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ye shall receive power, after that the Holy Ghost is come upon you: and ye shall be witnesses unto me both in Jerusalem, and in all Judaea, and in Samaria, and unto the uttermost part of the earth. KJV — Acts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KJV -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KJV - 사도행전 1:8
The mission to save the world cannot be more important than the mission to save the church. Enlarging the church membership under the now prevailing lukewarm Laodicean conditions, could no more advance the Kingdom of Christ than could have been done under the conditions in the Jewish church in the days of His first advent. Understanding the true situation in that church, John the Baptist and Christ Himself and even the apostles at first, engaged themselves to work, not for the world in general, but only in the interest of their brethren in the church.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은 교회를 구원하는 사명보다 더 중요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에서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은 주님이 처음 오셨을 때 유대 교회의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왕국을 발전시킬 수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자신, 심지어 사도들조차도 그 교회의 진정한 상황을 이해하고 처음에는 세상 일반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있는 형제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했습니다.
As the same departure from Christ exists within the church now as it did then (Testimonies, Vol. 5, p. 217), it will take much greater effort to rescue the people from the Laodicean "sad deception" (Testimonies, Vol. 3, p. 253), than if they were in heathenism. For in Laodicea they are made to believe that they have all the truth there is to be had, that they are rich increased with goods, and in need of nothing--their salvation forever secured as long as they hold membership in the church! Hence there is greater risk of their losing their souls in the church while she is "lukewarm" and about to be spued out, than if they remain in the world until the church awakes from her slumber, and anoints herself with the eyesalve (Truth)--sees right, does right, and leads and feeds the flock aright.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간증 5권, 217쪽),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슬픈 속임수"(간증 3권, 253쪽)에서 그들을 구출하려면 이교도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에서는 그들이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고, 재물로 부유해졌으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며, 교회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한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믿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잠에서 깨어나 눈동자 (진리)로 기름을 바르고 바르게보고 바르게 행하며 양떼를 바르게 인도하고 먹일 때까지 세상에 남아있는 것보다 교회가"미지근하고"쫓겨나려고하는 동안 교회에서 그들의 영혼을 잃을 위험이 더 큽니다.
Read Genesis 11:1-9. What were the intentions of the people? What were they wanting to do, and why would God thwart it?
창세기 11장 1-9절을 읽으세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었고, 하나님은 왜 그것을 막으셨을까요?
One would think that after the deluge, the world would have had great respect for religion and for the prophets of God. But that was not the case. The antediluvians did not believe Noah’s prediction that there was to be a flood, so they refused to go into the ark! But the flood came and they perished. The postdiluvians did not believe his prediction that there was not to be another flood so they set about to build the tower of Babel! But when God saw the tower sky-rocketing, He blasted the top of it, and confounded the builders’ language. That is, He blotted their own language from their minds and carved into them the languages of today. Thus he caused the birth of various races and languages which we today find even in the remotest parts of the earth.
대홍수 이후 세상은 종교와 신의 선지자를 매우 존중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노아의 예언을 믿지 않았던 대홍수 반대파는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닥쳤고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노아 이후의 사람들은 다시는 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노아의 예언을 믿지 않고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탑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시고 탑 꼭대기를 폭파하셔서 건축자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셨습니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언어를 지워버리고 오늘날의 언어를 새겨 넣으셨어요.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지구의 가장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종족과 언어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He blasted the top of it, and confounded the builders’ language. That is, He blotted their own language from their minds and carved into them the languages of today. Thus he caused the birth of various races and languages which we today find even in the remotest parts of the earth.
그분은 그 꼭대기를 날려버리고 건축자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셨습니다. 즉, 그분은 그들의 마음에서 그들의 언어를 지워 버리고 오늘날의 언어를 새겨 넣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지구의 가장 먼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종족과 언어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It was not God’s purpose that the people should stack themselves in the plains of Shinar, but that they should spread out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o when they refused to obey His command He gave them the next best He had for them, and that they had to obey.
