 436.2
"예수님은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엄숙하게 악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나라에서 흔들리는 원리가 무엇이며, 위 법정의 표준에 따라 참된 위대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교만과 구별되는 것에 대한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어떻게 돌려드릴지 생각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들이 받을 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계급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DA 436.2
“Before honor is humility. To fill a high place before men, Heaven chooses the worker who, like John the Baptist, takes a lowly place before God. The most childlike disciple is the most efficient in labor for God. The heavenly intelligences can co-operate with him who is seeking, not to exalt self, but to save souls. He who feels most deeply his need of divine aid will plead for it; and the Holy Spirit will give unto him glimpses of Jesus that will strengthen and uplift the soul. From communion with Christ he will go forth to work for those who are perishing in their sins. He is anointed for his mission; and he succeeds where many of the learned and intellectually wise would fail.” DA 436.3
"명예보다 먼저 겸손이 있습니다. 하늘은 사람 앞에서 높은 자리를 채우기 위해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꾼을 선택하십니다. 가장 어린아이 같은 제자가 하나님을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지성들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신성한 도움의 필요성을 가장 깊이 느끼는 사람은 그것을 간구할 것이며, 성령은 그에게 영혼을 강화하고 고양시킬 예수님을 엿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 그는 죄로 인해 멸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러 나갈 것입니다. 그는 사명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많은 학식과 지적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이 실패하는 곳에서 성공합니다." DA 436.3
Read Mark 9:42-50. What ties the teachings of Jesus together in this passage?
마가복음 9장 42-50절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
“It was not enough for the disciples of Jesus to be instructed as to the nature of His kingdom. What they needed was a change of heart that would bring them into harmony with its principles. Calling a little child to Him, Jesus set him in the midst of them; then tenderly folding the little one in His arms He said, “Except ye be converted, and become as little children, ye shall 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The simplicity, the self-forgetfulness, and the confiding love of a little child are the attributes that Heaven values. These are the characteristics of real greatness.” DA 437.1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왕국의 본질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원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그 어린아이를 부드럽게 품에 안으시며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단순함,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겸손함, 고백하는 사랑은 천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속성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대함의 특징입니다." DA 437.1
“The Saviour's words awakened in the disciples a feeling of self-distrust. No one had been specially pointed out in the reply; but John was led to question whether in one case his action had been right. With the spirit of a child he laid the matter before Jesus. “Master,” he said, “we saw one casting out devils in Thy name, and he followeth not us: and we forbade him, because he followeth not us.” DA 437.5
"구세주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자기 불신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특별히 지적받은 사람은 없었지만 요한은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을 보았사오나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니 우리가 금하였사오니 이는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DA 437.5
“James and John had thought that in checking this man they had had in view their Lord's honor; they began to see that they were jealous for their own. They acknowledged their error, and accepted the reproof of Jesus, “Forbid him not: for there is no man which shall do a miracle in My name, that can lightly speak evil of Me.” None who showed themselves in any way friendly to Christ were to be repulsed. There were many who had been deeply moved by the character and the work of Christ, and whose hearts were opening to Him in faith; and the disciples, who could not read motives, must be careful not to discourage these souls. When Jesus was no longer personally among them, and the work was left in their hands, they must not indulge a narrow, exclusive spirit, but manifest the same far-reaching sympathy which they had seen in their Master.” DA 437.6
"야고보와 요한은 이 사람을 견제하면서 주님의 명예를 생각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들이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를 금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며 나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깊은 감동을 받고 믿음으로 그분께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동기를 읽을 수 없었던 제자들은 이런 영혼들을 낙담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더 이상 개인적으로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고 그 사업이 그들의 손에 맡겨졌을 때, 그들은 편협하고 배타적인 정신에 빠져서는 안 되며, 스승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광범위한 동정심을 나타내야 한다.” DA 437.6
