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제 3과, 3기, 2024년 7월 13~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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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오후, 7월 13일

기 억 절:

“And he said un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and not man for the sabbath: Therefore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KJV — Mark 2:27,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니라." KJV - 마가복음 2:27, 28


“When the Holy Spirit works the human agent, it does not ask us in what way it shall operate. Often it moves in unexpected ways. Christ did not come as the Jews expected. He did not come in a manner to glorify them as a nation. His forerunner came to prepare the way for Him by calling upon the people to repent of their sins and be converted, and be baptized. Christ’s message was,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repent ye and believe the gospel.” [Mark 1:15.] The Jews refused to receive Christ, because He did not come in accordance with their expectations. The ideas of finite men were held as infallible, because hoary with age. This is the danger to which the church is now exposed—that the inventions of finite men shall mark out the precise way for the Holy Spirit to come. Though they would not care to acknowledge it, some have already done this. 11LtMs, Lt 38, 1896, par. 12

"성령께서 인간 대리자를 역사하실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실지 묻지 않으십니다.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움직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기대대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민족으로서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선구자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회심하고 세례를 받도록 촉구함으로써 그분을 위한 길을 준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막 1:15)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기대에 따라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유한한 인간의 생각은 세월이 흐르면 변질되기 때문에 오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지금 노출되어 있는 위험, 즉 유한한 인간의 발명품이 성령이 오실 정확한 길을 표시할 것이라는 위험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11LtM, Lt 38, 1896, 파. 12

“And because the Spirit is to come, not to praise men or to build up their erroneous theories, but to reprove the world of sin, and of righteousness, and of judgment, many turn away from it. They are not willing to be deprived of the garments of their own self-righteousness. They are not willing to exchange their own righteousness, which is unrighteousness, for the righteousness of Christ, which is pure, unadulterated truth. The Holy Spirit flatters no man, neither does it work according to the devising of any man. Finite, sinful men are not to work the Holy Spirit. When it shall come as a reprover, through any human agent whom God shall choose, it is man’s place to hear and obey its voice.” 11LtMs, Lt 38, 1896, par. 13

"성령이 오신 것은 사람을 칭찬하거나 그들의 잘못된 이론을 세우려 함이 아니라 죄와 의와 심판의 세상을 책망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이 이를 외면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로움의 옷을 벗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의인 자신의 의를 순수하고 완전한 진리인 그리스도의 의와 기꺼이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도 아첨하지 않으시며, 어떤 사람의 고안대로 일하지도 않습니다. 유한하고 죄 많은 인간은 성령을 일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인간 대리자를 통해 계시자로 오실 때,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11LtM, Lt 38, 1896, par. 13

7월 14일 일요일

Healing a Paralytic
중풍병자를 고치심


Read Mark 1:21-28. What unforgettable experience happened in the Capernaum synagogue, and what spiritual truth can we take from this account?

마가복음 2:1-12을 읽어 보라.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바란 것은 무엇이며, 그가 받 은 것은 무엇인가?

“Again and again the bearers of the paralytic tried to push their way through the crowd, but in vain. The sick man looked about him in unutterable anguish. When the longed-for help was so near, how could he relinquish hope? At his suggestion his friends bore him to the top of the house and, breaking up the roof, let him down at the feet of Jesus. The discourse was interrupted. The Saviour looked upon the mournful countenance, and saw the pleading eyes fixed upon Him. He understood the case; He had drawn to Himself that perplexed and doubting spirit. While the paralytic was yet at home, the Saviour had brought conviction to his conscience. When he repented of his sins, and believed in the power of Jesus to make him whole, the life-giving mercies of the Saviour had first blessed his longing heart. Jesus had watched the first glimmer of faith grow into a belief that He was the sinner's only helper, and had seen it grow stronger with every effort to come into His presence. DA 268.1