사람들이 시나르 평원에 모여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땅으로 퍼져나가 땅을 채우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했을 때 그분은 그들에게 차선책을 주셨고 그들은 순종해야했습니다.
Man’s work independent of and contrary to God’s, you see, is certain to meet with disaster. A house that is built on sand cannot survive a storm, and no man can possibly defeat God’s purpose for men. Do not make a fool of yourself by trying.
하나님의 일과 무관하고 하나님의 일과 반대되는 인간의 일은 반드시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폭풍우를 견딜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노력해서 자신을 바보로 만들지 마십시오.
It takes years in the schools of men to learn a language, but in the school of God, it takes but a moment. He can blot out one language from man’s brains and carve in another, and at the same time change the features of his face and the color of his skin. Yes, God can do all this more quickly than a dentist can pull a tooth. But whether a change be made for better or for worse, all depends upon the individual.
인간의 학교에서는 언어를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리지 만 하나님의 학교에서는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분은 인간의 두뇌에서 한 언어를 지우고 다른 언어를 새겨 넣을 수 있으며 동시에 얼굴의 특징과 피부색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 하나님은 치과 의사가 치아를 뽑는 것보다이 모든 것을 더 빨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든 나쁜 방향으로 이루어지든 그것은 모두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Read Genesis 12:1-3. In what sense was God's instruction to Abram a call to mission?
창세기 12:1-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지시는 어떤 의미에서 선교 에 대한 부르심이었는가?
Abraham's unquestioning and unfailing faith and his unhesitating obedience to the Lord's naked command in every instance, made him a "friend of God," the "father of the faithful," and a great pillar of living truth, with a name to be remembered and venerated throughout time and eternity.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과 주님의 적나라한 명령에 매번 주저하지 않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친구', '믿음의 조상', 살아있는 진리의 위대한 기둥이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영원토록 기억되고 숭배될 것입니다.
Jacob's faith in the promises of God, and his overmastering desire to work himself into the Lord's plans and to carry them out, resulted in his becoming the progenitor of the first fruits or ministry of the Kingdom-church-those who stand with the Lamb on Mt. Zion (Rev. 14:1).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주님의 계획에 자신을 투입하여 그 계획을 수행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해 왕국의 첫 열매, 즉 시온산에서 어린 양과 함께 서 있는 교회(계 14:1)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Joseph's uncompromising fidelity to principle brought him into highest estate, in which he became the world's greatest provisioner as a type of Christ, the Great Spiritual Provisioner.
요셉은 원칙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충실함으로 최고의 지위에 올랐고, 그곳에서 위대한 영적 공급자이신 그리스도의 유형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공급자가 되었습니다.
Moses, in his meekness (humbleness) and in his determination "rather to suffer affliction with the people of God,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eason" (Heb. 11:25), rose to be the greatest general, leader, and deliverer of all times, and even to stan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모세는 온유함(겸손)과 "한동안 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낫다"(히 11:25)는 결단으로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장군, 지도자, 구원자가 되었으며, 심지어 변화산에 서기까지 했습니다.
The apostles' sacrifice of life for the sake of Christ and His Truth, won them the exalted honor of having their names placed in the foundations of the Holy City (Rev. 21:14).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도들의 희생은 거룩한 성의 기초에 이름을 새기는 고귀한 영예를 얻었습니다(요한계시록 21:14).
Luther's fearless and persevering efforts to lift up the down-trodden Truth (Dan. 8:11, 12; 11:31), fathered forth Protestantism.
짓밟힌 진리(단 8:11, 12, 11:31)를 일으켜 세우려는 루터의 용감하고 끈질긴 노력은 개신교를 탄생시켰습니다.