“The fact that one does not in all things conform to our personal ideas or opinions will not justify us in forbidding him to labor for God. Christ is the Great Teacher; we are not to judge or to command, but in humility each is to sit at the feet of Jesus, and learn of Him. Every soul whom God has made willing is a channel through which Christ will reveal His pardoning love. How careful we should be lest we discourage one of God's light bearers, and thus intercept the rays that He would have shine to the world!” DA 438.1
"어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스승이시며, 우리는 판단하거나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택하신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드러내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한 사람을 낙담시켜 그분이 세상에 비추실 광선을 가로채지 않도록 우리는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 DA 438.1
“Harshness or coldness shown by a disciple toward one whom Christ was drawing—such an act as that of John in forbidding one to work miracles in Christ's name—might result in turning the feet into the path of the enemy, and causing the loss of a soul. Rather than for one to do this, said Jesus, “it is better for him that a millstone were hanged about his neck, and he were cast into the sea.” And He added, “If thy hand cause thee to stumble, cut it off: it is good for thee to enter into life maimed, rather than having thy two hands to go into hell, into the unquenchable fire. And if thy foot cause thee to stumble, cut it off: it is good for thee to enter into life halt, rather than having thy two feet to be cast into hell.” Mark 9:43-45, R. V. DA 438.2
"제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을 금지한 요한과 같은 행동처럼,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사람에게 가혹하거나 냉정하게 대하면 그 발을 적의 길로 돌려 한 영혼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과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로 사는 것이 네게 나으니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만일 네 발이 너로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네 두 발을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불구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네게 나으니라." 마가복음 9:43-45, R. V. DA 438.2
“Why this earnest language, than which none can be stronger? Because “the Son of man is co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 Shall His disciples show less regard for the souls of their fellow men than the Majesty of heaven has shown? Every soul has cost an infinite price, and how terrible is the sin of turning one soul away from Christ, so that for him the Saviour's love and humiliation and agony shall have been in vain.” DA 438.3
"왜 이보다 더 간절한 언어는 없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하늘의 위엄이 보여주신 것보다 동료 인간의 영혼을 덜 존중해야합니까? 모든 영혼은 무한한 대가를 치렀으며, 한 영혼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죄는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그래서 구주의 사랑과 굴욕과 고난이 그를 위해 헛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DA 438.3
When you therefore make the Kingdom of God your chief interest, then you will most surely find yourself in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doing the right thing and reaping God’s richest blessing. You can then rest assured that He will open the way and take you where you need to be even if He has to lift you out of the well, and to tell the Ishmaelites to carry you into Egypt and to put you working in Potiphar’s house. He may even have to take you into prison before He seats you with Pharaoh on the throne. Or He may cause you to run away from Egypt and have you keep sheep around Mt. Horeb. He may bring you against the Red Sea while the Egyptians are pursuing you. He may bring you into the desert where there is neither water nor food. The lion and the bear may come to take your lambs, Goliath to kill your people, and the king may cast you in the fiery furnace, or in the lions’ den.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큰 관심사로 삼을 때, 여러분은 반드시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서 올바른 일을 하고 하나님의 가장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우물에서 건져내시고 이스마엘 족속에게 여러분을 이집트로 데려가서 포디바의 집에서 일하게 하시더라도 길을 열어 주시고 필요한 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므로 안심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와 함께 당신을 왕좌에 앉히기 전에 당신을 감옥으로 데려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이집트에서 도망치게 하시고 호렙산 주변에서 양을 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추격하는 동안 홍해를 건너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사막으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자와 곰이 와서 양을 잡아가고 골리앗이 와서 백성을 죽이고, 왕이 당신을 풀무불이나 사자 굴에 던질 수도 있습니다.
Yes, hundreds and thousands of things may happen, but he that trusts in God and does His work well shall find all these so-called hindrances or mishaps wonderful deliverances, and avenues to success, all carrying out God’s marvelous plans, and God’s way toward your promotion from one great thing to another. When you are in God’s care and in His control never say the Devil did this or that regardless what it be, for he can do nothing except he is allowed to do it. Always give God the credit.
예, 수백, 수천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이 모든 소위 방해나 사고들이 놀라운 구원과 성공의 길이며,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수행하고, 한 위대한 일에서 다른 위대한 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보살핌과 그분의 통제 안에 있을 때, 마귀는 그분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귀가 그랬다고 말하지 마세요. 항상 하나님께 공을 돌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