"마비병 환자들은 몇 번이고 군중 사이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병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토록 갈망하던 도움이 코앞에 있는데 어떻게 희망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친구들은 그의 제안에 따라 그를 집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지붕을 부수고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담화는 중단되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슬픔에 잠긴 얼굴을 바라보시며 간청하는 눈빛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건을 이해하셨고, 당황하고 의심하는 그 영혼을 자신에게로 이끄셨습니다. 마비 환자가 아직 집에 있는 동안 구세주께서는 그의 양심에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을 때, 구세주의 생명을 주는 자비가 먼저 그의 갈망하는 마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첫 번째 희미한 믿음이 그분이 죄인의 유일한 도우미라는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셨고, 그분의 면전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때마다 그 믿음이 더 강해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DA 268.1

“Now, in words that fell like music on the sufferer's ear, the Saviour said, “Son, be of good cheer; thy sins be forgiven thee.” DA 268.2

"이제 구주께서는 고통받는 사람의 귀에 음악처럼 들리는 말씀으로 "아들아, 기뻐하라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DA 268.2
 
“The burden of despair rolls from the sick man's soul; the peace of forgiveness rests upon his spirit, and shines out upon his countenance. His physical pain is gone, and his whole being is transformed. The helpless paralytic is healed! the guilty sinner is pardoned! DA 268.3

"절망의 짐이 병자의 영혼에서 굴러가고 용서의 평화가 그의 영혼에 내려앉아 그의 얼굴에 비춥니다. 그의 육체적 고통은 사라지고 그의 전 존재가 변화됩니다. 무력한 마비 환자가 치유되고! 죄 많은 죄인이 용서받습니다! DA 268.3

“In simple faith he accepted the words of Jesus as the boon of new life. He urged no further request, but lay in blissful silence, too happy for words. The light of heaven irradiated his countenance, and the people looked with awe upon the scene.” DA 268.4

"그는 단순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새 생명의 은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행복한 침묵 속에 누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했습니다. 하늘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고, 사람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DA 268.4

Read Micah 6:6-8. How does this test explain what was happening between Jesus and the leaders?

미가 6:6-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예수님과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The rabbis had waited anxiously to see what disposition Christ would make of this case. They recollected how the man had appealed to them for help, and they had refused him hope or sympathy. Not satisfied with this, they had declared that he was suffering the curse of God for his sins. These things came fresh to their minds when they saw the sick man before them. They marked the interest with which all were watching the scene, and they felt a terrible fear of losing their own influence over the people. DA 268.5

"랍비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리실지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그 남자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을 기억하며 그에게 희망이나 동정을 거절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그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병자를 보고 이런 일들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였고,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DA 268.5

“These dignitaries did not exchange words together, but looking into one another's faces they read the same thought in each, that something must be done to arrest the tide of feeling. Jesus had declared that the sins of the paralytic were forgiven. The Pharisees caught at these words as blasphemy, and conceived that they could present this as a sin worthy of death. They said in their hearts, “He blasphemeth: who can forgive sins but One, even God?” Mark 2:7, R. V. DA 269.1

"이 고위 인사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정의 파도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같은 생각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죽음에 합당한 죄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저 사람이 신성 모독하는도다 하나님 외에는 누가 죄를 사할 수 있으리요?"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2:7, R. V. DA 269.1

“Fixing His glance upon them, beneath which they cowered, and drew back, Jesus said, “Wherefore think ye evil in your hearts? For whether is easier, to say, Thy sins be forgiven thee; or to say, Arise, and walk? But that ye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th power on earth to forgive sins,” He said, turning to the paralytic, “Arise, take up thy bed, and go unto thine house.” DA 269.2

"예수께서는 그들이 움츠러들고 물러서는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 시키시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마음을 악하게 생각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것과 일어나 걸으라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시며 마비된 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네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DA 269.2

“Then he who had been borne on a litter to Jesus rises to his feet with the elasticity and strength of youth. The life-giving blood bounds through his veins. Every organ of his body springs into sudden activity. The glow of health succeeds the pallor of approaching death. ‘And immediately he arose, took up the bed, and went forth before them all; insomuch that they were all amazed, and glorified God, saying, We never saw it on this fashion.’” DA 269.3