“And now, behold, I go unto my people: come therefore, and I will advertise thee what this people shall do to thy people in the latter days.... There shall come a star out of Jacob, and a sceptre shall rise out of Israel, and shall smite the corners of Moab, and destroy all the children of Sheth. And Edom shall be a possession, Seir also shall be a possession for his enemies: and Israel shall do valiantly.” Num. 24:14, 17, 18.
"이제 보라 내가 내 백성에게로 가노라 그러므로 이 백성이 후일에 네 백성에게 행할 일을 내가 네게 알리리라....... 야곱에게서 별이 나오고 이스라엘에서 홀이 일어나서 모압의 모퉁이를 치고 셋의 모든 자손을 멸하리라. 에돔은 그의 소유가 되고 세일도 그의 대적의 소유가 되리니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하리라." 민 24:14, 17, 18.
In effect Balaam said to the king of Moab: “I have tried my best to obtain your favor and to curse Israel, but God has prevailed. Israel has won; you and I have lost. And further, let me tell you what this people shall do to thy people in the latter days: He that is to rule Israel shall smite Moab on all sides, and Israel shall do valiantly.”
사실상 발람은 모압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왕의 호의를 얻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겼고 당신과 나는 졌습니다. 그리고 말세에 이 백성이 왕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사방에서 모압을 치리니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하리라."
Thus was Balaam impelled to predict Christ’s birth and His ruling, causing Israel to do valiantly against Moab and his neighboring peoples in the latter days.
따라서 발람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분의 통치를 예언하도록 충동을 받아 이스라엘이 후대에 모압과 그의 이웃 민족을 용감하게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
Read Genesis 12:10-13:1. What things happened to him next, and what mistakes did this man of God make?
창세기 12:10-13:1을 읽어 보라. 이후에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이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가?
“God had called Abraham to be the father of the faithful, and his life was to stand as an example of faith to succeeding generations. But his faith had not been perfect. He had shown distrust of God in concealing the fact that Sarah was his wife, and again in his marriage with Hagar. That he might reach the highest standard, God subjected him to another test, the closest which man was ever called to endure. In a vision of the night he was directed to repair to the land of Moriah, and there offer up his son as a burnt offering upon a mountain that should be shown him.” PP 147.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고, 그의 삶은 다음 세대에 믿음의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기고 하갈과의 결혼 생활에서도 하나님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이 견디도록 부름받은 것 중 가장 가까운 또 다른 시험을 주셨습니다. 밤에 환상을 통해 그는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곳에서 아들을 보여 주어야 할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PP 147.2
“At the time of receiving this command, Abraham had reached the age of a hundred and twenty years. He was regarded as an old man, even in his generation. In his earlier years he had been strong to endure hardship and to brave danger, but now the ardor of his youth had passed away. One in the vigor of manhood may with courage meet difficulties and afflictions that would cause his heart to fail later in life, when his feet are faltering toward the grave. But God had reserved His last, most trying test for Abraham until the burden of years was heavy upon him, and he longed for rest from anxiety and toil.” PP 147.3
"이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백이십 세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그 세대에서도 노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고난을 견디고 위험을 무릅쓰는 힘이 강했지만, 이제는 젊은 시절의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젊은 시절의 활기찬 사람은 용기를 내어 어려움과 고난을 만나면 나중에 무덤을 향해 발걸음이 흔들릴 때 마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세월의 짐을 무겁게 지고 불안과 수고에서 벗어나 안식을 갈망할 때까지 아브라함을 위해 마지막 가장 힘든 시험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PP 147.3
“In the obedience of faith, Abraham had forsaken his native country—had turned away from the graves of his fathers and the home of his kindred. He had wandered as a stranger in the land of his inheritance. He had waited long for the birth of the promised heir. At the command of God he had sent away his son Ishmael. And now, when the child so long desired was entering upon manhood, and the patriarch seemed able to discern the fruition of his hopes, a trial greater than all others was before him.” PP 148.1
"아브라함은 믿음의 순종으로 조국을 버렸고, 조상의 무덤과 동족의 고향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유업의 땅에서 나그네로 방황했습니다. 그는 약속된 상속자의 탄생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는 아들 이스마엘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성인이 되고 족장이 희망의 결실을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다른 모든 것보다 더 큰 시련이 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PP 148.1