"그러자 예수님에게 짐을 지고 있던 사람이 젊음의 탄력과 힘으로 일어섭니다. 생명을 주는 피가 그의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그의 몸의 모든 기관이 갑자기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창백함을 건강의 빛이 대신합니다. '즉시 일어나 침상을 들고 그들 앞에 나가시니, 그들이 모두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 DA 269.3

7월 15일 월요일

Calling Levi and the Question of Fasting
레위를 부르심, 그리고 금식 문제


Mark 2:13-22. Who was Levi, the son of Alphaeus, and why would there be an objection to him becoming a disciple of Jesus?

마가복음 2:13-22을 읽어 보라. 알패오의 아들 레위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The calling of Matthew to be one of Christ's disciples excited great indignation. For a religious teacher to choose a publican as one of his immediate attendants was an offense against the religious, social, and national customs. By appealing to the prejudices of the people the Pharisees hoped to turn the current of popular feeling against Jesus. DA 273.6

마태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은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종교적 스승이 세리를 제자 중 한 명으로 선택한 것은 종교적, 사회적, 국가적 관습에 위배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편견에 호소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민심의 흐름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DA 273.6

Among the publicans a widespread interest was created. Their hearts were drawn toward the divine Teacher. In the joy of his new discipleship, Matthew longed to bring his former associates to Jesus. Accordingly he made a feast at his own house, and called together his relatives and friends. Not only were publicans included, but many others who were of doubtful reputation, and were proscribed by their more scrupulous neighbors.” DA 273.7

세리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신성한 스승에게로 끌렸습니다. 새로운 제자가 된 기쁨에 마태는 예전의 동료들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여기에는 세리뿐만 아니라 평판이 의심스럽고 더 꼼꼼한 이웃들로부터 금기시되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포함되었습니다." DA 273.7

“When the rabbis learned of the presence of Jesus at Matthew's feast, they seized the opportunity of accusing Him. But they chose to work through the disciples. By arousing their prejudices they hoped to alienate them from their Master. It was their policy to accuse Christ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Christ, aiming their arrows where they would be most likely to wound. This is the way in which Satan has worked ever since the disaffection in heaven; and all who try to cause discord and alienation are actuated by his spirit. DA 275.1

"랍비들은 마태의 잔치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들을 통해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의 편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제자들을 스승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제자들에게, 제자들을 그리스도에게 고발하여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에 화살을 조준하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불화 이후 사탄이 일해 온 방식이며, 불화와 소외를 일으키려는 모든 사람은 그의 영에 의해 움직입니다. DA 275.1

“Why eateth your Master with publicans and sinners?” questioned the envious rabbis. DA 275.2

Jesus did not wait for His disciples to answer the charge, but Himself replied: “They that be whole need not a physician, but they that are sick. But go ye and learn what that meaneth, I will have mercy, and not sacrifice: for I am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The Pharisees claimed to be spiritually whole, and therefore in no need of a physician, while they regarded the publicans and Gentiles as perishing from diseases of the soul. Then was it not His work, as a physician, to go to the very class that needed His help? DA 275.3

"어찌하여 주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나이까?" 시기하는 랍비들이 물었습니다. DA 275.2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친히 대답하셨다: "온전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고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가서 그 뜻을 배우라 나는 자비를 베풀고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회개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영적으로 온전하므로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 반면, 세리와 이방인들은 영혼의 질병으로 인해 멸망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의사로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계층을 찾아간 것이 주님의 일이 아니었습니까? DA 275.3

But although the Pharisees thought so highly of themselves, they were really in a worse condition than the ones they despised. The publicans were less bigoted and self-sufficient, and thus were more open to the influence of truth. Jesus said to the rabbis, “Go ye and learn what that meaneth, I will have mercy, and not sacrifice.” Thus He showed that while they claimed to expound the word of God, they were wholly ignorant of its spirit. DA 275.4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높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멸시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쁜 상태에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편견이 덜하고 자급자족했기 때문에 진리의 영향에 더 개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랍비들에게 "너희는 가서 그 뜻을 배우라 나는 자비를 베풀고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분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설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정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DA 275.4

The Pharisees were silenced for the time, but only became more determined in their enmity. They next sought out the disciples of John the Baptist, and tried to set them against the Saviour. These Pharisees had not accepted the mission of the Baptist. They had pointed in scorn to his abstemious life, his simple habits, his coarse garments, and had declared him a fanatic. Because he denounced their hypocrisy, they had resisted his words, and had tried to stir up the people against him. The Spirit of God had moved upon the hearts of these scorners, convicting them of sin; but they had rejected the counsel of God, and had declared that John was possessed of a devil. DA 275.5

바리새인들은 한동안 침묵했지만 적대감만 더 커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음으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찾아 구세주를 대적하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금욕적인 삶과 소박한 습관, 거친 옷차림을 조롱하며 그를 광신도라고 비난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들의 위선을 고발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말에 저항했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를 반대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 비웃는 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죄를 깨닫게 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하고 요한이 마귀에 들렸다고 선언했습니다. DA 275.5

Now when Jesus came mingling with the people, eating and drinking at their tables, they accused Him of being a glutton and a winebibber. The very ones who made this charge were themselves guilty. As God is misrepresented, and clothed by Satan with his own attributes, so the Lord's messengers were falsified by these wicked men. DA 276.1

예수님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러 오셨을 때, 그들은 그를 폭식가이자 술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혐의를 제기한 바로 그 사람들이 스스로 유죄였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 의해 잘못 표현되고 자신의 속성으로 옷을 입었듯이, 주님의 사자들도 이 악한 사람들에 의해 거짓된 말을 들었습니다. DA 276.1

The Pharisees would not consider that Jesus was eating with publicans and sinners in order to bring the light of heaven to those who sat in darkness. They would not see that every word dropped by the divine Teacher was a living seed that would germinate and bear fruit to the glory of God. They had determined not to accept the light; and although they had opposed the mission of the Baptist, they were now ready to court the friendship of his disciples, hoping to secure their co-operation against Jesus. They represented that Jesus was setting at nought the ancient traditions; and they contrasted the austere piety of the Baptist with the course of Jesus in feasting with publicans and sinners. DA 276.2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어둠 속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빛을 가져다주기 위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성한 선생님이 던지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발아하고 열매를 맺는 살아있는 씨앗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고, 세례자의 선교에 반대했지만 이제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자들의 우정을 구걸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고대의 전통을 무력화시키고 있음을 나타내었고, 세례자의 엄격한 경건과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잔치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행적을 대조했습니다. DA 276.2

7월 16일 화요일

The Lord of the Sabbath
안식일의 주인


Read Mark 2:23-28. How does Jesus counter the charge brought by the Pharisees?

마가복음 2:23-28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비난에 어떻게 대 응하시는가?

“The Jewish teachers prided themselves on their knowledge of the Scriptures, and in the Saviour's answer there was an implied rebuke for their ignorance of the Sacred Writings. “Have ye not read so much as this,” He said, “what David did, when himself was an hungered, and they which were with him; how he went into the house of God, and did take and eat the shewbread,... which it is not lawful to eat but for the priests alone?” “And He said un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and not man for the Sabbath.” “Have ye not read in the law, how that on the Sabbath days the priests in the temple profane the Sabbath, and are blameless? But I say unto you, That in this place is one greater than the temple.”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Luke 6:3, 4; Mark 2:27, 28; Matthew 12:5, 6. DA 285.1

"유대인 교사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구주의 대답에는 성서에 대한 그들의 무지에 대한 암묵적인 책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너희는 다윗이 자기와 함께 있는 자들이 주렸을 때에 어떻게 하였는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는 진설병을 취하여 먹었는지, 이만큼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든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니라." "안식일에 성전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더럽히고 흠이 없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에는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있느니라."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시니라." 누가복음 6:3, 4; 마가복음 2:27, 28; 마태복음 12:5, 6. DA 285.1