“Abraham's great act of faith stands like a pillar of light, illuminating the pathway of God's servants in all succeeding ages. Abraham did not seek to excuse himself from doing the will of God. During that three days’ journey he had sufficient time to reason, and to doubt God, if he was disposed to doubt. He might have reasoned that the slaying of his son would cause him to be looked upon as a murderer, a second Cain; that it would cause his teaching to be rejected and despised; and thus destroy his power to do good to his fellow men. He might have pleaded that age should excuse him from obedience. But the patriarch did not take refuge in any of these excuses. Abraham was human; his passions and attachments were like ours; but he did not stop to question how the promise could be fulfilled if Isaac should be slain. He did not stay to reason with his aching heart. He knew that God is just and righteous in all His requirements, and he obeyed the command to the very letter.” PP 153.3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의 행위는 빛의 기둥처럼 서서 후대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의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변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흘간의 여정 동안 그는 추리할 시간이 충분했고, 의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의심할 시간도 충분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을 살인자, 제2의 가인으로 간주하게 되고, 자신의 가르침을 거부당하고 멸시당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동료들에게 선을 행할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추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이 때문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항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족장은 이러한 변명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인간이고 그의 열정과 애착은 우리와 같았지만, 그는 이삭을 죽여야 한다면 어떻게 약속이 성취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픈 마음을 추리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요구 사항에서 공의롭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알았고, 그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PP 153.3
Read Acts 8:1-4. In the early church, what brought about the scattering of believers beyond their comfort zones?
사도행전 8:1-4을 읽어 보라. 초대 교회에서 신자들이 안주지대를 벗어나 흩어진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And when the dragon saw that he was cast unto the earth, he persecuted the woman which brought forth the man child. And to the woman were given two wings of a great eagle, that she might fly into the wilderness, into her place, where she is nourished for a time, and times, and half a time, from the face of the serpent. And the serpent cast out of his mouth water as a flood after the woman, that he might cause her to be carried away of the flood. And the earth helped the woman, and the earth opened her mouth, and swallowed up the flood which the dragon cast out of his mouth. And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ich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3-17.
"용이 자기가 땅에 던져진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더라. 여자에게는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져 광야로 날아가서 뱀의 얼굴로부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양육을 받는 곳으로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뱀이 여자를 따라 홍수처럼 입에서 물을 내뿜어 여자를 홍수에 휩쓸리게 하려고 했습니다. 땅이 여자를 도왔고 땅은 입을 벌려 용이 입에서 내뿜은 홍수를 삼켰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진노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그녀의 남은 자손과 전쟁을 벌이러 가니라." 요한계시록 12:13-17.
Nearly all Christians agree that the only tenable interpretation of the "woman" here mentioned, is that she symbolizes the church. And the fact that she gave birth to the man child, Christ, shows that she is therefore symbolical of the church in at least the Christian dispensation.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언급된 "여자"에 대한 유일한 해석은 그녀가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남자 아이 인 그리스도를 낳았다는 사실은 그녀가 적어도 기독교 경륜에서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While the dragon was persecuting her through the deceived Jewish priests who rejected Christ as the Messiah, "there was a great persecution against the church which was at Jerusalem; and they were all scattered abroad throughout the regions of Judaea and Samaria, except the apostles. And devout men carried Stephen to his burial, and made great lamentation over him. As for Saul, he made havoc of the church, entering into every house, and haling men and women committed them to prison. Therefore they that were scattered abroad went everywhere preaching the Word." Acts 8:1-4.
용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거부한 미혹된 유대인 제사장들을 통해 그녀를 핍박하는 동안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에 흩어졌더라. 독실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 지내러 가서 그를 크게 애도했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어지럽히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남자와 여자를 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외국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다니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8:1-4.