“If it was right for David to satisfy his hunger by eating of the bread that had been set apart to a holy use, then it was right for the disciples to supply their need by plucking the grain upon the sacred hours of the Sabbath. Again, the priests in the temple performed greater labor on the Sabbath than upon other days. The same labor in secular business would be sinful; but the work of the priests was in the service of God. They were performing those rites that pointed to the redeeming power of Christ, and their labor was in harmony with the object of the Sabbath. But now Christ Himself had come. The disciples, in doing the work of Christ, were engaged in God's service, and that which was necessary for the accomplishment of this work it was right to do on the Sabbath day.” DA 285.2

"다윗이 거룩한 용도로 구별된 빵을 먹음으로써 허기를 채우는 것이 옳았다면, 제자들이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시간에 곡식을 따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전의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다른 날보다 더 많은 노동을 수행했습니다. 세속적인 사업에서 같은 노동은 죄가 되지만, 제사장들의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을 가리키는 의식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노동은 안식일의 목적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봉사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이 일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일은 안식일에 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DA 285.2

Read Mark 3:1-6. How does this story illustrate Jesus’ point that the Sabbath was made for humanity?

마가복음 3:1-6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예 수님의 주장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Christ would teach His disciples and His enemies that the service of God is first of all. The object of God's work in this world is the redemption of man; therefore that which is necessary to be done on the Sabbath in the accomplishment of this work is in accord with the Sabbath law. Jesus then crowned His argument by declaring Himself the “Lord of the Sabbath,”—One above all question and above all law. This infinite Judge acquits the disciples of blame, appealing to the very statutes they are accused of violating.” DA 285.3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원수들에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의 목적은 인간의 구속이며, 따라서 이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안식일에 해야 하는 것은 안식일 법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자신을 "안식일의 주님"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하셨습니다 - 모든 질문 위에, 모든 율법 위에. 이 무한한 재판관은 제자들이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바로 그 율법에 호소하여 제자들의 혐의를 무죄로 판결합니다." DA 285.3

7월 17일 수요일

Sandwich Story: Part 1
샌드위치 구조 이야기 ①


Read Mark 3:20-35. What connection do you see between the two stories intertwined?

마가복음 3:20-35을 읽어 보라. 서로 얽혀 있는 두 이야기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Christ told them plainly that in attributing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o Satan, they were cutting themselves off from the fountain of blessing. Those who had spoken against Jesus Himself, not discerning His divine character, might receive forgiveness; for through the Holy Spirit they might be brought to see their error and repent. Whatever the sin, if the soul repents and believes, the guilt is washed away in the blood of Christ; but he who reject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placing himself where repentance and faith cannot come to him. It is by the Spirit that God works upon the heart; when men willfully reject the Spirit, and declare It to be from Satan, they cut off the channel by which God can communicate with them. When the Spirit is finally rejected, there is no more that God can do for the soul.” DA 321.3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축복의 샘에서 스스로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신성한 성품을 분별하지 않고 예수님 자신을 비방한 사람들은 성령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죄가 무엇이든 영혼이 회개하고 믿으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책이 씻겨지지만,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사람은 회개와 믿음이 자신에게 올 수 없는 곳에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며,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성령을 거부하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선언할 때, 그들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영이 마침내 거부되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위해 더 이상 하실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DA 321.3

Read Mark 3:28-30. What is the unpardonable sin, and what does that mean?

마가복음 3:28-30을 읽어 보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어떤 것이며 그것은 무엇 을 의미하는가?

“Closely connected with Christ's warning in regard to the sin against the Holy Spirit is a warning against idle and evil words. The words are an indication of that which is in the heart. “Out of the abundance of the heart the mouth speaketh.” But the words are more than an indication of character; they have power to react on the character. Men are influenced by their own words. Often under a momentary impulse, prompted by Satan, they give utterance to jealousy or evil surmising, expressing that which they do not really believe; but the expression reacts on the thoughts. They are deceived by their words, and come to believe that true which was spoken at Satan's instigation. Having once expressed an opinion or decision, they are often too proud to retract it, and try to prove themselves in the right, until they come to believe that they are. It is dangerous to utter a word of doubt, dangerous to question and criticize divine light. The habit of careless and irreverent criticism reacts upon the character, in fostering irreverence and unbelief. Many a man indulging this habit has gone on unconscious of danger, until he was ready to criticize and reject the work of the Holy Spirit. Jesus said, ‘Every idle word that men shall speak, they shall give account thereof in the day of judgment. For by thy words thou shalt be justified, and by thy words thou shalt be condemned.’” DA 323.1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관한 그리스도의 경고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게으르고 악한 말에 대한 경고입니다. 말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마음의 풍성함에서 나오는 것이 곧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단순히 인격을 나타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격에 반응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말에 영향을 받습니다. 종종 사탄의 자극을 받아 순간적인 충동으로 질투나 악한 추측을 말하며 실제로 믿지 않는 것을 표현하지만, 그 표현은 그 생각에 반응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에 속아 사탄의 선동으로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한 번 의견이나 결정을 내렸을 때, 그들은 종종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믿게됩니다. 의심의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은 위험하고, 신성한 빛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부주의하고 경건하지 않은 비판의 습관은 불경건과 불신앙을 조장하여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습관에 빠진 많은 사람이 위험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성령의 사역을 비판하고 거부할 준비가 될 때까지 계속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무심코 하는 모든 말이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얻고 네 말로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DA 323.1

7월 18일 목요일

Sandwich Story: Part 2
샌드위치 구조 이야기 ②


Read Mark 3:20, 21. What experience led Jesus’ family to consider Him out of His mind?

마가복음 3:20, 2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가족은 어떤 일로 인해 그분의 정신이 온 전치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The sons of Joseph were far from being in sympathy with Jesus in His work. The reports that reached them in regard to His life and labors filled them with astonishment and dismay. They heard that He devoted entire nights to prayer, that through the day He was thronged by great companies of people, and did not give Himself time so much as to eat. His friends felt that He was wearing Himself out by His incessant labor; they were unable to account for His attitude toward the Pharisees, and there were some who feared that His reason was becoming unsettled. DA 321.1

"요셉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분의 생애와 수고에 관한 보고가 그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놀라움과 실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기도에 전념하셨고, 낮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식사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친구들은 그분의 끊임없는 수고로 인해 그분 자신이 지쳐가고 있다고 느꼈고, 바리새인들에 대한 그분의 태도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그분의 이성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DA 321.1

“His brothers heard of this, and also of the charge brought by the Pharisees that He cast out devils through the power of Satan. They felt keenly the reproach that came upon them through their relation to Jesus. They knew what a tumult His words and works created, and were not only alarmed at His bold statements, but indignant at His denunciation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They decided that He must be persuaded or constrained to cease this manner of labor, and they induced Mary to unite with them, thinking that through His love for her they might prevail upon Him to be more prudent.” DA 321.2

"그의 형제들은 이 일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사탄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셨다는 고발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들에게 닥친 모욕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이 얼마나 큰 소동을 일으켰는지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대담한 말씀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난한 것에 분개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이런 방식의 수고를 멈추도록 설득하거나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결심했고, 마리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통해 그분이 더 신중해지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리아가 그들과 연합하도록 유도했습니다." DA 321.2

Read Mark 3:31-35. What does Jesus’ family want, and how does he respond?

마가복음 3:31-3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가족이 원한 것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어 떻게 반응하셨는가?