To her were therefore given the wings of a great eagle--her means of transport into the wilderness. And being the opposite of the vineyard ("the house of Israel, and the men of Judah His pleasant plant"--Isa. 5:7), the wilderness obviously denotes the Gentile nations. The apostles, therefore, in fulfillment of this prophecy were commanded, and given the wings, speedily to go preach to all nations.
그러므로 그녀에게는 큰 독수리의 날개, 즉 광야로의 이동 수단이 주어졌습니다. 포도원("이스라엘 집과 유다 사람들은 그분의 즐거운 식물"-사 5:7)과 반대되는 광야는 분명히 이방 민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민족에게 신속히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날개를 받았습니다.
"Then Paul and Barnabas waxed bold, and said, It was necessary that the Word of God should first have been spoken to you: but seeing ye put it from you, and judge yourselves unworthy of everlasting life, lo, we turn to the Gentiles. For so hath the Lord commanded us, saying, I have set thee to be a light of the Gentiles, that thou shouldest be for salvation unto the ends of the earth. And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were glad, and glorified the Word of the Lord: and as many as were ordained to eternal life believed. And the Word of the Lord was published throughout all the region." Acts 13:46-49.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너희에게 전할 필요가 있었으나 너희가 그 말씀을 너희에게서 떠나 영생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돌아서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이방인의 빛으로 세웠으니 이는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셨느니라.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니 영생에 이르도록 정하신 자마다 믿더라. 주님의 말씀이 온 지역에 전파되니라." 사도행전 13:46-49.
Read Acts 1:8. What principle did Jesus present when doing the work of sharing or being His witnesses to the world?
사도행전 1:8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세상을 향한 그분의 증인이 되거나 나눔을 실 천하기 위한 어떤 원칙을 제시하셨는가?
“‘And He shall confirm the covenant with many for one week.” The “week” here brought to view is the last one of the seventy; it is the last seven years of the period allotted especially to the Jews. During this time, extending from A.D. 27 to A.D. 34, Christ, at first in person and afterward by His disciples, extended the gospel invitation especially to the Jews. As the apostles went forth with the good tidings of the kingdom, the Saviour's direction was: “Go not into the way of the Gentiles, and into any city of the Samaritans enter ye not: but go rather 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Matthew 10:5, 6. CIHS 85.1
"'그리고 그는 한 주간 동안 많은 사람과 언약을 확인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주"는 칠십 이레 중 마지막 이레로,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할당된 기간의 마지막 7년입니다. 주후 27년부터 주후 34년까지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에는 직접, 그 후에는 제자들을 통해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갔을 때 구세주의 지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어느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5, 6. CIHS 85.1
“‘In the midst of the week He shall cause the sacrifice and the oblation to cease.’ In A.D. 31, three and a half years after His baptism, our Lord was crucified. With the great sacrifice offered upon Calvary, ended that system of offerings which for four thousand years had pointed forward to the Lamb of God. Type had met antitype, and all the sacrifices and oblations of the ceremonial system were there to cease. CIHS 85.2
"'한 주 중에 그분은 희생과 의무를 멈추게 하시리라'. 주님께서는 침례 받으신 지 3년 반이 지난 주후 31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갈보리에서 드려진 위대한 희생으로 4천 년 동안 하나님의 어린 양을 가리키던 제사 제도가 끝났습니다. 유형은 원형을 만났고 의식 제도의 모든 희생과 의무는 중단되었습니다. CIHS 85.2
“The seventy weeks, or 490 years, especially allotted to the Jews, ended, as we have seen, in A.D. 34. At that time, through the action of the Jewish Sanhedrin, the nation sealed its rejection of the gospel by the martyrdom of Stephen and the persecution of the followers of Christ. Then the message of salvation, no longer restricted to the chosen people, was given to the world. The disciples, forced by persecution to flee from Jerusalem, “went everywhere preaching the word.” ‘Philip went down to the city of Samaria, and preached Christ unto them.” Peter, divinely guided, opened the gospel to the centurion of Caesarea, the God-fearing Cornelius; and the ardent Paul, won to the faith of Christ, was commissioned to carry the glad tidings “far hence unto the Gentiles.’” Acts 8:4, 5; 22:21. CIHS 85.3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할당된 70주, 즉 490년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기 34년에 끝났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 산헤드린의 행동을 통해 국가는 스데반의 순교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박해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봉인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선택된 백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구원의 메시지가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던 제자들은 "사방으로 다니며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니라." 베드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이사랴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고, 열렬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여 "이방인에게까지"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8:4, 5; 22:21. CIHS 85.3