“All who would receive Christ by faith were united to Him by a tie closer than that of human kinship. They would become one with Him, as He was one with the Father. As a believer and doer of His words, His mother was more nearly and savingly related to Him than through her natural relationship. His brothers would receive no benefit from their connection with Him unless they accepted Him as their personal Saviour. DA 325.2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은 인간의 친족 관계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으로 그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로서 그분의 어머니는 자연적인 관계보다 더 가깝고 구원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분의 형제들은 그분을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분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DA 325.2

“What a support Christ would have found in His earthly relatives if they had believed in Him as one from heaven, and had co-operated with Him in doing the work of God! Their unbelief cast a shadow over the earthly life of Jesus. It was a part of the bitterness of that cup of woe which He drained for us. DA 325.3

"지상의 친척들이 그분을 하늘에서 오신 분으로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협력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큰 도움을 받으셨을까요! 그들의 불신앙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마신 비애의 잔의 쓴맛의 일부였습니다. DA 325.3

“The enmity kindled in the human heart against the gospel was keenly felt by the Son of God, and it was most painful to Him in His home; for His own heart was full of kindness and love, and He appreciated tender regard in the family relation. His brothers desired that He should concede to their ideas, when such a course would have been utterly out of harmony with His divine mission. They looked upon Him as in need of their counsel. They judged Him from their human point of view, and thought that if He would speak only such things as would be acceptable to the scribes and Pharisees, He would avoid the disagreeable controversy that His words aroused. They thought that He was beside Himself in claiming divine authority, and in placing Himself before the rabbis as a reprover of their sins. They knew that the Pharisees were seeking occasion to accuse Him, and they felt that He had given them sufficient occasion.” DA 326.1

"복음에 대한 인간의 마음에 불붙은 적개심은 하느님의 아들이 예리하게 느꼈고, 그분 자신의 마음은 친절과 사랑으로 가득했고 가족 관계에서 부드러운 배려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가정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분의 형제들은 그분이 그들의 생각에 양보하기를 원했는데, 그러한 과정은 그분의 신성한 사명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의 조언이 필요한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분을 판단했고, 그분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만 하시면 그분의 말씀이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논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신적 권위를 주장하고 랍비들 앞에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자로 자신을 내세우는 데 있어서 그분 곁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비난할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DA 326.1

7월 19일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Rev. 12:17 – “And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ich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요한계시록 12:17 - "용이 여자에게 진노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그 남은 자손과 전쟁을 하러 가더라."

Here, you see, the remnant – those who are left after the others are swallowed by the earth, so to speak – keeps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s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This remnant, or sect, that keeps the commandments of God, therefore, is the only one that Inspiration recommends, the only one that is worth joining, the only one that can profit any one. It alone possesses the power to escape any and all of the calamities that are now brewing throughout the world. It is the only sect that finds favor with God. No other would do, for no other could profit you.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땅에 삼켜진 후 남은 자, 말하자면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 남은 자, 즉 종파는 영감이 추천하는 유일한 종파이며, 가입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종파이며, 누구에게나 유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파입니다. 이 종파만이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의 은총을 받는 유일한 종파입니다. 다른 어떤 종파도 여러분을 이롭게 할 수 없으니까요.

Then, too, it alone has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 the living Spirit of Prophecy in its midst (Rev. 19:10), – the Spirit Who leads into all Truth, Who alone can rightly interpret the Scriptures (2 Pet. 1:20, 21). Plainly, then, Inspiration would have you join no sect but this “remnant.”

또한 그 가운데에는 살아있는 예언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있으며(계 19:10),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영이시며 오직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벧후 1:20, 21). 그러므로 영감은 여러분이 이 "남은 자"를 제외한 어떤 종파에도 가입하지 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though, involves keeping everyone of them, for “Whosoever shall keep the whole law, and yet offend in one point, he is guilty of all.” James 2:10. And remember, too, that the keeping of the commandments can openly be recognized only by the keeping of the Sabbath commandment, the commandment which says:

“Six days shalt thou labour, and do all thy work: but the seventh day is the Sabbath of the Lord thy God: in it thou shalt not do any work, thou, nor thy son, nor thy daughter, thy manservant, nor thy maidservant, nor thy cattle, nor thy stranger that is within thy gates: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all that in them is, and rested the seventh day: wherefore the Lord blessed the Sabbath day, and hallowed it.” Ex. 20:9-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되 한 점이라도 범하는 자는 모든 사람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면 모든 계명을 다 지켜야 합니다. 야고보서 2:10. 또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안식일 계명을 지킴으로써만 공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세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있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지니, 이는 안식일에는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는 엿새 동안에 주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을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느니라." 출 20:9-11.

The Sabbath day, you see, is created holy, but the first six days are created for work. The seventh-day Sabbath is the only Sabbath, and in all the holy Word of God there is no command to keep another day in its stead. The keeping of the seventh-day Sabbath alone testifies of one’s faith in the Creator, and against evolution. A Sabbath substitute, therefore, can no more be acceptable as a commandment of God than could Cain’s offering have been accepted as God’s ordained sacrifice.

안식일은 거룩하게 창조되었지만 처음 6일은 일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일은 유일한 안식일이며,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말씀에는 다른 날을 대신하여 지키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진화에 반대하는 신앙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대신하는 것은 가인의 제물이 하나님의 정해진 희생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No, do not contradict the Lord by saying the seventh-day is for the Jews only, for the Lord says:

Isa. 56:2-7 – “Blessed is the man that doeth this, and the son of man that layeth hold on it; that keepeth the Sabbath from polluting it, and keepeth his hand from doing any evil. Neither let the son of the stranger, that hath joined himself to the Lord, speak, saying, The Lord hath utterly separated me from His people: neither let the eunuch say, Behold, I am a dry tree. For thus saith the Lord unto the eunuchs that keep my Sabbaths, and choose the things that please Me, and take hold of My covenant; even unto them will I give in Mine house and within My walls a place and a name better than of sons and of daughters: I will give them an everlasting name, that shall not be cut off. Also the sons of the stranger, that join themselves to the Lord, to serve Him, and to love the name of the Lord, to be His servants, every one that keepeth the Sabbath from polluting It, and taketh hold of My covenant; even them will I bring to My holy mountain, and make them joyful in My house of prayer: their burnt offerings and their sacrifices shall be accepted upon Mine altar; for Mine house shall be called an house of prayer for all people.”

아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칠일은 유대인만을 위한 날이라고 말함으로써 주님을 모순하지 마십시오:

사 56:2-7 - "이것을 행하는 자와 그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안식일을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으로 악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또 주와 연합한 이방인의 아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그분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분리하셨도다 하지 말며 내시가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지니라. 주께서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을 택하며 내 언약을 붙잡는 내시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집과 내 성벽 안에서 아들과 딸보다 나은 처소와 이름을 그들에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끊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이름을 주리라. 또한 나그네의 아들들 곧 안식일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내 언약을 붙잡아 주께 합하여 주를 섬기며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그 종이 되는 자는 다 내 거룩한 산으로 데려와 내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니 그들의 번제와 제물을 내 제단에서 받으리니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하리라."

The only Sabbath Jesus ever knew was the seventh-day Sabbath, and looking forward to the great tribulation, deep in the Christian era, He said: “But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neither on the sabbath day: for then shall be great tribulation, such as was not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to this time, no, nor ever shall be.” Matthew 24:20, 21. The Sabbath, you see, is for all peoples, both in Old and New Testament times. Moreover, again speaking of the Christian era, the time the earth is made new…

예수님이 알고 계셨던 유일한 안식일은 일곱째 날 안식일이었으며, 기독교 시대 깊숙한 곳에서 큰 환난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도망하는 것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아니기를 구하라 이는 그때에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던 것과 같은 큰 환난이 있겠고 또 앞으로도 없으리라." 마태복음 24:20, 21. 알다시피 안식일은 구약과 신약 시대 모두 모든 민족을 위한 날입니다. 더욱이 기독교 시대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땅이 새로워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