“The disciples on their first missionary tour were to go only 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If they had now preached the gospel to the Gentiles or the Samaritans, they would have lost their influence with the Jews. By exciting the prejudice of the Pharisees they would have involved themselves in controversy which would have discouraged them at the outset of their labors. Even the apostles were slow to understand that the gospel was to be carried to all nations. Until they themselves could grasp this truth they were not prepared to labor for the Gentiles. If the Jews would receive the gospel, God purposed to make them His messengers to the Gentiles. Therefore they were first to hear the message.” DA 351.1
"첫 선교 여행을 떠난 제자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가기로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유대인들에게 영향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편견을 자극함으로써 그들은 논쟁에 휘말렸을 것이고, 이는 사역의 시작부터 그들을 낙담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조차도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더디게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이 진리를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이방인을 위해 수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인을 위한 그분의 사자로 삼으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먼저 그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DA 351.1
“On this first tour the disciples were to go only where Jesus had been before them, and had made friends. Their preparation for the journey was to be of the simplest kind. Nothing must be allowed to divert their minds from their great work, or in any way excite opposition and close the door for further labor. They were not to adopt the dress of the religious teachers, nor use any guise in apparel to distinguish them from the humble peasants. They were not to enter into the synagogues and call the people together for public service; their efforts were to be put forth in house-to-house labor. They were not to waste time in needless salutations, or in going from house to house for entertainment. But in every place they were to accept the hospitality of those who were worthy, those who would welcome them heartily as if entertaining Christ Himself. They were to enter the dwelling with the beautiful salutation, “Peace be to this house.” Luke 10:5. That home would be blessed by their prayers, their songs of praise, and the opening of the Scriptures in the family circle. DA 351.3
"이 첫 여행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먼저 가셨던 곳, 친구를 사귀었던 곳만 가기로 했습니다. 제자들의 여행 준비는 가장 단순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그들의 위대한 사역에서 돌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반대를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수고에 대한 문을 닫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교사의 복장을 채택하거나 겸손한 농민과 구별하기 위해 복장에 어떤 변장을 사용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적인 봉사를 하도록 해서는 안 되었으며, 집집마다 노동에 힘써야 했습니다. 불필요한 인사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접대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곳에서나 합당한 사람들, 마치 그리스도 자신을 대접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그들을 환영해 주는 사람들의 환대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집에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아름다운 인사말로 그 집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누가복음 10:5. 그 집은 그들의 기도와 찬송, 가족 모임에서 성경을 펴는 것으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DA 351.3
“These disciples were to be heralds of the truth, to prepare the way for the coming of their Master. The message they had to bear was the word of eternal life, and the destiny of men depended upon their reception or rejection of it. To impress the people with its solemnity, Jesus bade His disciples, ‘Whosoever shall not receive you, nor hear your words, when ye depart out of that house or city, shake off the dust of your feet. Verily I say unto you,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the land of Sodom and Gomorrah i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that city.’” DA 352.1
"이 제자들은 진리의 전령이 되어 스승의 오심을 위한 길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는 영생의 말씀이었고, 사람들의 운명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엄숙함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며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갈 때에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더 참을 만하리라' 하시니라." DA 352.1